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씨를 외친 그날에 대한 반성
나는 여러 번 재탄생 중이다.
어떤 재탄생은 다른 사람의 눈에도 그렇게 비춰지기도 했으며 어떤 재탄생은 그냥 나만 느끼는 거기도 했지만, 내 안의 기준에서 나는 여러가지 챕터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으며, 늘 그렇듯 요즘 사는 버전의 내가 가장 맘에 든다.
최신 버전의 나는 의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변태(?)와는 결을 달리한다. 지금까지는 죽을 고비를 넘긴다, 죽을 만큼 힘든 고비를 넘긴다, 살자를 결심하고 신변정리를 한다 등 뭔가 극단적이고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었다에 가까웠다면, 이번 변태는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느낀 나의 자발적인 뇌개조에 의한 결과였다.
Minerva University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나는, 미국 대학원이지만 온라인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생활비가 비싼 나라보다는 나의 고국, 부모님의 집으로 기어들어와 고정비 적은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미국 대학원이다 보니 수업이 21시, 22시 시작이라는, 수업이 끝나자 마자 잘 준비를 해야 한다는 단점도 있었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사람이란 게 또 금방 적응 하기에, 4시 5시에 일어나던 나는 금새 6시, 7시, 8시에 일어나게 되었고, 이제는 7시에 일어나면, 오옷 일찍 일어나는 나 좀 멋진 듯 하며 칭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냥 물 흐르듯 일어난 일이었고, 별다른 문제점을 느끼지 못했으며, 점점 더 나에게 맞는 그런 시스템이 정착이 되었다.
성격이 좀 지랄맞아지는 것 또한, 점점 유튜브를 보는 시간이 늘어나고, 아무것도 못하고, 회피형으로 바뀌어 가고 하는 그런 과정들도 물 흐르듯 진행되었고, 그럴 만한 상황과 납득되는 그때 그때의 이유가 있었기에 내가 변한 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죽을 것 같은 온도에 눈치 챈 뜨거운 냄비 속 개구리 처럼 깜짝 놀라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지금 무얼 하고 있는거지?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닌데? 나 왜 이런 사고방식에 이런 인생을 살고 있는거지? 뭐지? 이거 진짜 뭐지? 이런 사고 방식으로는 내가 원하던 삶은 고사하고 졸업도 못하겠는데?
위기감이 몰려왔다.
그 때 상담, 코칭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 뭔가 외부에서의 관점과 도움이 필요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상담은 그다지 도움이 안될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지금 당장 변하는 것인데 한국에서의 상담은 상담같은 상담이 아닌 조언을 하는 경우도 있고, 일단 그들이 외국에서 너무 오래 살았고 또 외국에 나갈 준비 중인 나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으며, 사실 이해할 필요도 없는데 본인의 호기심으로 질문을 하는 경우도 있어서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것 보다는 돈이 아까운 결과가 될 것이 보였다. 그렇다고 일본의 지인들에게 상담을 부탁하는 것도 방법이 아니었다. 이미 일본에서 돌아온지 시간이 지나 일본 바이브로 상담하기에는 상황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면, 유튜브에서 선생님을 찾아봐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것 저것 보면서 적당한 도움을 받다가 뇌개조, 라는 단어가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지금까지 세미나와 자격증과 경험에 수천만원과 십수년을 쓴 나의 쓸만한 기술, 진짜 알아보기가 빛을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뇌개조 1일, 2일,,, 일주일 까지도 별다른 변화를 알 수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 슈퍼맨이 된것 만 같았다.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지금까지 수십번 수백번 한 생각이고 워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뭔가 모든 것이 연결되는 느낌이었고, 이해가 되니 변화는 쉬웠다. 불안하지 않으니, 인생이 너무 쉬웠다. 긍정적이니, 넘치는 에너지에 이게 원래 인생인가 싶었다. 인생이 다시 나의 뺨을 후려갈기기 전까지는.
손가락이 부러지고 통증이 계속 존재하고 있으니, 금방 원래의 나의 모습이 빼꼼 했다. 31일간의 뇌개조로 이제 좀 습관이 되었나 싶었던 나의 새로운 습관은 통증에 2일 만에 나가리 되었고 다시 나는 스스로의 싸가지에 탐복하며, 아 역시 가장 좋은 나는 평화롭고 문제가 없을 때 나오나 보다며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렇다고 완전 옛날로 돌아간 것은 아니었다.
돌아간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고, 이런 경우에 이런 반응으로 돌아간다고 알아차리고 있었다. 아, 이제는 좀 다시 새로운 뉴버전 나로 돌아가는 활력을 가질 수 있겠다 이정도 통증이면 가능하다고 생각한 바로 그날이었다.
도서관에 가는 길이었다. 통증에 타이핑을 할 수 없으니 유튜브로 강의보는것과 독서하는 것말고는 할 것이 없던 나에게 새로운 책이 도착했으니 찾아가라는 카톡이왔고 나는 신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1층에 도착했고 언제나 처럼 엘리베이터 문바로 앞에 서있었고 사람이 나밖에 없었기에 유튜브에 뭐 없나를 훑어보며 내릴채비를 하고 있었다. 문앞에 갑자기 할머니가 지팡이를 집고 서있었고 할머니의 오른쪽 팔둑을 부축한 직원분으로 추측되는 아주머니가 앞치마 차림에 같이 있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할머니는 전진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아---이 씨”를 내뱉고 말았다.
아이씨라니,,, 아이씨도 아니고 아---이씨 라니!!!!
너무나도 분명한 나의 혐오에 가득한 감탄사에 분명 들었을 거다. 혹시 할머니의 귀가 어두어서 못들으셨다고 해도 나의 불쾌감과 신경질은 전달되었겠지. 직원분은 분명들었겠지.
내가 아이씨라는 감탄사를 뱉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오른쪽 손가락이 부러져 수술을 한 상태이며 부딛히면 매우 아프다. 할머니는 가운데로 밀고 들어왔으며 나는 오른쪽으로 비켜 내리며 나의 오른쪽 손가락을 부딛칠뻔했고, 그런 행위는 나에게 위협과 공격의 일종으로 여겨졌으며, 나는 지금 통증으로 스스로를 약자 아이덴티티를 장착하고 있기에 화로서 나에 대한 위협에 반응하고자, 그 짧은 시간에 몸이 정한 모양이다.
그러나 겨우 그것 뿐만은 아니다. 내가 아이씨는 뱉자마자 나의 머리에서는 내가 아이씨를 뱉을 수 밖에 없는 이 할머니의 너무함이 밀려들어왔다. 엘리베이터에 어떤 사람이 탔을 줄 알지 못하는데, 이런 식으로 밀고 들어오다 이 할머니와 부딪혀 넘어지기라고 한다면 밀고 막무가내로 들어온 본인의 행동의 인과관계와 원인제공은 생각하지 않고 나에게 책임을 지우게 할 건데, (그리고 나의 포지션에 들어올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빙의 하여 그 사람들 몫까지 분노하며) 이렇게 걸어 다니는 폭탄으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게 맞나? 며 아이씨를 정당화 했다.
아니지. 이것은 빈배다. 나는 이 사람을 바꿀 수 없다. 내가 위협을 받았고 이 사람들이 정말 잘못했다고 해도 내가 이정도로 혐오와 화남의 표현을 할 자유는 없다. 불쌍한 직원은 또 얼마나 집에 빨리 데려다 드리고 퇴근하고 싶었으면 할머니를 그렇게 밀어 넣었겠는가, 나는 1시간이라도 그들의 일을 해낼 자신이라고 있는가, 하며 그 사람들의 입장을 이해하며 나를 자책했다. 그 직원은 내가 손가락이 다쳐 크게 위협으로 생각되어 반응한 것 따윈 모르고 그저 노인 혐오로 생각하고 요즘 애들은, 하며 나를 욕하겠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아니다. 내가 왜 화낼 자격이 없는가. 애초에 엘리베이터에서 우선권은 내리는 사람에게 있다. 아니다. 우선권이 무슨 소용인가 결국 그런 소리를 하던 말던 할머니가 다치면 나는 보상해줄 돈이 없다 나만 춥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가 왜 내가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데 내가 피해를 받는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를 치지 않았고, 내 손가락은 부딪히지 않아 아프지 않았지만 아이씨라고 내뱉은 나의 마음은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화를 내지 않기로 결심하였지만, 평상시에는 화가 나지 않지만, 이제는 다시 화가 안 날 수준의 몸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아직도 몸을 잘 모른다. 나는 아직 조금 힘들면 화가 난다. 그것도 많이.
늘 자신의 수준은 실패를 하면서 깨닫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이정도의 수준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정도의 수준인 나는 이정도로 끝날 생각이 없다. 나는 화를 내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장애물을 만났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운전과 같다. 내가 운전을 규칙에 맞게 한다고 그것이 나의 권리이고 정당성을 다 지켜주는 것은 아니다. 이미 차선의 소용돌이 안에 있다면 내가 차선을 지키고 지정속도를 지켰다고 해서 나의 생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러다가 차량흐름에 방해가 되고 사고가 나면 내가 다치고 내차가 다치는 것이다.
차가 아닌 나도 똑같다. 이미 존재하는 위험물이 있다면 그냥 내가 방어운전을 방어 보행을 해야 한다.
이제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 한쪽에 치우쳐서 서있어야 겠다. 나갈 때에는 핸드폰을 보지 않겠다. 내가 잃어야 할 수 초의 시간들이 모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을 때를 생각하면 번거로운 수도 있지만 화를 내지 않고 괜한 불안과 불만을 만들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런 여유를 갖고 살아가는 것은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행동이다.
한번의 아이씨 치고는 많은 발전이 있었던 많은 나에 대한 정보를 준 이벤트 였다.
(그런데 오늘은 가운데에 서있었나? 기억이 안난다. 아직은 습관이 안 되었나보다. 내일부터 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