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하고 일년 지옥에서 부활하다
퇴사를 했다.
2021년6월말의 일이다.
신입때부터 9년넘게 다녔던 회사. 나는 왜인지 아직도 우리회사, 저회사, 이러며 회사와 나를 연결짓고 있고는 했다. 구남친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처럼 지긋지긋한 기분이 되면서도 나의 성인인생의 대부분을 함께한 미운정 징한정 괘씸한정 뭔진몰라도 들었었나보다.
그이후의 이야기는 무려 1년의 공백이있다.
나라에서 지정한 정식 실업자로서 실업수당도 받았고, 대학원을 준비하는 수험생이었고, 세금을 내지못해서 독촉당하는 민간인이었고, 꿈을 향해 해외대학 수업을 하나듣기도 했으며, 자원봉사도 하고, MBA에세이를 봐주는 카운셀러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들에서 나는 점차 뭔가가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정말 확신하고 이렇게 나와 잘 맞을 수 있을까, 운명이다, 라고 생각했던 대학원에 떨어지고, 우울해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냥 백수라 그랬는지. 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일이 하고싶다?
일이 재미있을것 같다?
이 무슨 얼토당토없는 감정이란 말인가. 그럴리가 없다.
그럴리가 있었다.
나는 왜인지 일이 하고싶어졌다. 그런데 일을 하고싶다고 할 수 있는건 아니었다. 아무일이나 하고 싶은건 아니었다. 점점 더 잘못되어감을 느꼈다.
그와는 반대로 나는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웠고, 세상의 시선, 돈, 친구, 결혼, 연애, 자존심, 뭐 이런거 다 상관없이 나와 강아지만 있는 나만의 왕국에서 좋은 친구들과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
일은 하고 싶었지만 전회사에 내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뇌에게 되뇌이는 것만으로도, 나의 마음은 차올랐다. 너무 행복했다. 이보다 더한 만족감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가보싶다고 생각지도 못했던 대학을 친구가 알려왔다.
나와 잘 맞을 것같다며. 내용을 들어보니 엄청 잘맞는 건 아닌데 대학자체는 좋아보였다. 그러나 한번 천년의 사랑을 경험하고 아직 콜롬비아를 놓아줄 수 없었던 마음은 새로운 대학에 대한 호기심을 우울의 늪으로 잡아끌었고 한달 정도 대학전형 봐야하는데 하는 생각만가지며 유튜브만 보면서 지냈다.
무기력하면서도 일하고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또 일할곳은 없으면서도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위기감은 있으면서도 강아지와 매일이 행복한 이상한 시간이 지나갔다. 어느날 나는 홈페이지를 열수있었다. 컴퓨터가 고장났고 새로살 돈이 없어서 빌린 컴퓨터라 친구가 검색한 기록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대학의 홈페이지를 보면서 나는 어플라이를 진행했다.
콜롬비아를 준비하면서 작성했던 이력서, 문법확인서비스, 영문졸업증명서, 착착진행되었다.
다음관문은 시험이다.
뭔가 아이큐테스트같은걸 한다고 한다. 토나올것같았다. 시험트라우마가 있어서 시험이 쥐약인 나는 적성검사 테스트가 있는 회사는 이직을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시험이 싫다. 그래도 다음으로가는 버튼을 눌러봤다. 생각외로 예시 문제가 시험스럽지 않았다. 그대로 테스트를 보고, 글쓰기 시험도 봤다.
붙을것 같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미 나의 자신감은 바닥에 떨어져있었다. 천년의 사랑이 나를 거절했다. 대기에도 넣어주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관심이나 주겠는가. 그래도 이 대학이 표방하는 바가 있으니 면접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기대는 있었다. 면접에 오라고 했다.
시험을 보고 몇일 되지도 않았는데 면접을 보라고 한다. 바로 면접을 잡았다. 확인 후 메일이 온다고 한다. 메일이 오지 않는다. 일단 대학에 관해서 알아봐야하니 재학생과 미팅을 잡았다. 확인 후 메일이 온다고 한다. 메일이 오지 않는다. 전날 예약한게 너무 급작스러워서 그랬나 그러면 왜 가능하게 해놨지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면서 오지 않는 메일을 당일날 컴퓨터 앞에서 기다리며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겨우 이정도로 실망하기에는 나는 너무 많은 일들을 격었고 사람들에게는 사정이 있다.
혼자 영어를 곱씹으며 면접연습을 했다. 내가 이정도로 영어를 잘했나. 내가 들어도 감동적인 스토리다. 나는 정말 말을 잘하는 구나. 역시 어디서든 면접으로 뚫고왔던 저력이있다. 역시 언어가 아니라 컨텐츠이다. 영어따위 쓰지못하고 사회인 생활도 해왔지만 첫 영어면접도 할만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면접당일 미네르바대학을 추천해줬던 친구가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뭘 또 외출까지 하나 싶었지만, 내가 긴장할까봐 불러냈다는 친구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린순간부터 나는 나의 간이 화학약품이 녹아내리는 줄 알았다. 긴장하면 나비가 움직이는 것같다는 옛말은 틀리지 않았다. 진정할 수 없었고 가만히 있을수없어서 네고왕 링크를 계속 눌러보면서 집중할수없는 마음을 다른곳에 정신팔리게 노력했다.
마지막까지 밖에 있다 15분전에 돌아온 집.
구글 미트로 면접이 진행된다고 하는데 1분이 지나도 면접관이 오지 않는다. 아, 망했나보다, 뭔가 잘못했나보다, 당황해서 이것저것찾는데 목소리가 들려왔고 나의 면접은 시작되었다.
면접.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노련한 면접자들은 사전에 어떤 질문이 있는지 조사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내용의 대학원이 아닌, 그것과 연결시킬 대학원을 가는데 나를 제대로 말은 해야지 않겠나 싶었다. 무슨패시인지 그때 나의 솔직한 모습을 이야기하겠다며 질문을 조사하지 않고, 내이야기만 연습했다. 망했다. 모든 학생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완전 처절하게 망했음을 직감했고 긴장으로 사시나무처럼떨리는 하반신은 멈추지 않았다.
웃기는 경험이었다. 상반신은 전혀떨리고 있지않은데 하반신부분 카메라에 보이지 않는 손은 모터처럼 발작처럼 떨렸다. 위를 토할수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원래 긴장이 많아 식은땀을 잘 흘리지만 위와 내장을 토할것같은 긴장은 또 처음이었다.
나는 면접때 하면 안될, 당연히 안될 프리즈되서 멈추는 짓을 3번넘게 했다. 질문이 몇개 되지도 않는데 3번을 그랬다. 너무 어버버해서 언어장애가 있다고 생각해도, 프로페셔널하지 않다고 생각이되어도, 사실 할말은 없었다. 그래도 나는 포기 하지 않았고 내가 너무 심각하게 긴장을 하고 있고 너무 나는 표현하고 싶은데 첫 영어 면접에 맘처럼되지 않음에 양해를 구하고는 천천히 문법도 막그냥 말하면서 너무 집중해서 전에 뭔말했나 기억이 안나면 그냥 문장 끝내면서 내이야기를 했다. 친구들도 가족도 그런 내용까지는 말하지 말라고 했던 심각한 내용까지 그냥 다 질렀다. 이런 말하면 싫어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내용, 말해버렸다.
30분 면접이 끝나 갈때쯤 마지막 나의 질문을 하고 시간이 3분도 안남았을때, 나는 교수님께 감사의 마음 전했다. 나는 오늘 이시간에 너무 감사한다고. 이렇게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어준 교수님께 너무 감사하고 지금까지는 여러일들이 있어도 실패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는데 오늘 너무 긴장해서 그야말로 실패가 될지도 모르는 면접이었지만 당신과 함께 이야기한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한마디 한마디 진심이었다. 교수님은 아침일찍 오늘도 시작된 면접에 지친모습이었고 간단한 질문에 어버버하는 나를 보며 어이도 없었을 텐데 학생들이나 교수진의 이야기를 하며 공감을 해주었고, 내가 지금까지 어디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따뜻한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시간을 가진 것만으로도 다음 대학원을 준비할 힘을 얻은 것만 같았다.
붙을 것같지는 않았다. 아에 말을 안하고 멈춰있는애를 뽑겠는가? 그래도 뽑힐 수도 있지. 그어떤 면접에서도 이렇게 진심으로 정말 나를 일부분 보여줬다고 나의 미래에서 내가 얼마나 사회에 공헌하고 싶은지를 보여준 면접은 없었다. 나도 모를만큼 긴장해서 이상했던 모습이 어떤 사람에게는 진실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가끔은 영어도 곧잘했으니 진짜 긴장이라고 생각해줄수도 있다. 아니 그럴리가 없었다. 심각하게 고민만 하다 감사메일을 200번은 쓰고그만두고 결국은 쓰지도 못하고 착잡한 마음으로 주말이 지나갔다.
화요일 아침.
여느때처럼 메일확인으로 눈을 떴다. 메일이 와있다. 면접했던 교수님한테에서였다. 메일분명 지웠는데 혹시 보내버렸나? 아닌데 제목이 다른데 하며 읽어본 내용은 나의 미래의 활약을 빌어준다는 내용이 아니었다. 늘 대학들은 나에게 진심이어서 바라지도 않는 내 미래의 수호자가 되어주고는 했는데 기도대신 등록할거면 다음주까지 의사표명을 해주라는 내용이었다.
아니다. 매일에 이름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보낸걸 잘못 보낸건 아닐까? 아니야 일단 간다고 답장을 보내면 떨어졌어도 소송이라도 할수있다. 당장 영광이다, 나는 등록하겠다, 잘부탁한다, 답장을 보냈다.
아직 의심병은 있지만 그냥 사실이라고 믿기로 했다. 붙었다는 말은 할수없었다. 이름이 없다. 메일을 캡쳐해서 엄마아빠 단톡방과 계속 도와준 친구에서 보냈다. 아직 기쁘지도 않다. 뭔가 이렇게 기쁘지 않는데 왜 그렇게 긴장했나 싶다. 기분탓이었다. 잠에서 슬슬깬 나는 기쁨, 초절정 기쁨이라는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겪었다. 몇년만인지 모르겠다. 저절로 춤이 나왔다. 긴장과는 다른 떨림이 가슴속에서 요동쳤다. 이런 춤은 할아버지 세대가 추던 춤같은데 그런걸 따질때가 아니다 이 흥을 당장 신체에너지로 승화하지 않으면 폭발할것같다. 아침내내 춤을 추며 강아지의 경계어린 눈빛과 짖음을 감수해야했다.
메일이 왔다. 설마 진짜 잘못온거였다 이미 자랑다했는데 그런건가 싶어서 클릭했는데 공식서버에서 발송한 합격메일이 도메인 문제로 계속 반송된다고 한다. 저런 망한 한메일. 당장 들어가서 동의동의다동의를 누르고 혹시 잘못왔을지도 모르니 걱정하는 부모님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렸다.
하루종일 응원해줬던 사람들에게 기분좋은 소식을 알리며 밥약속을 잡으며 처음으로 강아지와 전철을 타는 모험도 하면서 다른 사람이 된것같은 기분이었다. 나는 어제와 같은데 나를 대하는 사람들과 나를 보는 나의 시선도 내가 어떤 곳에 소속되어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구나를 다시한번 느꼈다.
지금은 합격을 알고 24시간이 조금더 지나있다. 행복한 나는 행복한 시절처럼 4시반에 자동으로 눈이 떠진다. 다시 자고 싶어도 졸리지도 않다. 다 좋고 행복한것만은 아니다. 어제 트위터에서 훔쳐봤던 선배님들의 스케줄은 토나올것같았다. 잘할수있을지 앞으로 보내온다는 사전 숙제는 잘할 수있을지 불안하다. 그래도 지금의 나는 1초도 되지 않아, 아니, 난 잘 할 수 있는데. 어떻게되는 해낼건데, 하며 다짐한다. 어려워도 힘들어도 어떻게든 되겠지.
2022년9월, 미네르바대학원에서 공부할 퍼니, 아무것도 모르지만 교수님한테 들러붙어 사람이되어 졸업하겠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