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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변의별 Aug 11. 2022

“엄마, 밥이 넘어가네”

일주일 동안 누워서 방울토마토만 먹었다. 

밥 한 숟가락을 넘기면 두 숟가락이 도로 올라왔고 쌀알이 목구멍에서 차렷하고 

알알이 서 있는 것만 같았다. 

물에서 냄새가 난다는 것도 태어나서 처음 경험해봤다. 

이렇게 첫째는 지독한 입덧으로 존재를 알려왔고 

입덧 때문에 몇 날을 먹지 못해 응급실까지 다녀와야 했다. 

병원에서도 특별한 처방은 없다며 입덧 증상을 진정시키는 약만 지어주었는데 

그마저도 넘어가지 않았다. 

임신을 하고 인생 최저 몸무게를 기록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임신 소식을 듣고 큰딸을 보러 온 엄마는 얼굴이 반쪽이 되어 

집안에서도 기어 다니는 나를 보고 이렇게는 안 되겠다며 엄마 집으로 가자고 했다. 

옆에서 먹을 걸 챙겨주면 뭐라도 먹지 않겠냐며 말이다. 

나는 어차피 아무것도 넘어가지 않으니 소용없다고 했지만 

신랑이 출근을 하면 하루 종일 누워서 머리 위에 씻어 놓고 간 

방울토마토만 집어먹고 살 수는 없다 싶어 친정행을 결심했다. 

친정에 오자 뭔가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느껴졌지만

설마 음식이라는 것을 넘길 수 있을까, 속은 여전히 울렁거리고 

음식 생각이 전혀 없는데 하면서 기진맥진한 몸을 먼저 뉘었다. 

한숨 자고 눈을 떴을 때 주방에서 ‘또각또각‘ 엄마가 칼질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한 칼질 소리가 아무래도 고기는 아닌 것 같고 

야물지만 너무 단단하지는 않은 채소를 써는 소리 같았다. 잠시 후 

엄마는 쟁반에 금방 한 따뜻한 쌀밥과 차가운 보리차, 그리고 ‘오이지무침’ 한 접시를

소복하게 담아오셨다. “자 이 거 먹어 봐. 입맛이 돌 걸. 오이지가 아주 맛있게 됐어.” 

엄마가 직접 담근 오이지로 만든 오이지무침이다. 

엄마는 날이 더워지기 전에 좋은 오이를 골라 꼭 오이지를 담갔다. 

너무 길지도 굵지도 않으며 무르지 않고 단단한 오이를 

소금으로 상처 나지 않게 문질러 씻어 소금물을 끓여 붓는 오이지. 

시간이 지나면서 초록의 오이는 노랗게 되고 오이지는 오이로 만들었지만 

전혀 다른 맛의 음식이 되었다. 그리고 오독오독 씹히는 식감처럼 

우리 가족의 입맛을 깨우며 밥도둑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릇에 담긴 오이지무침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일어나 앉았다. 

밥을 뜨기 전에 보리차 한 숟가락을 겨우 떠먹고 오이지 하나를 집어 입안으로 가져갔다. 

“오도독” 씹는 순간, 물기를 꼬옥 짠 오이지는 쪼그라든 모양만큼 

맛도 응축되어 있었다. 오독오독 야들야들 한 식감과 함께 푸른 오이의 청량감과 

노란 오이지의 시간의 깊이가 일시에 온몸으로 전해지더니 

저절로 밥 한 숟가락을 뜨게 됐다. 

달큰한 쌀밥이 들어가니 짭조름한 오이지의 진가는 더욱 빛났다. 

“엄마, 밥이 넘어가네”  

“먹겠을 때 얼른 더 먹어” 하며 엄마는 오이지 하나를 빠르게 집어 밥 위에 올려주셨다. 

이것마저도 안 먹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을 밀어내고 

내 손맛으로 딸의 입맛을 살려낼 수 있다는 믿음이 미소가 되어 

엄마의 얼굴에 엷게 번지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엄마밥은 넘어갔다. 신기하게도 오이지무침을 시작으로 

울렁증이 조금씩 사라졌고 며칠 사이 밥의 양도 점차 늘어갔다. 

“호박잎 쪄서 줘볼까?” 엄마는 내 대답을 듣기도 전에 

어린 호박잎 찜을 자박한 강된장과 함께 가져오셨다. 

메주를 소금물에 담그기를 여러 날, 소금물을 가득 머금은 메주를 으깨고 치대서 만든 된장에 

양파, 고추 등 갖가지 채소를 쫑쫑 썰어 넣고 만든  강된장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된장, 간장, 고추장 등 음식의 밑간이 되면서 동시에 핵심이 되는 것들 중 

엄마의 체온이 닿지 않은 것이 없었다. 거슬거슬한 호박잎은 폭 쪄지면서 

입안에 부들부들 닿았고 구수한 향과 함께 머금었던 물기를 촉촉하게 뱉어냈다. 

어린 호박잎은 찢어지기 십상이라 조심히 다뤄야 했다. 

그 맛을 충분히 느끼려면 한 장으로는 부족하다. 

여러 장을 겹치고 밥 한 숟가락을 올린 뒤 슴슴한 강된장도 듬뿍 넣어 복주머니처럼 입구를 모아 쥔다. 

한 입 크게 벌려 먹으면 거슬함이 태생인 호박잎의 촉촉함과 부드러운 쌀밥, 

다양한 채소와 견과의 복합체가 된 강된장의 적당한 짠기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 번 당김으로 오색실이 빵 터져 나오는 폭죽이 터지는 맛이 느껴졌다. 

호박잎 쌈을 기점으로 내 입맛도 빵 터졌다. 이제 뭐든지 먹을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음식을 먹어도 토하지 않을 자신감이 생긴 것이다. 적당히 익은 총각김치는 또 어떤가. 

익어가면서 무의 아린 맛은 온데간데없고 새콤 달콤 매콤한 맛에 아삭한 식감까지 더해져 

생각만 해도 아랫니 안쪽으로 침이 고인다. 

입덧으로 피까지 토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이참에 라면을 먹어볼까 하는 

도전 정신까지 발휘하게 만들었던 엄마표 총각김치. 

이로써 임신 초기 40Kg대까지 내려갔던 험난한 입덧 여정은 엄마의 손맛을 본 뒤 

인생 최고 몸무게를 향해 가는 반등 곡선을 그리게 된다. 

엄마는 마치 지금 무슨 음식을 먹으면 자식의 입맛을 돌게 만들고 

그다음에는 어떤 음식을 먹으면 입맛이 더 좋아지는지, 마지막으로 무엇을 먹으면 

완전히 입맛을 되찾게 되는지 까지 다 알고 계셨던 것 같다. 

엄마 밥을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는 증상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것일까? 

증인이 필요하다면 나는 확실한 증인이 될 자신이 있는데 말이다. 

이렇게 출산보다 고통스러운 입덧으로 존재를 과시했던 첫째가 태어난 지 스무 해가 지나고 

벌써 스물한 살이 되었다. 아들만 둘인 나는 가끔 생각한다. 

딸이 없으니 엄마처럼 내가 만든 음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살아갈 힘을 주는 경험은 못하겠지. 

그때 군대 간 첫째에게서 카톡 메시지가 왔다.


<엄마, 저 다음 주에 휴가 나가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김치 수제비가 제일 먹고 싶어요. 

지금 그것만 먹으면 살 것 같아요^^ 다음 주에 봬요. 필승!> 


대학 가면 들려고 산 가방을 코로나 때문에 학교 한 번 못가보고 입대할 때 들고 갔던 아들의 첫 휴가! 

눈물이 앞을 가리면서도 ‘냉장고에 김치가 얼마나 익었나, 수제비 하면 딱 맛있게 익었던가’ 

내 머릿속은 어느새 냉장고 속 포기김치의 맛을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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