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를 판데믹 터지기 전 해의 여름에 입양했다.
피아노 뚜껑을 열면 왼쪽 옆면에 MASCAGNI라고 적혀있었는데, 찾아보니 이 회사에서 나온 그랜드 피아노들의 사이즈 모델을 작곡가 이름으로 구분한 듯하였다. 마스카니 말고 브람스, 하이든도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나는 연습할 공간이 필요했는데, 우리 학교는 연습실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강의실이 비면 그게 곧 연습실이다.
교수님과 강사님들은 빈 강의실에 예약된 시간이 없으면 즉흥적으로 강의실을 예약하여 사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매일 정말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7시 반-50분까지 학교에 가 빈 강의실에 가도 8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적혀있는데, 그때에 수업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보통은 강의실 일정에 8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적혀있어도 해당 교수님이 10-11시나 되어야 오시던 분이라 맘 놓고 연습하던 때에 8시 반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쫓겨나거나 그 이후에 연습할 강의실을 잡으려 해도 이미 수업이 있거나 없으면 다른 학생들이 와서 연습을 하고 있기에 빈 강의실이 더 이상 없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또한 나도 듣는 수업들이 있기에 해당 강의실의 교수님 수업 종료시간과 내가 수업 없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그곳에선 더 이상 연습하기가 힘들었다.
또,
학교 내의 강의실 중에는 연습할 수 있을만한 컨디션의 그랜드 피아노 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나는 이 학교에서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항상 피아노과 학생들 사이에선 연습실로 인한 침묵의 혈투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일찍 일어나고 강의실 정보를 물어물어 철저히 그날의 연습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교수님 다음에 있는 다른 교수님의 레슨에 쫓겨나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학교에서 국제콩쿠르이라도 열리는 날에는 참가자들에게 좋은 강의실(연습실)을 우선으로 제공하느라 연습할 강의실을 잡기가 더 힘들어져 3-4일간 피아노를 만져보지도 못한 날도 있었다.
콩쿠르기간은 그렇다 쳐도, 강의실을 잡는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던 전공실기 A 교수님은 내가 핑계를 대는 거라 생각하신 듯했다. 오해. 너무 억울했다. 내가 정말 그랬다면 나는 수긍했겠지만 나는 배움에 목마른 학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잘하고 싶었는데, 일찍 일어나고 애를 써도 내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에 나는 내적으로 점점 의기소침해져 갔다. 수업이 폴란드어와 전공실기뿐이던 준비학년 때는 연습실을 찾아다니는데 내가 폴란드어와 전공실기 말고는 다른 수업이 없으니 웬만하면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론수업이 많던 1학년, 합주수업이 많던 2학년 땐 그게 큰 문제가 되었다.
1학년때 내 방에는 전자피아노가 있긴 했지만 그때 내가 있던 지금 사는 방(2번 방)의 옆방(3번 방)인데, 지금 방과는 다르게 한 면의 벽 중앙에 방(3과)과 방(4번) 사이 문을 커다란 옷장으로 막아놓은 방이어서 방음이 굉장히 취약했다. 방이 커서 생활소음정도는 신경이 안 쓰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방귀 뀔 때는 베란다에 나가서 뀌었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노는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내가 이어폰을 끼고 친다 한들 건반의 탕탕거리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셰어하우스 옆 방 친구에게 나 스스로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하루종일 본인 방에서 공부하고 밖에도 잘 안 나가는 친구라 방해될까 봐 연습을 해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습을 마치고 방에 앉아있다 옆방에서 한숨소리가 들리면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혹시... 나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연습환경으로 준비학년, 1, 2학년까지 3년을 보내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생각이 되어 중고 피아노를 알아본 후 사고 잘 쓰고 다시 팔자는 마음으로 입양한 게 저 피아노다. (2학년 때부터 지금 사는 2번 방으로 이사했다.)
내가 사는 건물은 할배보다 몇 년 전에 태어난 19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한 층에 한 세대만 살고, 층고는 3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층과 층 사이에는 40cm의 콘크리트로 되어있다고 하였고, 나는 2학년 때 벽과 벽 사이에 문이 있는 방이 아닌, 제대로 된 벽이 있는 지금 사는 방으로 이사했다. 2학년이 끝나곤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피아노를 들였다. 3층에 사는 나는 이웃이라곤 옆방 친구들과, 위 아랫집 이웃이 전부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들 이해해 주었다. 이때엔 이미 대부분 그때와는 다른 친구들이 내가 사는 셰어하우스로 이사를 왔고, 한 명 빼고는 다들 우리 학교 출신이라 별 문제도 되지 않았다.(그래도 혹시 모르니, 옆방 친구들 방에 가서 확인해 보니 내 방문만 잘 닫고 치면 복도는 시끄러워도 방에까지는 소리가 크게 전달되지 않았다. 피아노 아래는 흡음재를 한국에서 구해와 깔고, 너무 이른 아침과 밤에는 집에서 연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무슨 축복인지 (역시 할아버지는 복덩이다.) 위아래 이웃들은 감사하게도 내 연주를 좋아해 주었다. 아래층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가끔 복도에서 만나면 내 손에 든 악보를 보곤 당신이 오늘 바흐를 연주했냐며,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고 고맙다고 하셨고, 위층은 커플이 사는데 본인들은 내 피아노 소리 듣는 게 즐거우니 더 자주 더 크게 쳐달라고 하였다. 믿기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종종 이웃과 연습 때문에 분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 윗집과는 내 방 천장 물이 새는 관계로 연락을 자주 해야 했었는데, 그 계기로 친해지고 초대를 받아 나이차이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친구가 되었고, 윗집에 올라가 수다 떨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지금도 아냐는 가끔 오늘 바나나빵을 구웠다고 아침 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복덩이 같은 할배가 들어온 이후 나는 날아다녔다. 실내악 합주도 시험기간에 강의실을 잡을 수 없을 때면 내 방에서 연습하면 되었고, 내가 아등바등 일찍 일어나고 노력해도 연습실이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허탈할 만큼 삭- 사라졌다. 눈 뜨면 내 옆에 있는 게 피아노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본인 소유의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특별했다. 학교 연습실에서 잠깐 만나는 악기들과 다른 유대감이 있었고, 조율사 아저씨를 불러 조율을 할 때면 옆에서 지켜보며 피아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피아노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친해졌다. 가끔 시험 볼 땐 피아노 볼트들이 빛에 반짝이는 게 뭔가 낯설고 무섭기도 했었는데 할배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론 그냥 익숙하고 친근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들이다.
그리고 저 피아노가 주는 영감들이 있었다. 저 악기로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낡은 악기가 주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그런 따스한 마음의 울림들이 있다. 그럼에도 전공실기 교수님 B (나는 이때 교수님 두 분 밑에서 공부했다.) 은 저 피아노는 오래되고 해머에 이미 살이 없어 날카로운 소리가 나니 그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게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하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아버지와 매일 마주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덕에 날카로운 소리에 진짜 익숙해져서 학교에서 어떻게든 일주일에 몇 번은 연습해야 했지만, 내 불안함을 잠재워주고 내게 영감을 부어준 나는 할배가 너무너무 고맙다.
지금 우리 할배는 전원주택에 가정을 꾸리고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음악학교 교사인 나의 친구 체칠리아 집에서 잘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