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는 이유는 서로 너무나 다른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한두 가지의 공통점만 있으면 친해지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던 학창 시절이 지나면, 여러 차이점이 몰려온다. 차이가 쌓이고 쌓일수록 더 멀어져 간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신기하게도 서로의 곁에 머물게 되는 친구가 있다. 매일 함께한 것도 아닌데 힘들 때, 기쁠 때 찾게 되는 친구 말이다. 어릴 때 나눈 공통의 경험이 너무 강렬해서 그저 존재만으로 편안함을 주는,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그냥, 문득, 찾게 되는 이들. 서로 다른 삶이 쌓여도 결국엔 곁에 있는 이들이 소울메이트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는 그 관계를 너무나 잘 담아낸 영화이다.
'칠월'이라는 필명의 작가가 친구였던 '안생'과의 이야기를 인터넷 소설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에 연재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13살에 처음 친구가 된 이들은 서로 다른 성격과 가정환경을 가졌다. 안생은 집에 잘 들어오지 않는 엄마와 사는 소위 ‘자유로운 영혼’이다. 반면 칠월은 따뜻한 가정에서 자라 조금은 성숙한 면이 있는 아이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장난기가 많다는 점. 학교에서 귀여운 장난을 치며 시작된 이들의 관계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서로만의 비밀을 만들며 계속된다. 하나의 공통점만으로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시기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안생과 칠월, 둘 뿐이던 관계에 칠월의 남자 친구 '소가명'이 함께하기 시작한다. 셋이 친하게 지내던 18살의 어느 날, 칠월은 돌연 고향을 떠나 방랑 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이곳저곳 나라를 옮기고, 하는 일도 바꾸고, 구걸을 하기도 하면서 몇 년을 보낸다. 반면 칠월은 말 그대로 엘리트 코스를 밟는다. 남들이 말하는 '잘 사는 삶'에 따라 대학과 학과를 고르고 은행원이 되어 소가명과의 결혼을 준비한다. 떨어져 지내면서 서로 다른 삶이 점점 쌓이는 6년이었다.
시간이 흘러 24살, 떠도는 삶에 지친 안생이 칠월을 찾아온다. 칠월과 인생은 오랜만에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처음으로 서로의 다름을 느낀다. 이때부터 둘의 관계는 삐그덕 거리기 시작한다. 서로의 태도와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소가명과의 관계도 얽히고설켰다. 이들은 상처 주는 말도 서슴지 않고, 자신이 상대를 위해 무엇을 참았는지 따지기도 하면서 만나고 틀어지고를 반복한다. “우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칠월의 모진 말에 안생이 한 이 말은 되돌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체념과 슬픔, 상처가 깃들어 있었다.
결국 칠월이 다시 안생을 찾는다. 혼자서 버티기 어려운 상황에 안생이 가장 먼저 떠오른 칠월이었다. 그녀가 찾아온 날 밤 침대에 나란히 누운 둘은 서로가 서로를 미워했다고 고백한다. "왜 이제야 왔어." “네가 미웠어.” “나도 네가 미웠어.”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인정에서 뭉클함이 느껴졌다. 안생과 칠월은 '다름'에서 비롯된 갈등을 그 차이를 좁히면서 해결하지 않았다. 다만, 그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어른들의 소울메이트를 보는 것 같았다.
결론을 여기까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이유는 이 서사에 여러 반전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줄거리 언급을 이 이상으로 해버리면 큰 스포일러가 된다.) 그 반전에는 갈등 속에서도 안생이 칠월을, 칠월이 안생을 얼마나 사랑하고 헤아렸는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안생을 자신만큼 사랑할 수 없어 실망했고, 인생의 모든 것을 나눌 수 없음에 낙담했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어른이 된다는 건 원래 이런 것이란 걸.
어른이 된 소울메이트들은 전처럼 모든 순간에 함께할 수는 없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의 순간에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줄어들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도 어른이 되면서 조금씩 깨닫고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음을, 그리고 점점 더 많은 경험을 하다 보면 서로의 삶을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됨을. 그걸 깨달았기에 필명 '칠월' 작가는 인터넷 소설에 새로운 마음가짐과 결론을 담았을 것이다.
p.s.
둘의 갈등을 더 깊게 만드는 것은 칠월의 남자 친구 소가명이다. 영화를 본 몇몇 리뷰어들은 여자 둘의 우정 이야기에 굳이 남자로 갈등을 만들었어야 했냐, 고 평을 하기도 한다. 반면 나는 소가명이 '친구 사이의 복잡하고 다양한 감정'을 보여주기 위해 투입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오래 사귀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을 돌려하기도 하고, 친구를 위해 참기도 하고, 참다가 내가 양보한 사실이 억울해서 언젠가 털어놓기도 한다. 즉, 친구라는 관계는 (서로 다른 세월 외에도) 크고 작은 사건과 감정의 교류를 거치면서 형성된다. 소가명은 그걸 2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담아내기 위한 장치로 충분히 활용되었다. 그가 등장하는 서사이기에 안생과 칠월은 서로 참기도, 참지 않기도 하면서 갈등을 겪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