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주라, 엄마만큼은… 진짜 아빠는 안된다
나는 한국에서 결혼을 포기한 반 외국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대학을 외국으로 갔고, 그 이유는 부모님에게 독립하기 위해서 였기에, 나의 감성은 한국과는 많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하면,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올라오는 썰 같은 것을 보면 그렇다. 자식에게 돈을 물려주지 않겠다, 라고 선언한 부모님이 자산 10억 20억이 있는데 결혼 할 때 돈을 보태 주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하다고 한다. 댓글을 보면 1개 정도의 댓글을 빼면 전부 지원을 하지 않는 부모님이 한국정서에 맞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아,,, 하고 한숨을 깊게 쉰다. 왜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부모가 자식들을 놓아주지 않고 간섭하고 숨막히게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부모가 문제라고 탓을 해왔는데 사실은 자식이 놓지 않는 걸까…?
물질적인 지원과는 또 다른 부분일 수 있겠지만 그런 것 같다. 자식이 부모를 놓아주기도 쉽지 않은 것 같다. 사회가 변하고, 과학계가 알고 있는 그 당시 버전의 진실이 다르고, 상식이 다르고, 이제는 기후도 다른 데, 나를 키웠던 부모가 지금 내가 아는 것 만큼 나에게 맞게 그리고 지금의 상식에 맞게 나를 키웠을 리가 없다. 그 어떤 부모도 자식이 원했던 것 만큼 자식에게 다 줄 수 있었을 리는 없다. 서운함과 상처가 없을 리가 없다.
그때는 몰랐다 해도 성장을 하고 나면 그제서야 이해하는 이야기도 있고 친척들과 주변인들에게 들은 정황상 에피소드들을 짜맞추고 나면 이해가 나중에 되기도 해서 부모가 그럴 수 밖에 없었겠다, 라고 더더욱 생각이 되기도 한다. 알고는 있지만, 이해도 되지만 상처는 존재한다. 자식과 부모가 꼭 맞으리라는 법도 없으며, 성격적으로 성향적으로 너무 다를 경우 이해하기 힘든 것도 당연한 일이다. 비슷하면 비슷한 데로 오히려 더 괴로울 수도 있을 거다. 왠만하면 그럴거다. 나도 그렇다.
아이러니 하게도 나의 독립심과 반항심과는 무관하게 나는 불속성이 아닌, 그냥 효녀다. 엄마 아빠의 사랑과 애정을 느끼면서 자랐고, 내 멋대로 엄마를 내 딸처럼 불쌍하게 여기고 있으며, 내 마음대로 내가 챙겨야할 식솔처럼 부모님을 생각하는 부분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엄마고 아빠는 아빠라, 문득문득 엄마에게서, 아빠에게서 ‘인정’ 이라는 것을, 때로는 ‘이해’ 라는 것을 받고 싶어 질 때가 있다.
사실 상관이 없기는 하다. 이미 그 인정이라는 것이, 이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고, 잘 알 수 밖에 없었던 감정이 요동치던 에피소드가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인정이 필요 없는 나에게도 사이클이라는 것이 있어서 호르몬이 요동칠 때면, 가끔은 인생의 바닥이 아닐까 의심이 들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에게 ‘위로’를 받고 싶어 지는 그런 나약한 기분이 든다.
그 때다. 바로 그 때가 내가 강을 건너면 안되는 시기다. 그 또한 잘 알고 있다. 많이 건넜고, 많이 후회했고, 많이 싸웠고, 많이 원망했고 또 후회했다. 그 때 참아야 한다. 그렇다. 나는 오늘 심호흡을 잊었나 보다. 참지 못했다.
강을 건너는 나는 속이야기를 한다. 오늘 나의 속이야기는 내가 간직하고 있는 꿈이야기다. 나는 작가가 되고 싶어. 나는 베스트 셀러 작가가 되는게 꿈이야.(원래는 미국에서 영어로 글써서 베스트셀러작가인데 그런 디테일까지 말하는건 안들어줄거니까 뺄게.) 멋있지…? (나는 멋있다고 생각하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평상시에는 말하지 않지만 오늘 내가 좀 나한테도 안 멋있어 보이니까 엄마한테 말하게 된다. ) 이 생각은 괄호안에 들어있어 말로 나오지 않고 내가 생각으로 하고 있다. 엄마는 초능력자가 아니라 알 수 없고, 사실 알아도 변화는 없다. 그런데 나의 이 생각까지 나의 기억은 기억하기에 서운함은 증폭 중이다.
괜시리 기대를 하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상처받은 동물이 상처를 내보였을 때는 그래도 뭔가 보드라운 것이 올 것을 기대한다.
어머~~~~ 너무 괜찮은 꿈이다! 그래 꼭 그렇게 될 수 있을거야. 물결무늬까지는 힘들어도 느낌표는 좀 없더라도 그래도 긍정적인 힘을 주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하며, 그러면 지금 나의 이런 터널같은 기분이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시그널을 보내 본다.
어림없다. 한국의 부모님은 그런 반응은 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나의 시그널은 자다가 봉창두드리는 소리이며, 위기이다. 위기 일촉즉발을 감지한 그들은 늘 예측도 하지 못했던 부정적인 무언가를 돌려준다.
그러려면 좋아요가 엄청 많아야지, 많은 사람들이 호응을 해줘야지. (그런데 너는 그렇지 않지 않니? 그러니 그런 허황되고 말도 되지 않고 인생 낭비하는 소리하지말고 제대로된 직업을 가지고 결혼해서 애를 낳고---------)
물론 괄호 안은 나의 상상이다. 왜냐하면 내가 그 말이 나오기 전에 화를 냈기 때문이다. 사실 이해는 가지 않는다. 내가 나의 꿈을 꾸겠다는데, 왜 평가를 하는가? 평가를 하던말던 나는 나의 꿈을 꿀것이고 내인생을 살아갈 건데, 왜 굳이 평가를 하고 나의 노력을 깍아내려 서로의 관계를 기스내는가? 이해는 가지 않는다.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이해는 원래 가지 않는 것이다. 부모의 간섭을 피해 외국으로 도피하듯 사라져 경제적 원조도 받지 않고 제멋대로 살던 자식도 아직도 부모의 인정이 고파 꿈을 이야기하고, 또 인정받지 못해서 분노하는, 그런 이상한 것이 부모 자식같의 관계이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뭐 그런거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제는 기대를 완전히 접으려 한다. 오늘은 “No기대Day”로 기념일 공표를 해야겠다. 나는, 이제, 부모님을 내 인간관계에서 빼겠다. 부모란 나의 인간관계가 될 수 없으며, 그 이외의 무언가로 지정을 하겠다. 부모는 나를 골라서 출생시킨 것이 아니고, 부모라고 해서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이 끝나면 그로서 충분한 것이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걱정과 연민을 평생 놓지 않을 것이 분명하며, 부모는 평등한 관계에서 대화를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내가 원하는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해는 다른 인간관계에서 충족시켜야 한다. 가끔 내가 돌아서 부모라는 가까이 있는 자원을 또 이용하려 하는 그런 유혹에 빠질 때에는 No기대Day에서 지정한 정신을 다시 기리며, 참을 인자를 3번 쓸 시간동안 깊은 호흡을 하겠다.
이 강은 건너면 안된다… 가지 말자… 차라리 청소를 하자… 산책을 가자… 이 길은 가시밭길이다… 싸움이 보장되어 있다… 더 슬퍼진다… 하지마라 진짜 진짜 흐지마라
그리고 나를 다시 보자. 나야, 너를 연민해. 지금 마음이 힘들구나. 위로 받고 싶은데 위로 받을 곳이 딱히 보이지 않아 부모님에게라도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이 들었구나. 저런 가엾어라. 내가 위로 해줄게. 내가 나를 알아줄게. 지금 힘들마음도, 엄마와 싸워서 서럽고 서운한 마음도 나는 나니까 누구보다 너무 잘 아니까 그 마음 알아줄게. 아직은 너무 작고 소중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도 어색한 나의 꿈도 나는 들어줄게, 기억해줄게, 응원해줄게. 엄마는 내편이 아니지만, 아빠도 내편은 아니지만, 나는 내편이니까, 내가 위로하고 옆에 있어주고 도와줄게. 고생했어. 잘했어. 애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