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
때때로 위로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찾아와 슬며시 마음을 적신다. 우연히 읽은 책의 한 구절이,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따뜻한 손길이 마음을 움직인다. <비와 당신의 이야기>에서 소연의 손수건은 영호에게 그렇게 찾아온 위로였다. 그 위로는 영호에게 '기다림의 이야기'를 선사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위로로부터 시작된 기다림에서 기적을 꿈꿔보는 이야기다.
삼수 생활을 하던 영호는 문제집을 풀다가 문득 8년 전 기억을 떠올린다. 달리기 경기 중 넘어져서 다친 자신에게 소연이 손수건을 건넸던 기억이다. 그 길로 소연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기다림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유심히 고른 말과 문장을 꼼꼼히 편지에 담아 부친다. 그 편지가 소연에게 닿길 기다리고, 소연이 다시 말과 문장을 골라 쓴 답장이 자신에게 도착하기를 기다린다. 그 기다림 끝에 도착한 답장은 삶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영호에게 다시 한번 일상의 위로가 된다. (여기서 '위로'는 설레는 미소를 포함한다.)
시간이 흘러 영호 자신도 위로를 주는 사람이 된다. 꼼꼼히 편지를 쓰던 손으로 그림을 그리고 우산을 만들어 웃음을, 감동을 건넨다. 친구에게도, 가족에게도, 하나뿐인 위로를 유심히 건넨다.
소연과 영호의 모습을 보며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위로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세상을 천천히 바라보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이다. 소연은 달리기 시합에서 가장 늦게 들어오는 영호를 봤기에 손수건을 건넸고, 영호는 일을 사랑하는 아버지와 오로라를 좋아하는 친구의 뒷모습을 기억했다. 기다릴 줄 아는 마음에는 여러 개의 방이 있어 소중한 사람의 면면을 담아둘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보는 게 많아질수록 방은 더 늘어날 테니,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은 계속해서 넓어져 갈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기다릴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찾아올 확률이 높다. 작은 것에서도, '가능성 매우 낮음'의 일에도 희망을 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평생 희망을 바라야 하는 게 인생이라면, 원하는 것을 끝까지 기다려 보는 것도 가치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을 진득하니 기다리는 시간 덕분에 기적을 발견할 확률은 높아진다. 영화 말미에 쏟아지는 비에서 영호는 기다리던 기적을 만난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비 오는 날'이 영호에게는 기적의 날이 되었다.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위로로 '기다림의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영호는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 타인에게 위로를 주고, 기적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는 '빠름'을 외치는 이 사회에 '기다리면 새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아무리 급해도 기다림을 음미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시간을 들여 음미한 기다림은 그만한 선물을 선사할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