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밀고 가는 삶에는 낭만과 방황이 공존한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다니, 꽤나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그 삶에도 좌절을 겪고 현타를 느끼는 순간은 존재한다.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그 현타와 방황을 담은 영화다.
영화? 좋아하지만, 없이도 살 수 있어요.
소피의 불어 선생인 김영은 영화감독이지만 강의를 하는 강사이기도 하다. 영화를 좋아해서 시나리오를 계속 쓰지만, 영화보다 중요한 게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 영화를 향한 마음을 내려놓고 선생과 강사 일을 한다.
나 이것도 배우고 싶어!
배우가 본업인 소피는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산다. 기타, 불어, 폴댄스, 막걸리 등을 배우며 쉴 새 없이 산다. 잘 나가는 배우는 아니지만, 집도 있고 각종 수강료도 지불하면서. 큰 생각 없이 이것저것 하면서 살아간다.
내가 영화 없이 살 수 있을까?
찬실도 영화 PD 일이 좋아서 평생 이 일만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남자도 만나지 않고, 주변 친구들도 영화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갑자기, 영화를 함께 만들어 오던 감독이 세상을 떠난다.
공허함을 느낀 찬실은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소피의 집안일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그러던 중 만난 김영 선생에게 매력을 느끼고, 찬실의 현타와 방황은 더 심해진다. '영화 이제 그만두고 남자 만날까..? 그게 더 행복하고 좋을 것 같은데... 나 지금까지 뭐한거지..'
찬실이가 어린 시절 좋아하던 홍콩 배우인 ‘장국영’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남자가 찬실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찬실의 속내를 다 꿰뚫는 이 남자 앞에 찬실은 자신도 모르게 고민 상담을 하고, 이를 듣던 남자는 이렇게 질문한다. “영화 그만둬도 괜찮겠어요?”
이 질문에 ‘스스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겠다.’ 던 찬실은 김영에게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사랑은 서로의 마음이 맞아야 이루어지는 법.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 앞에 우울해하는 찬실에게 남자는 이런 말을 건네기도 한다. “원하는 게 뭔지 알아야 행복해져요."
찬실의 고민을 들어주는 듯 보이는 이 남자는 나중에 가서는 찬실의 내면을 대변한다. 찬실이 영화를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 남자는 삐져서 등을 돌린 채 찬실을 외면한다. 그러다 다시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옆에서 도와준다. 시나리오를 쓰기로 결심하고, 조금씩 밝은 모습을 보이면서는 소명을 다했다는 듯 찬실의 곁을 떠난다. 남자의 모습을 통해 찬실의 내면이 혼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영화에 강하게 끌리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첫 번째는 방황 끝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신하게 되었다는 점. 두 번째는 그 확신에 이르기까지, 주변 사람들의 예상치 못한 위로가 한 몫했다는 점.
할머니의 시 쓰기를 도와 드리다가, 자신이 걱정되어 쫓아온 김영 선생에게, 찬실은 형언할 수 없는 위로를 받는다. 그 순간들이 쌓여 찬실은 좋아하는 영화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는 너무 복잡한 현실이지만, 그래도 마음이 강하게 끌리고 함께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 내서 해보아도 괜찮지 않을까. 다만, 낭만만을 기대하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