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광제(2016)
조광제(2016), 회화의 눈, 존재의 눈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 강해
p7
메를로퐁티의 '눈과 정신'은 봄을 문제의 중핵으로 삼아, 보는 자와 보이는 것 간에 어떻게 존재론적인
위력이 작동하는가를 특히 회화의 세계를 중심으로 해명하는 책이다.
p17
각각의 사물이 그 나름의 표면을 지니는 것은 결코 사물 자체에서 유래한 것이 아닙니다.
... 우선 '각각'이라고 표현되는 개별성이 확 무너집니다. 모든 분절이 눈앞에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인지언어학이 합성성이란 전통언어학의 용어(래내커의 은유를 빌리면 벽돌쌓기)를 버리고
게슈탈트를 통해 프레임을 강조하는 부분이 떠오르던 대목.
p24
표면은 스스로의 자기동일성을 지닐 수 없습니다. 표면은 내부의 옹골참의 마지막 경계입니다.
그런 점에서 표면은 어찌보면 내부의 옹골참에 속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속한다고 하는 순간 그 내부의 옹골참으로부터 벗어납니다.
p27
사르트르는 "무는 기생충처럼 존재의 심장에 붙어 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무는 '두께가 0인 표면'이라는 우리의 표현에 의해 눈치챌 수 있는 바 대자인 의식을 지칭하고,
존재는 즉자를 칭합니다.
p29
본질은 현상의 독특한 경우일 뿐입니다. 현상을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할 수 없도록 하면서 끝내
현존하기만 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사물의 내부적인 옹골참으로, 철학에서 지칭하는 즉자 일반입니다.
그러나 이를 이분법이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즉자 일반의 표면이 현상이고, 표면은 내부의 옹골참의 마지막 경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표면과 내부를 구분하는 것을 이분법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불러도 무방하겠지요.
# 표면은 주객의 만남인 인터페이스 또는 전경-배경을 분리하면서 또 이어주는 경계를 생각나게 한다.
p38
봄은 본래의 완연한 사물을 잡아채기 위해 최대한 강력하게 치고 들어가는 최선의 방법이
자신을 없애버리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p43
메를로퐁티는 현상학자입니다. 현상학자는 대체로 과학주의와 대립각을 세웁니다.
...후설은 물리학을 비롯한 과학을 통해 밝혀지는 세계는 이론적•인위적 태도에 입각한 물리주의(과학주의)적인 세계로서 진정한 원초적인 세계인 생활세계와 대비된다고 말했습니다.
p47
핵심은 과학적 세계는 조작된 세계이지 참다운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구가 한 영역에서는 제대로 기능하는데 다른 영역에서는 왜 실패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p62
가시적인 세계와 나의 운동 기획들의 세계는 동일한 존재의 총체적인 부분들이다.
p63
거울의 이미지는 그렇게 선명한데도 그야말로 가짜입니다.
그 반면에 저 멀리 반짝이는 별빛은 희미하기 짝이 없는데도 운동하여 거기로 계속 가다보면 원리상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이같이 봄과 운동은 그 원리적인 가능성을 서로 교환함으로써 서로 교직됩니다.
#거울 이미지 은유는 가상세계를 표현하는 고전 은유.
p67
내 몸은 보는 자신을 보고, 내 몸은 만지는 자신을 만지고, 내 몸은 자기 자신에 대해 보이고 감각된다.
그것[내 몸]은 하나의 자기이다.
p71
만약 우리의 두 눈이 우리의 몸을 형성하는 그 어떤 부분도 시선하에 둘 수 없는 그런 방식으로 되어 있다면,
또는 만약 어떤 교활한 장치가 우리의 손이 다른 사물들은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데 우리의 몸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면, 스스로를 반조하지 못하는 이 몸은 스스로를 감각하지 못할 것이고, 완전히 살이 아닌 거의 금광석처럼 굳은 이 몸은 더 이상 인간의 몸도 아닐 것이고 또한 인간성도 없을 것이다.
p78
세잔 "우주는 색으로 되어 있다. 나 자신도 색으로 되어 있다"
p81
그려진 동물들은 분명 사물들 자체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동물들은 그 사물들에 "기묘한 닻줄"을 내리지 않고서는 현존할 수 없습니다.
사물들에 닻줄을 내리고서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와 같이, 철학적으로 말하면
"존재의 후광"처럼 둥실 떠올라 있는 것입니다.
p85
시선과 사물의 결합,
그것은 본래 시선(봄)과 사물(보이는 것)이 저 바탕에서부터 동근원적인 것, 즉 같은 뿌리에서 출발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결합을 무시하는 것이 바로 정신을 중심으로 한 지성주의요,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
즉 시선과 사물의 이분법인 겁니다.
# 자꾸 불교의 인연법이 생각나는 반복되는 실체가 아닌 관계중심의 설명.
p86
눈은 몸 전체를 눈으로 만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분적인 전체' 또는 '전체적인 부분'입니다.
p96
대략 세 가지의 세계
하나는 저기 사물 자체로서의 바위,
하나는 화가의 시선에 걸려 있는 저기 바위,
마지막 하나는 화폭 위에서 태어나고 있는 바위
... 화폭에서 태어난 바위 ... 첫번째의 저기 사물자체로서의 바위와
여기 화가의 시선에 걸려 있는 바위가 동일성을 띠면서 '엉뚱한 차원에서 등장하는 바위'입니다.
# 모리스의 기호 삼분을 함께 볼 것.
p97
메를로퐁티의 몸 철학의 위력에 의하면, 세계의 심장과 몸의 중심은 '동일한 재료'로 되어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사물 자체로서의 사물과 보이는 사물은 근본적으로 동일한 사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p99
분필
'이 흰색'을 보고자 할 때, 묘하게도 '이 분필' 즉 사물이 자꾸만 보입니다.
보이는 사물인 이 분필이 전면에 나서고자 하면서 '이 흰색'을 다투어 지워버리는 식입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말하면 분필의 '이 흰색'이야말로 우리가 보기에 사물로서의 이 분필을 바로
분필이게끔 하는 '가시적인 수단들' 중 하나다. 우리가 보기에 '산'이 스스로를 산으로 만드는 데에는
이러한 '가시적인 수단들'이 필수적이다.
p101
세속적인 의미에서 가시적인 것은 이러한 그의 전제들을 망각한다.
즉 그것은 재창조되어야 하고 그것에 포획된 환영들을 해방하는 전반적인 가시성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p103
퐁티 "회화의 탐문은 알고 있는 사람이 모르는 사람에게 던지는 물음,
즉 학교의 선생이 던지는 물음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는 사람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봄에게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서 만들어지는 봄에게 던지는 물음이다.
p105
능동과 수동이 워낙 분별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보는 자와 보이는 것을, 그리는 자와 그려지는 것을 더 이상 구분하지 못한다.
어머니의 몸속에서 잠정적으로 가시적인 것으로 있었을 뿐인 것이
우리에게뿐만 아니라 그 자기에게도 가시적인 것이 되는 순간 한 인간이 태어난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렇다면 화가의 봄은 계속되는 탄생이다.
# 탄생 은유 : 보는 행위와 존재론을 절묘하게 혼성.
p106
퐁티 "모든 다른 기술적인 대상들처럼, 도구들처럼, 기호들처럼
거울은 보는 몸에서 보이는 몸으로 나아가는 개방된 회로 위에서 생겨났다.
모든 기술은 "몸의 기술"이다."
p108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나 흔히들 말하는 개념은 거울에 반사되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반사하는 성격을 띠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를로 퐁티 '지각의 현상학' 중 "각각의 사물은 모든 다른 사물의 거울이다"
p121
반사된 상은 눈을 속인다. 그것은 대상 없는 지각을 만들어내지만 그러나 그 지각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관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세계에는 사물 자체가 있다. 그리고 사물 자체 말고 반사된
광선인 다른 사물이 있다. 이 다른 사물은 사물 자체와 규칙적으로 대응한다. 그러므로 인과성에 의해
외부적으로 연결된 두 개의 개체가 있다. 사물과 사물의 반사된 이미지 간의 유사성은 둘 모두에 있어서
외적인 명칭에 불과하며, 그 유사성은 사유에 속한다.
유사성이라는 모호한 관계는 사물들에 있어서는 명백한 투영projection 의 관계이다.
# 인과성과 유사성은 사후적이다. 사유는 모호하고 동시적이다.
p122
만약 그가 거울 속의 이미지에서 자신을 인지한다면, 만약 그가 자신의 이미지가 '닮았'다는 것을 발견한다면
이러한 연결을 짜내는 것은 그의 사유이다. 거울의 이미지는 전혀 그의 것이 아니다.
p124
[데카르트주의자가 보기에는] 도상들도 힘이 없다.
설사 동판화가 숲, 마을, 사람, 전투 장면, 폭풍을 생생하게 "우리에게 재현해준다"고 할지라도,
동판화는 그것이 재현하고 있는 것들과 닮지 않는다.
p127
유사성은 지각의 동기[원인]가 아니라 지각의 결과이다.
말할 것도 없이 정신적인 이미지,
즉 부재한 것을 우리에게 현전하게 하는 투시는 존재의 심장을 향해 뚫려있는 구멍이 전혀 아니다.
p132
데카르트가 특별히 동판화를 중심으로 회화에 대해 말한 것은 동판화에서 색채가 전혀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고, 그렇게 색채를 배제한 회화를 논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그가 길이 중심으로 사물을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로크의 사물의 제1성질이란, 물체가 어떤 상태에 있더라도 그것으로부터 결코 분리될 수 없느 성질로서 구체적으로는 형태, 크기, 옹골참, 수, 운동이나 정지 등 객관적인 성질이다.
이에 비해 제2성질은 색, 향기, 소리, 맛 등 주관적인 것으로 물체 자체의 성질이라 말할 수 있느나
관념에 나타난 그대로가 실재에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여겨졌다.
로크에 이어 나타난 경험주의자 버클리는 색이야말로 오히려 제1성질이고,
형태란 색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에 제2성질이 아니냐 하고서 로크를 비판.
# 노양진 선생님(인지철학)을 통해 합리주의(지성주의), 경험주의, 체험주의의 차이를 공부하면 좋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