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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ky Apr 15. 2021

잘못한 사람이 없는데, 모두가 미안해한다.

영화 <비밀의 정원>

10년 전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정원)와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겉으론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던 정원에게 가해자가 검거되었다는 소식은 미처 아물지 않았던, 정리가 되지 않았던 상처와 기억을 불러온다. 영화는 그들이 그 사건에 대한 대화를 조금씩 나눠가는 과정을 그렸다.


잘못한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서로 미안하고 아프고 쉬이 미소 짓지 못한다. 어떻게, 무슨 말을 꺼내야 하는지도 모른 채 터널을 지난다. 피해자 혼자, 남편과 둘이, 동생과 셋이, 어쩌면 넷, 다섯.. 몇 명이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야 할지 모른다. 뚜렷한 대상 없이 화를 내기도 하고,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기도 하고, 그래서 미안해하기도 하면서. 언뜻 가족의 갈등처럼 보이는 현상의 이면에는 처음 맞닥뜨리는 상처에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말과 행동, 서로에 대한 사랑과 미안함이 서려있었다. 그래서일까, 대사 없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의 장면이 많았다.

정작 잘못을 한 가해자가 받은 형벌은 고작 5년인데. 피해자는 10년이 넘는, 힘들고 지난한 시간 동안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가해자에게 내려진 형벌과 사건의 마무리는 그 물속에서의 시간을 한순간에 허무하게 만들어 버린다. "피해자는 10년 동안 피해 사실에 힘들게 살아왔는데, 가해자는 정작 일상을 잘 살았다."는 재판장의 말에는 사회가 생각하는 '피해자다움'과 관대한 처벌의 현실이 한 번에 담겨 있다. 무력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무력해지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정원과 가족들이 서로를 위하는 마음으로 내딛는 서툰 걸음 때문이다. 어렸을 적 무서웠던 나무가 시간이 지나고서야 무섭지 않게 느껴질 수 있듯이, 상처도 덜 아파질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10년 일지, 아니면 평생일지도 모른다. 사실 그 시간조차도 무력함을 불러오지만, 정원과 가족들이 조금씩 서로에게 지어 보이는 미소가 희망처럼 느껴져 마음을 바로 세운다. 아무리 큰 나무(상처)라도 매일매일 조금씩 밀다 보면(서로를 위하고 대화하다 보면) 조금은 휘어질지도(치유될지도) 모르니.

미투와 학교 폭력이 수면 위로 떠올랐던 요 몇 년간, 정원의 가족처럼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잘못도 없이 미안한 마음을 가졌을지 생각했다. 어떠한 사회적 담론을 차치하고, 피해자와 그 곁의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지나왔을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영화에 비가 내리는 장면이 많다. 비를 완전히 멈출 수는 없겠지만, 잠시 비가 그쳤을 때, 그때만큼은 환하고 따뜻한 햇살이 비치길. 그리고 내가 먼저 다가가 우산을 씌워줄 수 있길.


(자극적인 소재일 수 있으나 그럼에도) 자극적인 장면과 연출 없이 무섭기도, 슬프기도, 안도하기도, 아프기도 했던 영화라고 마무리해본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 이들이 왜 죄책감과 미안함을 이토록 긴 시간 동안 느껴야 하는지, 그 현실이 답답했지만, 일단 지금은 영화 속 정원과 가족들이 서로에게 가졌던 사랑의 마음만은 서툴러도 따뜻했다고,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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