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킴이 밥솥

by 김진영

십여 년 전 글 쓰는 작업실을 정리해야 했던 이유는 늦은 결혼 때문이었다. 쓰던 세간은 모두 누구 주고, 버리고 책만 트럭으로 반 차게 싣고 본가에 왔다. 엄마는 그때도 식당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끝나 한가한 시간이 되자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했다.

“밥솥 사러 가자. 얼른 00 마트로 와.”

내가 들어갈 신혼집은 비어 있었다. 언제든 짐을 들여놓을 수 있었는데 한꺼번에 모든 세간살이가 들어오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엄마는 우선 손 없는 날을 잡아 밥솥과 소금을 미리 가져다 놓자고 하였다. 그래서 만나게 된 것이 연보라색 전기압력밥솥이다. 엄마가 큰언니와 작은 언니인 두 딸을 시집보낼 때는 우리 집 사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막내딸인 내가 결혼할 즈음엔 엄마도 넉넉했고 나 또한 작업실로 쓰던 방을 뺐으니 보증금이 고스란히 내 손에 남아 있었다.

“밥솥 하나는 제일 좋은 거로 사자. 여기요, 여기에서 가장 좋고 비싼 최신형이 뭐예요?”


엄마가 직원을 불렀다. 그렇다고 내가 선택한 밥솥이 그 당시 그곳에 있었던 밥솥 중 가장 비싸고 좋은 것은 아니었다. 우리 집이 가장 어려울 때 힘들게 결혼을 한 언니들을 난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로 좋고 비싼 거로 사기로 했다. 난 가끔 어떤 물건을 사러 갈 때 물건이 끌어당기는지 아니면 내가 미래를 내다보는 능력이 있는지 이 물건을 내가 쓰고 있는 모습을 어렴풋이 볼 때가 있다. 그날 역시 그랬다. 또 내가 좋아하는 보라 계통이었으니 내 밥솥이 될 운명이었다. 밥솥을 들고 집으로 오는 동안 난 그렇게 무거울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늘 식당에서 어깨를 써야 하는 엄마에게 무거운 물건을 들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두 정거장 거리를 얼마나 낑낑거리며 들고 왔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택시를 타든가, 엄마 차를 타고 사러 갔다면 나에게는 그리 기억에 남는 날이 아니었을 것이다.

좁디좁은 신혼집에 소금 자루와 밥솥을 가져다 놓았을 때 신혼의 꿈에 부풀어 있던 난 처음 집 구경을 하게 된 엄마의 서운한 표정을 살피지 못했다. 그렇게 그 밥솥으로 시댁 식구들과 신랑 친구들 집들이를 하고 밥솥은 늘 나와 함께 했다. 그 당시 남편에 대한 사랑은 이것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난 아침, 저녁으로 새 밥과 국을 끓여 밥상을 차렸다. 유독 밥을 많이 먹는 남편에게 밥솥은 정말 쓰임새가 많았다. 그렇게 밥을 해 대던 밥솥은 한동안 반짝반짝 빛이 나는 윤기를 놓치지 않고 발산했다. 그리고 두 딸이 태어났다. 유독 약했던 두 딸은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다녔다. 큰 애는 유모차에 태우고 작은 애는 아기 띠에 매달아 멀리 떨어진 병원을 갔던 게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엄마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았다. 엄마는 돌아가는 길에 깊은 생각에 빠졌고 결정을 내렸던 것이다. 며칠 후 엄마는 엄마 집 바로 앞 동에 전세가 나왔는데 너희들이 와서 살면 딱 좋을 거 같아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시댁과 10분 거리에 살던 난 2년만 살고 이사를 가자했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다. 벌써 4년째 살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신혼집을 팔고 엄마 집 앞 동으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또 한 번 이사로 지금 사는 곳에 왔다. 밥솥과 함께. 늘 누구보다 먼저 그 집에 가 있었기 때문에 밥솥은 우리 가족을 대신하고 나를 대신한 지킴이였다. 그렇다고 아직 고장 한 번 안 나고 지켰던 것은 아니다. 밥솥 병원에 여러 번 다녀왔고 얼마 전 갔을 때는 다시 고장이 나면 그때는 다시 고칠 수가 없다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우리 가족은 잘 버텨주기만을 바랐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동안 어떻게 숨겨왔는지 사람을 몰고 다니는 나의 성정 때문에 참 많이도 우리 집에서 밥을 많이 먹었다. 그때마다 엄마와 언니는 밥솥이 좋아서인지 이 집은 밥맛이 늘 좋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했다. 그 소리를 밥솥은 듣고 있었을까?

어느덧 아이들은 훌쩍 자랐고 난 어느 날 선포를 했다. 금요일은 밥 안 하는 날로 만들자고 했다. 나 역시 밥을 안 해서 좋았고 밥솥 또한 쉬는 날이 일주일에 한 번이라고 생겼던 것이다. 그즈음 난 본격적으로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전직 작가였다는 소리가 아닌 현직 작가라는 소리를 듣기 위해 부단히 도 애를 썼다. 그러는 사이 나에겐 다시 공부방인 작업실이 생겼다. 그곳에서 난 철학 공부를 하고 글도 쓰면서 시간을 보내다 저녁밥을 하기 위해 집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커가고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부터 하루에 내 컵을 했던 밥이 다섯 개로 늘었다. 그날 아침에도 다섯 컵의 밥을 해 놓고 공부방에서 글을 쓰다가 집에 돌아왔다. 남편이 주방에서 무언가 열심히 찾고 있었다. 남편이 찾았던 것은 소리의 정체였다. 찌이익, 찌이익 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이었다. 난 그 소리가 밥솥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남편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밥솥에 넣어두었던 밥이 가장자리가 말라 딱딱해졌다. 남편은 밥솥 뚜껑이 살짝 열려 있었던 것 같다고 했지만 난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날 이후 무슨 연유인지 이틀 엄마 집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 혹시 몰라 난 밥솥 코드를 뽑아놓았다. 그리고 며칠 후 밥을 하려 했을 때 밥솥은 더는 밥을 해내지 못했다. 전원이 완전히 나간 게 아니라 어떤 기호가 떴는데 난 그 신호가 더는 이젠 그만해야겠으니 멈춰달라는 밥솥이 보내는 신호라는 걸 알게 되었다. 얼마 전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나서 새로 구입했을 때도 이런 기분은 아니었다. 김치 냉장고가 집을 나갈 때 난 그동안 정말 수고했다는 말을 속으로 했었다. 그런데 밥솥에게는 왜 그런지 알 수 없지만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차오르고 차오른다.

아직 우리 가족은 새 밥솥을 들여놓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밥은 잠시 찜용 압력밥솥이 담당하고 있다. 오늘도 그 자리에 불도 들어오지 않는 밥솥이 그대로 놓여 있다. 어젯밤 둘째가 잠자기 전에 했던 말이 자꾸만 떠 오른다. 둘째는 밥솥이 고장 나서 버리고 새로 사야 한다는 말을 하자 눈물을 쏟아냈다. 잉잉 소리 내 울던 딸이 말했다.

“엄마, 우리 밥솥 버리지 말고 어디다 그냥 놔두자. 버리지는 말자!”

“그래, 그러자. 그러니까 그만 울어.”

딸의 눈에서는 한동안 눈물이 흘렀다. 내 마음도 좋지 않았다. 그러기로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아직 완전한 이별은 미뤄두기로 말이다. 이제 밥솥은 자리를 옮겨 우리 집 수납장 한 곳에 머무를 것이다. 이젠 지키지 말고 쉬라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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