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풍수지리, 애국심의 콜라보
미국 LA, 거액의 의뢰를 받은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기이한 병이 대물림되는 집안의 장손을 만난다. 조상의 묫자리가 화근임을 알아챈 ‘화림’은 이장을 권하고, 돈 냄새를 맡은 최고의 풍수사 ‘상덕’(최민식)과 장의사 ‘영근’(유해진)이 합류한다.
“전부 잘 알 거야… 묘 하나 잘못 건들면 어떻게 되는지” 절대 사람이 묻힐 수 없는 악지에 자리한 기이한 묘. ‘상덕’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고 제안을 거절하지만, ‘화림’의 설득으로 결국 파묘가 시작되고…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왔다.
영화 <파묘>가 한국보다 앞서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선을 보여 큰 호평을 받은 모양이다.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이유가 짐작이 간다. 무당, 굿, 풍수지리 등 서양인들이 흥미를 느낄 만한 오리엔탈리즘적인 요소가 영화 전반에 깔려있다. 심지어 그것이 서양의 엑소시즘처럼 심오하고 심각한 분위기도 아니다. 무당은 MZ느낌을 낙낙하게 뽐내며, 스니커즈를 신고 굿을 하고, 온 몸에 주술을 문신한 채 노이즈캔슬링 헤드폰을 낀다. '무속'이라는 전통적이고 고루한 요소가 '트렌드'를 적절히 입어, 실제로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칠 수도 있을 것 같은 현실감을 준다.
영화는 소제목을 붙여, 몰입감이 다소 떨어질 즈음 작은 단위의 이야기를 새로이 시작하며 극의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크게 나누자면 영화는 의뢰를 받아 파묘를 하고, 일이 어그러지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결을 하는 전반부와, 그걸로 끝인 줄 알았는데 더 거대한 '나와서는 안될 것'과 마주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에는 '화림'의 굿을 중심으로 공포 분위기를 자아내는 스토리가 이어져 흥미를 돋운다.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는 전부 전반부에 몰려 있다.
다만 후반부에 그 '나와서는 안될 것'이 나온 시점에서 긴장감은 다소 떨어진다. 갑자기 일제의 잔재 청산이 메인이 된다. 날아다니는 불덩어리는 어딘가 조악하고, 해서 그 일본 귀신이 왜 거기 처박히게 되었는가에 대한 설명은 등장인물들의 주마등 같은 환상이나 대사로 무마된다. 이즈음부터 '굿'도 '풍수지리'도 더이상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장르물로서의 흥미는 상당히 떨어진다.
심지어 후반으로 갈수록 설명이 꽤 불친절해진다. '화림'은 어떻게 정령을 속일 수 있었는지. 정령이 탑을 보고 왜 불덩어리가 되어 그냥 도망쳤는지. 정령은 왜그리 제 투구에 집착하는지. 봉림사의 존재 의의는 무엇인지. '물에 젖은 나무'가 '불'에 상극이라는 것은 이전에 어떤 복선도 없다가 갑자기 '상덕'의 대사로 후르륵 설명해버리고는 뚝딱뚝딱 갑자기 해결이 되어 버린다.
아마도 이야기가 두 갈래로 나뉘어지면서, 정해진 시간 중에 해야 할 이야기는 많아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 점은 매우 아쉽다.
'일제 잔재 청산'이라는 소재에 대하여 감독은 '땅의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당연히 그 소재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는데, 글쎄. 의도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 것이, 애초에 '봉길'이나 '화림'의 이름 자체가 독립투사 분들의 성함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 전반을 이끌어가는 몰입감은 여타 다른 영화에 비해 안정적이다. 매 순간 일상을 살짝 빗겨간 비일상이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극한다. 너무 일상적이지도, 또 너무 비일상적이지도 않은 선을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며, 관객을 완전한 타인도 동료도 아닌 존재로 만들어 함께 데리고 간다.
무엇보다 일의 결과가 '일제 잔재 청산'이기는 했으나, 주인공들에게는 잔재 청산이고 나발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가 원동력이기 때문에, 장르물 다운 가벼움을 그대로 유지해나간다. 튀어나온 게 일본의 정령이든, 그게 국가의 정기를 막을 목적이든 뭐든, 뭐 훌륭한 애국심을 발휘하여 일을 해결하려는 게 아니다.
일제 잔재의 청산은 어디까지나 소재일 뿐, 이들의 목적과 영화의 주제는 '파묘 후 벌어진 불미한 일의 해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것이 장르적 재미를 유지하는 장점이기도 하고, 어설프게 소재로만 차용하고 끝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단점이기도 할텐데, 개인적으로는 장점으로 돋보였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캐릭터가 어느 한 명 빠짐없이 매력적이다.
과장되지 않음에도 각자 개성이 뚜렷하고 힘이 있다. '영근(유해진)'이 넷 중 유일하게 말이 많고 가벼운 캐릭터로 묘사되는데, 그나마도 넷 중 그렇다는 얘기이지, 유해진 배우의 다른 필모그래피를 생각하면 이만큼 침착한 캐릭터도 드물지 싶다.
본인이 챙겨야 할 것도 알뜰하게 챙기고, 돈 계산도 확실히 하고, 그렇지만 의리도 저버리지 않는다. 소위 '트롤'짓을 하는 캐릭터도 하나 없이, 각자 맡은 역할에 전문성을 충분히 발휘하며 손발이 착착 맞는다. 캐릭터 설정 자체도 매력적인데,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니 저들끼리 앉아서 대화만 나누어도 매력적인 이야기가 탄생한다. 이대로 떠나보내기에는 다들 너무 아까운 캐릭터들이다.
여담으로, 일본 귀신(정령)과 한국 귀신(원령)의 이야기도 꽤 재미있다.
극중 일본 정령은 풀려나자마자 동물이고 사람이고 가릴 것 없이 닥치는대로 공격하며 간을 빼먹는다. 반면 의뢰인의 조부였던 한국 원령은 자신의 가족들을 콕 집어 찾아가 살해한다.
이것은 한국 귀신과 일본 귀신의 차이도 엿보여 꽤 흥미롭다.
실제로 한국의 괴담을 보면, 대체로 귀신들은 한을 품고 죽은 이들이 다수다. 일례로 장화홍련은 귀신이긴 해도 예의가 바르고, 자신의 한을 풀어줄 원님을 찾아가 상소를 하고 (비록 많은 원님들이 상소를 듣기도 전에 혼절하긴 했지만), 원한이 해결된 후에는 깔끔하게 구천을 떠난다.
도시괴담도 그렇다. 그 자리에서 사고로 죽은 귀신. 복수를 위해 구천을 떠도는 귀신. 다들 각자 사연과 목적이 있다. 심지어 조상신은 꿈에 나타나서 로또 번호를 가르쳐주기도 한다. 한국 귀신은 대화와 설득으로 어느 정도 해결이 되므로, 한국 무당은 '굿'으로 귀신을 달래어 보내는 것으로 해결을 한다.
반면 일본의 괴담을 보면, 귀신들이 원한이고 나발이고 그냥 살아있는 모든 인간들을 공격한다. 특정 대상이 없다. 랜덤이다. 재수없게 귀신 눈에 띄면 귀신이 씌이는 것이다. 일례로 '링'의 귀신은 비디오만 보면 남녀노소 너나할 것 없이 공격을 한다. 귀신이 전파도 되고 복사도 된다. 목적이 '한의 해결'이 아니다. 그냥 눈에 띄는대로 괴롭히겠다이다. 애초에 '사람'이 귀신이 아닌 경우도 많다. '쿠네쿠네'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인 경우도 많다. 그렇다보니 퇴치도 어렵다. 대체로 절을 차아가서 봉인을 하거나 아예 없애는 쪽으로 해결을 한다.
<파묘>에서도 이런 차이가 은근히 드러난다.
전반부의 귀신은 분명 '사람'이었고, 행패 부리는 대상도 명확했다. 퇴치도 비교적 쉬웠다. 그냥 냅다 태워버리면 되니까.
후반부의 귀신은 사람도 아니다. 심지어 눈에 띄면 닥치는대로 공격한다. 퇴치에도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하다. 한국의 무당도 학을 뗀다고 하지 않던가.
장르의 몸으로 무속, 풍수지리, 애국심에 살짝씩만 발을 담갔다가 빼는 현란한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