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판왕 미국에 오면 알게될까
사람은 본인의 생각과 다른 경우가 많다. 최소한 나는 그랬던 것 같다. 어릴 적 위인전을 읽거나 다른 매체에서 접하는 범죄자 같은 것을 보면서 어른들의 나약함과 나의 위대함을 곱씹으며, 나는 안 그럴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 것은, 용기를 내는 것은 쉽지 않고, 용기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것은 더욱 쉽지 않으며, 결과에 관계없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으며 그 메카니즘은 운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경험한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겁쟁이였고, 꼰대였으며, 그닥 특별하지도 않는 그냥저냥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을 떠나 있던 시간들이 많았던 탓에, 뭔가 좀더 복잡한 사람이 되어가는 듯하다. 한국이 싫어서, 부모님과 떨어지고 싶어서, 그렇게 시작된 외국생활에 막연히 나 좀 글로벌 한 듯 한 착각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한국을 비판도 했고, 좋아도 했고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그런 복잡한 마음이 생겼고, 15년 정도 뒤에 한국에 돌아와서는 더욱 복잡해진 것 같다.
2023년 학교에서 런던 프로그램이 있어서 런던에 갔을 때, 너무 놀랐다. 나의 글로벌 함은 동아시아에 한정된 글로벌 함이었고, 물리적으로 한정적인 글로벌 함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어딜 봐도 어디 출신인지 짐작도 안가는 다양한 얼굴들이 있는 런던에서, 내가 얼마나 작은 우물에 있는지 자꾸만 되새기게 되었다.
그다지 글로벌하지 않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나는 외국인에 가까워서 살아가는 것이 쉽지 만은 않다. 외국인 같은 한국인에게 한국은 참 재미난 나라인데, 한국에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더욱 욕심이 늘어나는 것 같다. 일본에서 너무 감사했던 것들도 한국에 가서는 감사함이 사라지고 당연해지고 더 갖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과 불만과 불안이 생겨난다.
그런 복잡한 마음 속에서 이번에 미국행을 결정했다.
시카고에 온 지 2일차다.
미국은 개인적으로 특별한 나라다. 모두에게 그럴거다. 달러 발행국이고, 세계 최강국이고, 요즘에는 많은 사람들이 이나라 주식을 갖고 있어서 더욱 그렇겠지만, 좋지 않은 의미로 나에게 특별함이 있다. 일본어로 일본에서 일까지 하고 온 사람이 언어가 무서워서 미국을 무서워 했다고 하면 아이러니 하겠지만, 나는 영어가 너무 무서웠고, 세계 1등이라는 나라가 너무 무서웠다.
한국에서의 경쟁이 이리도 힘들고 한국에서 살아남기도 이렇게 쉽지 않은데 미국에 세계의 인재가 몰려오면 얼마나 나의 부족함이 드러날까. 그렇지 않아도 한국안에서 경쟁에서 이기는 것 같지도 않은데 영어라는 외국어를 사용하면 내가 얼마나 밑바닥까지 가게 될까, 막역한 두려움이 아주 어린 시절 부터 단단히 존재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에 대한 환상과 망상이 존재했다. 미국에서는 게이들도 소리를 내고 이제는 욕먹는 PC지만 그런 개념을 만들고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정말 어른들이 베푸는 관용이 있는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의 갈등과 힘듬이 더해질수록, 미국에서는 안 그럴텐데 미개한 한국인들이 나를 괴롭힌다, 그런데 내가 부족해서 장학금을 못 받으니 미국에 못간다는 억하감정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물음표가 난무하는 재미난 생각을 어릴 적엔 갖고 있었다.
그 이후에는 총기사건, 로비문화, 여러 세계기구 탈퇴 또는 미가입, 트럼프 당선, 마약문제, 노숙자문제, 의료비과다, 인종차별 등등 열거하기도 입아픈 도대체 이런 엉망인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나 싶을 정도로 이상한 점들을 알게 되면서, 미국에 대한 양가적인 감정은 더욱 복잡해졌고, 미국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점점 괴물같은 이상한 이미지로 굳어갔다.
미국에 대한 두려움에는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학생시절에 미국 비자가 거절된 사람을 본 적 있는가? 이제부터는 있다고 해야 할거다. 내가 대학생때 미국 비자를 거절당했다. 그 어려운 일을 내가 해냈다. 설마 거절 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는데 비자가 거절되면서, 미국에 대한 어려움은 계속 포인트를 쌓았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미국비자에 거절당한 포인트는 몇가지가 있다. 1. 필요 없는데 굳이 미국비자를 신청한점 2. 미국에서 머물 곳, 할 것 등 아무것도 아는게 없음 3. 학생인데 본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한다고 한점 4. 일본 사는 애가 굳이 한국에서 비자를 신청함 5. 비자를 잘 안주는 아주 깐깐한 담당자)
과정은 복잡했고 돈도 노력도 들었는데 어쨌든 나는 미국 비자를 다시 받았다. 그 때는 착한 담당자라 그 담당자라면 그럴 수 있다며 나를 위로 하며 비자를 발급해주었지만 근본적인 두려움은 해결되지 않아 그 후로도 한참을 미국에 가지 못했다.
그러다 마침내 시카고에 왔다.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새여권도 받았고, 비자로 입국한 친구에게 정보도 알아왔고, 미국에서 머물 곳도 할 일도 있다. 유머넘치는 입국관리인을 만나 즐겁게 미국에 입국했다.
미국인들은, 혹은 시카고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까지 1일동안 내가 본 사람들은 내가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 달랐다. 그들은 생각보다 키가 작았으며, 생각보다 친절했으며, 생각보다 깨끗했다. 괴물들도 거인도 아니었으며 그냥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벽3시부터 깨서 시차적응 중인 나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5살 때부터 시작된 나의 미국에 대한 양가감정과 두려움이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로 왔는데, 뭔가 느낀 적이 있는 감정, 예전의 나의 모습과 겹쳐지는 것이 있다.
아직 일본어처럼 익숙하지 않은 영어. 익숙하지 않고 문화를 모를 때 나오는 소극적이고 어색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구잡히기 좋은 지고 들어가는 행동을 하는 나를 보면서 일본에 처음가서 을이 되어 비참한 마음이 들곤 했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친구의 스튜디오에서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욕조와 비데가 없는 변기를 보면서 육사 출신 동생이 서울의 육사보다 춥다고 했던 일본의 아파트에서의 비참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미국에 온 건데, 미국과 고생은 세트인 걸까? 나는 다시 그 시절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힘듬 들을 겪어야만 하는 걸까?
가족들과 일상적으로 먹고 마시던 그 작은 것들의 소중함이 없어지고 나니 그게 소중했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했던 깨끗한 수돗물과 편리한 대중교통과 밤에 다닐 수 있는 치안이 사라지고 나니 이게 자유고 행복이라는 것도 느낀다. 아니 사실 그때도 알고는 있었다.
한국에서는 행복한데 행복하지 않다고 가스라이팅 당해서 나도 모르게 행복하지 않아지고, 외국에서는 행복하지 않은데 작은 것들의 소중함에 눈물나게 공감하다 거지같은 상황에 적응하게 된다.
나는 한국을 좋아하는 걸까? 다시 가스라이팅 당하는 상황에서 살아가고 싶은 걸까? 2일차 이후의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어 지는 매력이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일은 알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