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드카 쇼팽 감자, 겨울

낭만적이게 시린 폴란드 겨울 날씨

by Delfina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뭘까.

감자? 보드카? 좀 더 나아가면 쇼팽? 무기 수출국?

나 또한 그 정도였다.



이곳에 살면서 가장 크게 느껴지는 것은 날씨이다. 아마 매일 마주하는 일상이기에 그럴 것이다.



***



5월에 눈을 본 적이 있는가?

서울에 살았던 나는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겨울



오후 3시면 가로등이 켜지고 곧이어 어둠이 커텐처럼 하늘을 덮는다.


‘그래도 오후 5시는 되어야 깜깜해지는 게 상식 아닌가.’


하늘에 대고 불평을 해본다.


내겐 너무 낯선 일들이었다. 그리고 사실 처음엔 이게 싫지 않았다. 그것들은 왠지 새롭고, 한국에선 사실 가끔 해가 성가신 경우도 있었기에, 나쁘지만은 않아 라며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였다.


허나 그럼에도 한 가지 조금 무섭기까지 한 것은 시끄러운 바람소리였다.


나는 바람 때문에 귀가 시릴 순 있어도, 바람이 불어내는 소리 때문에 귀가 아플 수 있다는 건 알지 못했다.


창문을 때리며 위이잉- 흐위이잉- 하는 소리들은 오소소 하게 목 뒤편 머리카락을 삐쭉 서게 하고 창문이 닫힌 집 안에 있음에도 그 굉음들이 날 괴롭게 할 줄은 말이다.


그런 날이면 가끔 길에서 쓰러진 나무들도 만나기도 했다. 그리곤 속으로 생각했다.


‘세상에.. 내 귀만 아픈 게 아니었구나’



초등학교 교가마다 이 나오며 배산임수를 교과서에서 배우는 바람막이 산으로 뒤덮인, 땅이 부족해 산에 아파트를 세우는 나라에 살았던 필자로선 정말 충격적이었다.



***



아침에 일어나 창 밖으로 시야를 옮기면 그곳엔 뒤덮인 구름이 있다. 하늘은 물먹은 회색. 내일도, 일주일 뒤에도, 한 달 뒤에도 회색


맞은편 건물 양철 지붕에 앉은 얇고 바삭해 보이는 새하얀 서리들. 그 위 굴뚝 위로 피어나는 매캐한 연기가 보인다. 도대체 뭘 태우는 걸까. 이 냄새를 형용할 수 없지만 이게 유독물질이란 건 확신한다.



‘와. 아침에 침대 머리맡에 꽂히는 햇살에 불평하던 내가,

해를 기다리는 날이 올 줄이야. ‘



‘내일은 해가 뜨겠지? 이 말을 은유적 표현으로 쓰지 않게 되다니.

희망하다, 소망하다 뜻을 이렇게도 느낄 수 있다고?‘




충격적이었다.


그리고 가끔은 약이 올랐다. 해를 기다리고 있으면 비가 쏟아지곤 했으니까.


왜 예술가들이 이런 환경에서 영적으로 발전하는지에 대해 단번에 느껴지는 순간들이었다.


나는 원체 방긋방긋 잘 웃고 낙천적이었는데, 점점 웃음이 얼굴에 가볍게 걸리지 않곤 했다.



***


갑자기 기분이 안 좋을 때면 습관처럼 날씨 어플을 열고 기압을 체크한다.

그러곤 속으로 되네인다.


’ 커피 한 잔 마셔야겠네 ‘


손에 쥔 컵의 온기를 찬 손가락에 쥐며,


‘오늘은 해가 몇 시에 지나‘


별 의미 없는 스크롤.



**



바람은 흉폭하고 피부에 느껴지는 공기는 따갑게 차가우며 빛은 금방 달아나 어둠에게 자릴 내주니 나는 움츠러들기 딱 좋았다.


날이 금세 어두워짐에 자꾸 집에 있어야 할 것 같고, 행동반경이 갈수록 짧아졌다.


밖에 쏘다니길 즐겨하고 걷는 것을 좋아했는데, 운치 있게 느껴지던 가로등은 어둡게 느껴 짐에 동시, 그렇게 좋아하던 산책이 부담스러워졌다.



내가 알던 나는 나는 자꾸 과거형이 되어간다.



좋아하던 것을 못하게 되니 불안과 초조가 날 감싸 안았다.


나는 그렇다고 울지도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며 텅 비어갔다.


이러한 것들을 학업에 집중하며 어느 정도 마음속 공허를 채울 순 있었지만 그 속에 “나”는 점점 사라졌다.


그에 발악하며 내가 나를 조금 채우면 모래를 쥔 듯, 내 어딘가에 뚫린 구멍으로 금세 빠져나가는 듯했다.


이러한 행동들은 의식적인 행동이 아닌 본능적인 행동들이었기에, 무언가 불편하다는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고 불안과 초조는 내게 불편한 감정에서


나와 도망치라고 종용했다.


나는 그러면 안 됐었다.


이렇게 나는 희미해져 가는 “나”를 모른척한 대가를 서서히 치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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