지난해 11월 24일부터 12월 23일까지 5주간 실행한 협동조합 집중 교육에서, 협동조합의 세계적인 역사에서 배울 수 있는 목적과 가치와 그것을 지키는 원칙에 대해서 교육을 진행했다.
세상에 만연한 자본과 자본의 방식이라는 것은, 주로 사업을 통해 자본을 증식하고 최초에 자본을 소유하거나 투자한 인간에게 그 이익을 최대한 돌려준다. 상호 의존해야 하는 세상에서 생명체로서 준수해야 할 책임을 위임 혹은 전가해서 취한 것이 자본이 말하는 이익이다. (18세기말 영국의 러다이트 운동*Luddites Movment 내용 참조)
자본주의라는 뜻은 ‘돈이 된다면‧돈을 위해서라면‧돈에 의해’ 무엇이든 한다는 것이고, 자본이 말하는 비용 절감은 자본가에게 돌아가는 이익을 높이기 위해 인간과 환경으로 책임을 전가한다는 의미다. 이것을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착취(*외부불경제)라고 한다.
바쁜 명절 대목 기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사람들이 꽤 있다. 한 끼 식사에 최소 비용 5,000원을 쓰는 것인데, 기성품 라면도 아닌 수입밀 중에서도 최저가 밀로 대량 생산한 면부터 스프와 계란까지 불안전하게 생산한 제품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남긴다. 여기에 사용하는 소비자의 돈은 제대로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어렵게 생활해서 벌어들인 것이다. 생활을 이어가는 인간에게 위험을 전가하며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생명체와 환경으로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본은 끊임없이 이익과 힘을 키워왔다.
협동조합 집중 교육 1강 자료에 중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지표에서 대한민국은 약 20개 부문에서 38개국 중 부정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생명활동(*이하 생활로 표기)에 대한 안전 보장이 철저하게 무너졌다는 의미다. 놀랍고도 무서운 것은, 해당하는 지표 주제만 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부문에서 우리의 생활이 망가져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공감한다는 것이다.
‘자살‧산업재해‧가계부채‧남녀 임금 격차‧노인 빈곤‧저출산‧최저임금 노동자 비율‧저임금 노동자 비율‧장시간 근무시간‧어린이와 보행자 교통 사망률‧환경평가‧어린이와 청소년 행복지수‧이혼 증가율‧온실 가스 배출 증가‧국가 채무 증가‧사회적 안전망 하위 국가‧정치적 비전 하위 국가‧사교육비 지출‧대학교육 가계 부담‧공공사회 복지 지출 비율 하위 국가‧청소년 흡연 비율‧고등교육 국고 지원 하위 국가‧고령화 지수’
시대가 흐르며 자본이 점차 힘을 축적하고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하면서 정부는 인간 안전 보장이라는 목적과 기능을 잃고 자본을 따르기 시작했고, 권력과 자본의 흐름에 따라 평범한 시민들이 서로의 삶을 물질적 소유를 기준으로 ‘남보다 못한 삶’과 ‘나보다 못한 삶’으로 나누고 배제하게 만들었다.
개별의 인간이 자본을 소유한 양이 많을 때를 성공이라고 사람들이 인식하는 것인데, 자본이 생명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성까지도 해치는 것이다. 이것이 대다수에게 익숙해져야만 자본이 인간과 환경의 생명보다 우위를 점하고 그 위에 존재하며 계속해서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과 권력들조차 심지어 협동을 하는데, 자본과 권력이 외면한 보통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지키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택해야 하는 방식이 오로지 협동이라는 것을 세상과 협동조합의 역사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지 않은가.
협동조합에서 말하는 협동이란, 협동조합은 세상 만물이 상호 의존해야 한다는 섭리에 따라 인간이나 환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착취의 구조를 거부하고 스스로 인간으로서 인생의 주체로서 협동조합의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자가 공동으로 결합’하여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대항하는 힘을 만든다는 의미와 동시에, 경쟁하는 능력 이외에는 배우고 경험하지 못한 협동하는 본능을 일깨우고 그 방식으로 전환하는 힘을 만든다는 의미다.
따라서 협동조합은 ‘돈이 된다면‧돈을 위해서라면‧돈에 의해’서가 아니라, ‘조합원에 의한‧조합원을 위한‧조합원의’ 목적 조직이며 결합 조직이고, 반드시 이것을 기준으로 조합원의 합의를 통해 대응하고 발전해가야 한다. 여기서 합의라는 것은, 의견에 동의했다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참여하고 살아간다는 삶의 방식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이 현실에 발을 딛고 있게 하는 것이 ‘사업Enterprise’이라면, 목적‧결합 조직을 가동하고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Association(*저는 협동으로의 재참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이다. 협동으로의 재참여Association는 공동의 목적(꿈)을 실현하는 방식이며, 그것을 시민들이 원칙에 따라 결속하고 끊임없이 발전하고 개선해 가며 성장케 하는 구조다.
협동조합의 실체는 조합원이다. 협동조합의 구조와 시스템 모든 부분에서 가동되는 주체가 조합원이다. 여기서 조합원은, 협동조합의 목적과 가치와 원칙을 이해하고 그리하여 ‘협동을 선택’한 인간을 의미한다.
협동조합의 제4원칙의 자치와 자립이라는 것은 조합원과 협동조합이 책임을 위임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생략한 더 중대한 말은 협동조합의 목적에 따라 인간의 생활과 안전을 보장하는 일에 대해서 협동을 선택한 내가(조합원이), 그것을 실행하고 실현하는 협동의 과정에서 다른 어떤 것에 책임을 전가하거나 위임하는 착취의 구조를 나 스스로(조합원이) 거부하고 선택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협동을 선택한 인간이라는 의미는, 협동조합의 목적과 그에 따라 협동으로의 재참여Association 방식을 준수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목적을 이행하는 협동으로의 재참여Association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협동조합의 지난 시간을 떠올려봐야 한다. 예를 들어 조합원에게 교육을 제공하면, 조합원 각자가 문제의식을 느끼는 것까진 좋지만 그대로 다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가 버렸다.
협동조합의 실체가 조합원이라면, 조합원 각자에게 Enterprise와 Association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조합원이 현실에 발을 딛게 하는 Enterprise란 협동조합 목적을 중심으로 사업‧활동‧운동에 대한 출자‧이용 등 협동조합 사업으로 조합원 참여를 의미한다며, Association이란 협동조합의 원칙과 목적과 전망에 대해 조합원이 협동으로의 재참여를 하는 것이다.
조합원이 목적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것은 또 다른 조합원의 생활과 협동을 착취하는 것이며, 엄격하게 말해 자본이 생명을 착취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여기서 Enterprise와 Association은 날개처럼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처럼 결합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 ‘협동조합 사업(일상)으로의 참여Enterprise’는 조합원 각자의 출발점이며, ‘협동으로의 재참여Association’는 조합원이 추구하고 준수하며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의미다. 사업(일상)으로의 참여Enterprise는 몸체며 협동으로의 재참여Association는 뜻과 정신이다.
협동조합 사업을 통해 조합원의 협동으로 발생한 잉여는 조합원의 생활과 협동조합의 발전과 확산을 위해 재투자해야 하는데, 조합원 개인의 삶에서 지식이 높아진 정도로 교육과 자원이 사용된 것이다. 개인의 삶이 향상되는 부분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니고, 협동으로의 재참여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모든 구조가 작동하는 것이 어쩌면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원리인 것처럼, 협동조합은 조합원으로 인해 다시 조합원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일들을 실현하기 위해 모든 구조가 자연적이고 본능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조합원의 귀중한 생활로 개인의 삶에서 발생한 소득을 협동조합에 출자‧이용 등의 참여로 잉여 자원이 발생한 것이니, 조합원 생활의 정수로 발생한 협동의 잉여는 철저히 협동조합 목적(외면당한 인간-이웃의 생활 재구축과 생명의 안전 보장)의 실현을 위한 재투자‧재참여를 기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
2023년 1월 19일 프랑스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시민 파업이 일어났고, 약 150만 명이 참여했다. 연금 개혁의 골자는 연금 고갈에 대한 해결책으로 연금을 받는 시기를 62세에서 65세로 연장하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근로 기간도 연장하는 것이다.
연금 제도가 인간에 대한 사회 보장 제도라고 할 때 사회 보장 제도 재원을 시민들의 근로 소득에서만 얻는 것은 부당하고, 자본소득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 파업의 골자다. 이 파업에는 연금 개혁 시 수혜자인 청년들도 참여했다. 파업에서 주장하는 시민 연대의 내용이 올바르기 때문이다.
우리의 인생은 어떤가. 부모의 사랑으로 태어나고 부모의 곁에서 자란 아들과 딸이, 대학까지 교육을 받는 이유는 돈이 제일 많은 자본가에게 고용되기 위함이다. 고령이 되면 퇴직금을 받고 은퇴하고, 사회에서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써야 한다.
현재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살아간다는 의미가 안전‧상호의존‧협동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심지어 안정을 추구하도록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구조가 권력과 자본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부모의 사랑과 생명이라는 인간 설립 목적에 따라 인간이 살아가질 못하게 하는 권력과 자본가 중심의 사회인 것이다.
이처럼 공존共存 혹은 공멸共滅의 세계적‧시대적 기로와 더불어, 우리 협동조합의 10주년과 진주 형평사 운동 100주년을 동시에 맞이하는 때에 지역사회에서 오로지 협동조합으로 힘을 발휘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한다. 협동의 시간과 기회가 많지 않음을 자각해야만 한다.
작년과 올해 조합원의 생명활동이 끝나는 안타까운 일들이 있었다. 누구나 떠나기 마련이고 언제가 될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사실과 측은한 마음을 토대로 할 때한정적인 생명활동의 시간 속에 나 스스로 협동을 선택했다면 협동조합의 사업과 활동을 논하기 전에, 협동조합의 실체인 조합원으로서 내 삶을 그 목적에 따라 정밀하게 작동하고 있는가 우선 되돌아봐야 한다. 살아오며 쌓여온 측은하고 안타까운 마음들을, 목적 실현을 위한 내 인생의 결의로 이제는 전환해야 한다.
조합원이 어렵게 생활해서 발생한 소득을 협동조합에 출자하고 사업을 이용해서 발생한 잉여로 나의 보수가 발생하고 이것으로 생활을 유지하는데, 나는 그 의미에 따라서 목적에 대한 재투자와 재참여를 실행하고 있는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협동조합의 목적을 실현하고 실행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가. 내가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는 방식이 목적의 실현과 목적으로의 재참여를 토대로 하고 있는가. 내가 사용하는 생활의 비용은 협동조합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가.
지역사회와 우리 협동조합을 중심으로 협동조합 영역을 선택하고 꿈꾼다면, 내 인생이 협동조합 방식과 영역에 진정으로 참여하고 있는지 그러한 궁리가 있는지 스스로 삶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협동조합의 목적‧가치‧원칙과 위 서론을 중심으로, 협동조합의 목적과 전망의 구축을 전면 ‘재검토’하는 협동을 실행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후퇴할 시간이 없다는 인식으로 소멸로부터 대응하는 협동을 종합적‧전방위적으로 펼쳐야 할 때다.
서로가 이웃을 위한‧소멸로부터 대응하는‧인간의 생활과 안전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가장 어려운 지금이야말로 서로의 삶을 재구축하겠다는 의지를 가질 때이지 않을까.
그것을 조합원과 함께우리끼리 선명하게 실현하는 것이 협동조합이며 협동조합의 사업과 활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