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헐적 비건

박쥐같은 때때로 비건의 성장기 in 폴란드

by Delfina

비건에 대한 첫인상


(이것은 내가 오늘 아침에 먹은 것들이다. 이것이 내가 예전에 비건 하면 떠올렸던 이미지에 부합하기에 올린다. 사과에 땅콩버터, 베이비당근, 그리고 키위)



나는 폴란드에서 2016년도 부터 살고있다. 그리고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내가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될 줄은. 보통 채식주의, 비건 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드는 생각은 초록색 샐러드, 동물권 운동가, 힘 없음, 영양실조 등의 이미지만이 떠올랐기 때문일까.




***


(그 당시 해 먹은 음식 사진 중 하나이다. 저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먹는 도중 찍은 건 확실하다.)





나는 고기를 정말 좋아했다. 매일 의식적으로 먹을만큼. 다이어트할 때도 단백질 섭취를 위해야 한다며 고기는 꼭 먹었다. 그게 몸에 좋다고 생각했기에. 나의 육식은 폴란드에 와서도 이어졌다. 그리고 한국에서보다 되려 더 먹었다. 한국보다 고기값이 싸고 부담없이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 나는 한 끼에 짜장라면과 돼지목살 500g을 노릇하게 구워 곁들여 먹고, 닭고기 사다 닭도리탕을 요리해 먹는 등, 참 맛있게도 해먹으며 성에 차지 않았는지 고기들을 두 세 팩씩 사 냉장고에 채워놓곤 했었다. 한국에서와 같이 매일 먹어야했으니까.



***



나는 그 무렵,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그 해에 지금에도 정말 친한 친구사이를 유지하고 있는 내 친구 피오트르를 만났다. 나는 기숙사 3층에 살고, 피오트르는 그 아래층에 살았었다. 우리는 가끔 계단에서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하곤 했다. 피오트르는 정말 슬라브 계열의 정석적인 꽃미남이라 나는 굉장한 호감을 느꼈기에, 그가 내게 인사를 건낼 땐 기꺼이 웃으며 인사를 하곤 했다. 나중에나 알게되었지만 그는 남자친구가 있었다.



***



어느날 기숙사 2층에 사는 친구와 공용주방에서 같이 늦은 점심을 해먹으려는데, 그 곳에 피오트르가 있었다. 그는 오븐 앞에서 속을 들여다보며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하고 물어봤다.


“뭐 요리하니?”


피오트르가 답했다.


“가지랑 쥬키니를 굽고있어.”



나는 당연히 이 심심한 채소들이 요리의 전부라고 생각치 않았다.



속으로 확신했다. 그는 사이드 디쉬를 만드는거라고.





"또 다른건 무엇을 먹는데?"


물어보니 그것 뿐이란다.



당황했다. 그럴수가 있나?..


그리고 이것을 요리한다고 칠 수 있는지?…



여하튼 대화도중 알게된 것은 그는 비건이었는데, 할머니 댁에 자주 가기 시작하면서 채식을 하기 힘들어졌다고 했다. 폴란드는 목축업과 낙농업이 발달된 나라로 전통적인 가정식에는 고기와 감자, 절인 양배추가 주로 올라온다.


그리하여 본인식으로 조리해먹던 채소가 그리웠던 그는 오븐에 채소를 굽고있던 것이었다.


난 거기서 그게 맛있니? 라며 조심스레 물어봤다. 믿기지 않았다. 엄마가 해줘서가 아닌 본인이 맛있어서 고기의 들러리로서가 아닌 직접 채소만을 조리한다는게



.. 그는 그렇다 하였다.



이것이 내가 느낀 처음 본 비건의 첫인상이었다.




***




한국에서도 나는 비건을 본 적도 주변에서 들은적도 없었다.



그나마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자면,


서먹한 친구 한 명이 본인의 어머니가 고기냄새때문에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그래서 본인도 고기자연스레 잘 먹지 않게 됐다고한...


이 경우가 그나마 비건과 가까운 사례였다.



그리고 난 그 때에 그게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 맛있는 것을 못먹는다니 하며..



그 당시 나는 다양성을 존중할 줄 몰랐으며 내 생각이 이상한 것인줄도 몰랐다.




***





그 후, 나는 같은 기숙사에 살던 우크라이나 친구 한명을 사귀게 되는데, 그 때 그 친구의 친구들내 방에 놀러오게 된 적이 있었다. 굉장히 갑자기 성사된 만남이었다.



몇 시간 뒤 친구들이 내 방에 오기로 되어있었고, 그 바람에나는 무언가 한국인으로서의 손님대접의 의무감 + 열악한 기숙사 환경에 부담을 느끼며 부랴부랴 무언갈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요리에 자부심이 있던 필자는 건너지 말아야 할 강을 건너게 되는데..



내 딴에는 그것이 한 냄비 요리라 간단하고 소고기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하며 준비한 밀푀유 나베였다. 문제는 이 곳의 소고기는 우리나라 소고기와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우리나라 소고기와 달리 이 곳의 소고기누린내가 심하고 스테이크로 나온 소고기 말고는 양념을 해서 굴라쉬같은 푹 고아먹는 스튜 형태로 자주 먹기 때문에 딱딱하고 육즙도 없을 뿐더라 질겼다. 그걸 몰랐던 나는 지방없는 부위인 굴라쉬용 고기로 열심히 얇게 썰고 겹겹이 쌓으며 만들었다.



그렇게 친구들이 도착하고 거의 완성이 되어 내놓기 전에 간을 봤다.


한 입.


망했다



속상함은 뒷전이고, 빨리 수습을 해야했다. 소스에 적셔먹으면 어떻게든 괜찮겠지 하며 친구에게 스위트 칠리 소스를 사와달라 부탁했다. (구할 수있는 소스들 중 밀푀유나베에 적합한 유일한 소스였다.)


하지만 이것은 재앙의 서막일 뿐,




그 당시 그 우크라이나 친구가 데려온다고 했던 수 보다 많았던 3-5명 정도 왔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중 친구 두명이 난감함을 표했다.



본인들은 고기를 안 좋아하고 그 중 한명은 특히 소고기먹지도 않는다고 말이다.



속으로 내가 준비한 것은 이것밖에 없는데.. 하며 당황했다.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상황이 흘러갔기 때문이다. 고기를 안 좋아하는 사람, 소고기싫어하는 사람의 경우는 내 머릿속에서 존재하지 않았기에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 후 우리는 홍차를 마시고 친구들중 몇 명이 사온 과자를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이 해프닝은 자연스레 해소가 되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냥 과자와 차를 내오는 게 내게도 부담이 없는, 간단하고 모두에게 편리한 대안이었을 텐데, 그 당시엔 만나면 당연히 같이 밥을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고기를 안 먹는 친구에 대한 경우는 전혀 생각치도 못했었다.


***


한국에선 같이 만나서 논다고 하면 당연히 맛있는거 먹으며 수다떨고 친해지는게 정석코스 아닌가. 에서 논다해도 삼겹살굽고 불닭 끓여먹거나 뽀득 소세지 데코된 어묵이불 덮은 엽떡, 교촌 허니갈릭, 족발 등등 이런 자극적인 메뉴들 먹으며 친구들과 만나는게 당연했던 나는 그 때 굉장한 당혹감과 이질감을 느꼈다.



지금보다 어렸던 는 내 에 놀러온 손님들맞이가 실패함에 속상해 하며, 그 고기 안 좋아한다던 친구들과는 아쉽지만 이제 밥은 같이 못 먹겠군 하며 생각했다.


일화들이 내 비건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채식주의라면 머릿속엔 물음표와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하던 가 어떻게 간헐적 비건이 되었을까. 솔직하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도 가끔은 고기를 먹는다. 하지만 전과 달라진 것고기를 점점 덜 먹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만약 한국에 살았다면 나는 아직도 부정적인 의문을 갖은채 채식주의유난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살고있는 이 환경이 나를 이렇게 바꾸었다고 확신하기에, 내 주위 친구들이 하는 걸 보며 나도 이렇게 된거다.


흥미로운 것은 (간헐적으로) 채식을 하면 먹을게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내 밥상은 더 다채로워졌고 재밌어졌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비건이 되는 길은 가벼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채식을 시작 한다고 했을 때 부담을 갖고 바로 완전비건이 되지 않아도 괜찮고, 채식한다면서 왜 고기를 먹냐고 스스로를 비난 하거나 남에게 비난받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채식의 범위 그리고 채식 하는 이유 또한 생각보다 다양하기에, 환경을 위한 노력, 건강을 위한 노력, 동물보호를 위한 노력, 종교, 그냥 멋지고 좋아서, 맛있어서 등 그것이 무엇이든 해 본다는 것에 이미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은 이랬던 내가 채식에 점점 스며들게 된 일화들을 풀어보려 한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