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105살 할배와의 동거 II

할배와 동거하게된 사연

by Delfina

나는 그를 판데믹 터지기 전 해의 여름에 입양했다.






피아노 뚜껑을 열면 왼쪽 옆면에 MASCAGNI라고 적혀있었는데, 찾아보니 이 회사에서 나온 그랜드 피아노들의 사이즈 모델을 작곡가 이름으로 구분한 듯하였다. 마스카니 말고 브람스, 하이든도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하는 나는 연습할 공간이 필요했는데, 우리 학교는 연습실이라는 개념이 따로 없다. 강의실이 비면 그게 곧 연습실이다.



교수님과 강사님들은 빈 강의실에 예약된 시간이 없으면 즉흥적으로 강의실을 예약하여 사용이 가능하기도 하다. 그래서 매일 정말 불안한 하루를 보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해서 7시 반-50분까지 학교에 가 빈 강의실에 가도 8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적혀있는데, 그때에 수업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없다.


보통은 강의실 일정에 8시부터 수업이 있다고 적혀있어도 해당 교수님이 10-11시나 되어야 오시던 분이라 맘 놓고 연습하던 때에 8시 반에 갑자기 들어오셔서 쫓겨나거나 그 이후에 연습할 강의실을 잡으려 해도 이미 수업이 있거나 없으면 다른 학생들이 와서 연습을 하고 있기에 빈 강의실이 더 이상 없는 경우가 다반수였다. 또한 나도 듣는 수업들이 있기에 해당 강의실의 교수님 수업 종료시간과 내가 수업 없는 시간이 맞지 않으면 그곳에선 더 이상 연습하기가 힘들었다.


또,


학교 내의 강의실 중에는 연습할 수 있을만한 컨디션의 그랜드 피아노 수는 제한되어 있었고, 나는 이 학교에서 한 명의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항상 피아노과 학생들 사이에선 연습실로 인한 침묵의 혈투가 이어졌다.


어떤 날은 일찍 일어나고 강의실 정보를 물어물어 철저히 그날의 연습을 준비했음에도 불구하고 또 그 교수님 다음에 있는 다른 교수님의 레슨에 쫓겨나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한 날도 있었고, 학교에서 국제콩쿠르이라도 열리는 날에는 참가자들에게 좋은 강의실(연습실)을 우선으로 제공하느라 연습할 강의실을 잡기가 더 힘들어져 3-4일간 피아노를 만져보지도 못한 날도 있었다.



콩쿠르기간은 그렇다 쳐도, 강의실을 잡는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던 전공실기 A 교수님은 내가 핑계를 대는 거라 생각하신 듯했다. 오해. 너무 억울했다. 내가 정말 그랬다면 나는 수긍했겠지만 나는 배움에 목마른 학생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잘하고 싶었는데, 일찍 일어나고 애를 써도 내 맘처럼 되지 않는 현실과의 괴리에 나는 내적으로 점점 의기소침해져 갔다. 수업이 폴란드어와 전공실기뿐이던 준비학년 때는 연습실을 찾아다니는데 내가 폴란드어와 전공실기 말고는 다른 수업이 없으니 웬만하면 강의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론수업이 많던 1학년, 합주수업이 많던 2학년 땐 그게 큰 문제가 되었다.


1학년때 내 방에는 전자피아노가 있긴 했지만 그때 내가 있던 지금 사는 방(2번 방)의 옆방(3번 방)인데, 지금 방과는 다르게 한 면의 벽 중앙에 방(3과)과 방(4번) 사이 문을 커다란 옷장으로 막아놓은 방이어서 방음이 굉장히 취약했다. 방이 커서 생활소음정도는 신경이 안 쓰였지만, 솔직히 말해서 방귀 뀔 때는 베란다에 나가서 뀌었다. 그러다 보니 피아노노는 오죽하겠는가. 아무리 내가 이어폰을 끼고 친다 한들 건반의 탕탕거리는 소리는 숨길 수 없었기 때문에 셰어하우스 옆 방 친구에게 나 스스로가 너무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그 친구는 하루종일 본인 방에서 공부하고 밖에도 잘 안 나가는 친구라 방해될까 봐 연습을 해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연습을 마치고 방에 앉아있다 옆방에서 한숨소리가 들리면 그게 사실이 아닐 수도 있는데 괜히 혹시... 나 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힘든 연습환경으로 준비학년, 1, 2학년까지 3년을 보내고 더 이상 이렇게는 안 되겠다 생각이 되어 중고 피아노를 알아본 후 사고 잘 쓰고 다시 팔자는 마음으로 입양한 게 저 피아노다. (2학년 때부터 지금 사는 2번 방으로 이사했다.)









내가 사는 건물은 할배보다 몇 년 전에 태어난 191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한 층에 한 세대만 살고, 층고는 3m 정도로 높은 편이다. 층과 층 사이에는 40cm의 콘크리트로 되어있다고 하였고, 나는 2학년 때 벽과 벽 사이에 문이 있는 방이 아닌, 제대로 된 벽이 있는 지금 사는 방으로 이사했다. 2학년이 끝나곤 집주인의 동의를 얻어 피아노를 들였다. 3층에 사는 나는 이웃이라곤 옆방 친구들과, 위 아랫집 이웃이 전부였는데 다행스럽게도 다들 이해해 주었다. 이때엔 이미 대부분 그때와는 다른 친구들이 내가 사는 셰어하우스로 이사를 왔고, 한 명 빼고는 다들 우리 학교 출신이라 별 문제도 되지 않았다.(그래도 혹시 모르니, 옆방 친구들 방에 가서 확인해 보니 내 방문만 잘 닫고 치면 복도는 시끄러워도 방에까지는 소리가 크게 전달되지 않았다. 피아노 아래는 흡음재를 한국에서 구해와 깔고, 너무 이른 아침과 밤에는 집에서 연습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게 무슨 축복인지 (역시 할아버지는 복덩이다.) 위아래 이웃들은 감사하게도 내 연주를 좋아해 주었다. 아래층에 사시는 할아버지는 가끔 복도에서 만나면 내 손에 든 악보를 보곤 당신이 오늘 바흐를 연주했냐며, 덕분에 하루를 기분 좋게 시작했다고 고맙다고 하셨고, 위층은 커플이 사는데 본인들은 내 피아노 소리 듣는 게 즐거우니 더 자주 더 크게 쳐달라고 하였다. 믿기지 않았다. 내 친구들은 종종 이웃과 연습 때문에 분란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후 윗집과는 내 방 천장 물이 새는 관계로 연락을 자주 해야 했었는데, 그 계기로 친해지고 초대를 받아 나이차이가 꽤 나는데도 불구하고 우린 친구가 되었고, 윗집에 올라가 수다 떨고 커피를 마시곤 했다. 지금도 아냐는 가끔 오늘 바나나빵을 구웠다고 아침 먹으러 오라고 연락을 하기도 한다.






KakaoTalk_20240326_123454789.jpg


복덩이 같은 할배가 들어온 이후 나는 날아다녔다. 실내악 합주도 시험기간에 강의실을 잡을 수 없을 때면 내 방에서 연습하면 되었고, 내가 아등바등 일찍 일어나고 노력해도 연습실이 없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허탈할 만큼 삭- 사라졌다. 눈 뜨면 내 옆에 있는 게 피아노인데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본인 소유의 그랜드 피아노가 있다는 것은 특별했다. 학교 연습실에서 잠깐 만나는 악기들과 다른 유대감이 있었고, 조율사 아저씨를 불러 조율을 할 때면 옆에서 지켜보며 피아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피아노에 대해 좀 더 이해하고 친해졌다. 가끔 시험 볼 땐 피아노 볼트들이 빛에 반짝이는 게 뭔가 낯설고 무섭기도 했었는데 할배가 우리 집에 온 이후론 그냥 익숙하고 친근했다. 기대하지 못했던 효과들이다.



그리고 저 피아노가 주는 영감들이 있었다. 저 악기로 피아노를 칠 때 느끼는 낡은 악기가 주는 말로 표현이 안 되는 그런 따스한 마음의 울림들이 있다. 그럼에도 전공실기 교수님 B (나는 이때 교수님 두 분 밑에서 공부했다.) 은 저 피아노는 오래되고 해머에 이미 살이 없어 날카로운 소리가 나니 그 소리에 익숙해지지 않게 학교 연습실에서 연습하라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할아버지와 매일 마주하며 친하게 지냈다. 그 덕에 날카로운 소리에 진짜 익숙해져서 학교에서 어떻게든 일주일에 몇 번은 연습해야 했지만, 내 불안함을 잠재워주고 내게 영감을 부어준 나는 할배가 너무너무 고맙다.


지금 우리 할배는 전원주택에 가정을 꾸리고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이자 음악학교 교사인 나의 친구 체칠리아 집에서 잘 살고 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간헐적 비건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