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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과대평가 하고 있나 보다.

과대평가로 도전하고 후회하고 깨달은 알고보면 긍정적인 스토리

by Funny

지금 타자를 치고 있다. 5일만이다. 타자라고 불릴 만큼 손가락을 움직여 보겠다는 마음을 먹기까지 5일이 걸렸다. 5일전에 내가 나를 과대평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 때 그 아픔이 생생하여서 타자를 오늘까지 치지 못했다.


다시 쳐본 타자는 생각보다 나쁘지 않고(5일 전처럼) 생각보다 나쁘다(아직도 아프니까). 이 타이핑의 결말이 무엇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 자기계발서를 이것 저것 읽으면서 서로 상반된 내용들과 관련없는 내용이 많아서, 좀 헷갈리기도 한다. 아니, 미리 나는 타이핑을 해도 아프지 않다고 정해놓고, 선언하고 했어야 했나…?


나는 꽤나 효율적인 인생을 살아왔었다. 대학 때까지는 햇볕에 나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고 밖에 나가는 일은 나의 패션을 과시해야 하는 때였으며 땀을 흘린다는 것은 화장이 무너지는 아주, 귀찮은 비효율의 극치인 그런 것에 지나지 않았다.


대학교 4학년때부터 운동이라는 것을 조금씩 하기는 했지만 피티쌤과 피티가 있는 날이 아니면 운동을 하지 않는 스탠스를 유지했고, 늘 컴퓨터와 핸드폰과 함께 집, 회사에 있었기에 나에게 “만성통증”이 아닌 “급성부상”이란 인연이 없는 부잡한 아이들이나 겪는 그런 일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번에 깨달았다, 아,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 내가 운동을 좋아한다니… 운동이란 나에게 만성통증인 허리통증과 어깨결림을 예방하기 위한 회피가 아니었던가? 내가 운동을 좋아하다니! 그게 말이 되나? 싶었지만, 나는 8개월정도 주 3-4회 크로스핏을 가고 있었고, 크로스핏을 가는 것이 인생의 우선순위에서 2번째 정도는 되어보일 정도로 유지하고 있었으며, 그 시간에 매우 열심히 했다. 심지어 바벨에 맞아서(나한테 맞은거다) 입술과 턱이 찢어져서 생애 첫 성형외과에 방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니 또 쇠봉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나는 운동을 좋아했던 것이다.


좋아하지만 잘 입지 않는 청바지를 팔아 크로스핏 한달분의 돈을 마련해서 입금을 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나로서 운동을 시작했다. 웜업을 하고 있던 때 였다. 나보다 체력이 좋은 2명과 팀을 이뤄 운동을 하는 날이 었다. 팀운동은 좋아하지 않고, 이미 저번에 이분들을 따라가서 가벼운 부상이 있었고 턱이 낫게된것도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더욱 조심하고 싶었으나, 나의 의도와 나의 무의식이 늘 한팀인 것은 아니다. 나는 나의 운동량(나의 의무, 혹은 할당량)을 다 하지 못해 다른 사람이 해야되는 상황이 되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무리를 했고, 다른 팀원이 나를 기다리는 상황이 되면 필요이상의 횟수를 하면서 무리를 했다.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마지만 공을 잡지 못했고, 새끼 손가락에 스쳐 지나갔다.


경험하지 전에는 알지 못하는 그런 경험이 있다. 삐끗한다, 가 그런 경우가 아닐까. 아, 이게 삐는 거구나, 나는 삐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운동을 해야하니 그날의 할당량의 운동을 다하고, 설날 마지막의 인사와 새배를 위해 급히 움직였다.


파스를 바르고 얼음찜질을 했지만 나아지지는 않았다. 통증은 없었지만 구부리면 아팠고 손가락은 다 굽어지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도 손가락은 굽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통증은 움직이기 않으면 심하지 않았기에, 에이 뭐 놔두면 낫겠지만 혹시 모르니 병원을 가볼까? 한 병원에서 나는 손가락이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손가락이 부러진 부위가 좋지 않아 수술을 해야할 수 있으며, 수술여부와 상태를 제대로 알기 위해 CT를 찍어야한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수술…이라고? 꼬매고 이러는 수술(시술…?)이 아니라, 뼈를 수술한다고? 내가 매일 쓰는 손을 수술한다고? 무슨말을 하고 계시는건지 내가 그냥 공좀 스쳤다고 수술을 해야한다고?

머리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지나갔고, 나는 수술을 할 수 없었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그 일주일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절대로 할 수 없을 것같던 새끼 손가락이 없는 삶도 사실 뭐 그렇게 못살 삶은 아니었다. 타자도 거의 칠수 있었고 로잉머신도 탈 수 있었다(그래서는 안되었다) 집에서 맨몸운동도 가능했고 공부도 코딩도 명상도 목욕도 뭐 별문제 없었다. 나는 자심감으로 차올랐다. 나, 나는 경지에 올랐나 보다. 손가락 하나 부러진걸로는 나를 막을 수 없구나! 손가락이 없어도 이정도로 열심히하고 잘하는 나, 좀 멋있는듯! 하며 나의 자신감과 행복감은 하늘을 찔렀다. 그러면 안되었다.


새끼 손가락을 쓰지 말라는 건, 다른 손도 쓰지 말라는 거였고, 로잉머신의 손잡이를 잡아당겨서는 안되었으며, 맨몸운동으로 손목단련따위도 하면 안되는 거였다. 나의 손가락뼈는 훨씬더 벌어져, 그냥 일반인인 내가 사진을 봐도 툭튀어나와있었고, 사실 눈으로 손가락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아, 뭔가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의사선생님은 의외로 수술을 안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수술을 하는게 맞다고 하셨다. 그분은 내가 1주일전에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을때 얼마나 절망적으로 수술,,,이요? 라고 했는지 기억하는게 분명했다. 내가 수술을 안해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때 얼마나 안도하고 방을 나갔는지 그 해맑은 미소를 기억하지 않고 이렇게 환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대화를 했다면 의사선생님 사랑합니다.


차분히 다 설명을 들은 나는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왠지 모르지만 나는 이 의사선생님이 마음에 든다. 그리고 나는 지금 최강이다. 수술? 1일이면 나의 긍정파워로 이겨낼 수 있지. 손가락이 없어도 잘사는 정도의 지금의 나라면 그까짓 수술 다 받을 수 있다, 고 10시 10분경에 내가 말했고, 나는 12시에 수술을 받기로 했다. 일사천리 였다.


1일째까지는 뭐 거리낄 것이 없었다. 물론 마취가 풀리고 좀 아프기는 했지만 이정도는 예상했…나? 뭔가 이상하게 돌아간다고 생각한 것은 다음날 아침이었다. 나는 8번 정도 깼으며 이정도면 잔건지 낮잠을 이어잔건지 뒤척인건지 알지 못할 지경이었다. 아팠다. 그랬다.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뼈에 하는거라 좀 아플거에요.


나는 뼈를 다친적이 없었고, 몰랐고, 1일만에, 혹은 2일, 에이 인심썼다 회복까지 3일 봤다. 3일째에는 2번 만 깼으며, 나는 이제 괜찮아 지는가보다 호들갑을 떨었고, 영어 단어외우기를 시작했으며, 타이핑을 했다. 130개 정도의 단어를 타이핑하고 토할 것 같은 몸의 안좋음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아니, 이미 80개부터 느끼고는 있었지만 강한 나는 160개 해야지 몰아치다가 중간에 포기를 했다. 5일 전의 일이다.


굿뉴스는, 지금 이만큼의 글을 쓰고도 나의 손가락은 변함없이 아프지 않지는 않지만 많이 아프지는 않다. 토할것같은 심각한 몸의 신호도 없다. 5일동안 나는 회복을 했나보다.


사실 나는 지금 논문을 쓰고 있는 대학원 생이다. 졸업을 못하지는 않을까. 논문을 완성못하는건 아닐까. 공포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7주일이 넘게 아무것도 하지 못할지는 몰랐지만 3일 이라도 희생해야하는 수술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수술을 하기로 결정한 것은 미래의 나에게 좋은 것, 굽지 않은 손가락 그리고 관절염 가능성의 제거. 지금의 나의 편안함을 택하게 되면 미래의 나는 굽은 손가락과 관절염을 앓게 될 것이고 미래의 내가 그것에 대하여 얼마나 원망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지 지금의 나는 알지 못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편지였다. 미래의 나야, 나는 너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해. 니가 손가락이 굽지 않았으면 좋겠고, 젊은 나이부터 관절염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래, 라고 늘 메시지를 줄수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 결정을 3일전 부터 매우 후회했고 오늘 아침까지도 후회했다. 나는 나를 너무 과대평가해서 미래의 나니 뭐니 하면서 뼈수술을 해서 이렇게 아플줄 모르고 타이핑도 못하는데 대학원생이 이게 계속가는 건아닐까? 나는 망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과 공포가 몰려왔다. 읽고 또 읽던 책도 질렸다. 예전처럼 유튜브만 붙잡고 싶었고 그러기도 했다.


좋은건, 공짜가 아니다. 적어도 나는 이번 경험으로 그렇게 배웠다. 필수 적인 것은 거의 공짜이다. 내가 살아가지 위한 필수 요소 산소는 공짜다. 물도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내가 먹고 마실 물정도는 거의 공짜니까. 그런데 좋은 것은 공짜가 아니다. 나의 좋았던 손가락으로 돌아가는 것은 현재까지 8일을 요구했으며, 지금까지 운동으로 벌어 논 근육도 다 가져갔고, 뺀 지방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시간, 돈, 에너지, 인간관계, 근육, 감정, 혹은 그 무언가를 필요로 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냥 얻을 수는 없다. 지나친 자신감으로 나를 과대평가해서 얻게 될 나의 거의 예전과 비슷한 새끼 손가락의 가치를 아직은 모르겠지만, 이 경험으로 인하여 나는 좋은 것을 얻는 메카니즘을 체험할 수 있었다.


첫째, 좋은 것은 공짜가 아니다. 아까 깨달은 바로 그 내용이다. 내가 다른 좋은 것을 얻고 싶을 때 나는 생각할 것이다.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좋은 것은 어떤 형태로든 지불을 해야하며 내가 기꺼이 그것을 낼 수 있어야 얻을 수 있으니 아낌없이 지불해야한다는 것을.


둘째, 지불은 늘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다. 나는 1-2일이면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정도라고 용감하게(혹은 무식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도전 할 수 있는 면도 있다. 그러나 전혀 나의 예상과 달랐고 늘 새로운 문제점과 어려움이 생겨났다. 목욕을 할 수 없었고, 타이핑을 할 수 없었고, 예전의 습관으로 돌아갔으며, 우울해지기도 했다.


셋째, 목적있는 행동과 그냥 한 행동은 같지 않다. 나는 나의 미래의 나에게 주는 선물과 투자로 수술을 결심했다. (물론 손가락이 굽어서 심각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을 지금 없애고 싶은 부분이 0% 였던 것은 아니지만 미래에 대한게 더 많은 %였다.) 지금까지 단 한방울의 물도 묻히지 않았으며 매일하던 샤워를 하지 못하고 매일하던 운동을 못하고 매일하던 코딩을 못하고 해야할 일들이 쌓여가고 지방들이 돌아와도 나는 최선을 다해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내가 만약 아직 미성년자여서 혹은 그냥 다른 사람들은 다 한다고 하니까 휩쓸려서 했다면 이렇게 노력하고 그 노력에 대해서 긍정적일 수 있었을까?


다음에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이런 아픈 경험도 필요했나보다, 내가 건방져 지니 또 이런 경험도 필요했다 보다, 며 첫 골절, 첫 뼈수술도 나에게는 긍정적인 승리의 기억으로 기억하려고 한다.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 논문 쓰기가 너무 싫어졌지만 1시간 정도는 작업을 할 수 있는 상태라는 것을 이 글쓰기로 알았으니, 이제 내자리로 천천히 돌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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