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과연 먹을 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사람의 재미있는 점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미래가 되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닫는 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미래의 몸이 아직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치원생일때 사춘기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라는데 그게 뭘까? 괴물같이 되는걸까? 어떻게 내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증이 사라지는 데에는 그다지 힘들지 않았다. 시간은 흘렀고, 사춘기는 왔고, 가끔은 아, 이래서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거구나, 라고 납득할 만한 순간도 있었다.
한국 요리는 별로 먹지 않던 시절에는 도대체 왜 김치가 없으면 죽겠다는 걸까? 파스타가 프렌치가 이렇게 맛있는데. 먹을게 이렇게 많은데 굳이? 왜?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가난한 학생시절에 (내가 만든 가난 이기는 했다 화장품을 사고 옷을 사는게 더 중요했다) 토스트만 일주일 먹으며 버티고 해서인지 뭔가 잘 먹는 다는 것에 대한 집착도 갖기 힘들었다.
30대가 되고 갑자기 김치가 맛있어 졌고, 생전 가지 않던 한식 레스토랑에도 가게 되었다. 맛없던 한식 레토르트 식품도 감사해졌고, 한국요리를 먹으면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뽀땃한 기분이 있었다. 내가 그렇게 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적이 없지만 질풍노도의 시기 처럼, 몸의 체질이 변한 것인지 그냥 그렇게 되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돌아간 한국에서 위염에 걸렸다. 김치를 한조각만 먹어도 배탈이 났고, 위가 아픈것이 낫지 않았다. 일본에서 그렇게 건강하고 잘 지냈는데, 한식도 잘 먹었는데 이건 뭘까? 하며 어이가 없었다. 한달 반 정도 아픈 위를 부여잡고 살았더니 몸이 한식에 적응해가기 시작했다.
어이가 없었던 이유에는, 우리집의 특수성이 있다. 엥겔 지수라고 하는 지표가 우리집은 꽤나 높을 것이다. 캐쉬플로가 높지 않아서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먹는 것에 진심이고 먹는 것에는 돈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외식도 자주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외식한 것처럼 엥겔 지수가 나올 만큼 좋은 재료에 늘 잔치처럼 풍족하게 여러반찬과 메인메뉴에 국까지 잘 차려먹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재료의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위병이 낫으니 어이가 없을 만도 하다.
그런 요리에 1년반이 넘게 노출되면 매일매일이 감동이었던 초반과는 달리, 익숙해져간다. 감사하지만 매일 감사일기에 감사한 대상으로 맛있는 요리를 쓰고는 있지만 당연히 존재할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미국에 오니 한국에서 먹던 모든 것을 먹지 못하게 되었고, 파스타2개와 디저트 하나를 먹는데 10만원이 넘게 나오는, 그다지 물가가 비싸지 않은 도시에서 외식을 해보니, 앞으로의 먹을 것에 대한 위기의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곳은 홀푸드마트가 바로 가까워서 식재료가 곤란한 것은 아니다. 미국에도 반찬이랄까 미리 만들어 둔 요리는 있었다. 그러나 시금치 나물은 없고 멸치반찬도 없다. 거기다 미국의 만들어 놓은 요리는 너무 비싸다. 이 곳에서 한국에서처럼 풍족한 식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한국의 재료를 공수해야하고 요리를 해야하고 그 모든 것을 살 수 있는 경재력도 필요하다. 거디다 치안이 좋지 않기 때문에 차로 오거나, 리프트로 이동해야 하기에 한국은 당일 무료배송과 근처에 걸어갈 수 있어서 무료지만 미국에서는(최소한 내가 있는 곳에서는) 배송 코스트 또한 더해야한다. 오기 전에는 몰랐다. 마트 앞에 부랑자와 강도로 보이는 사람들이 죽치고 있으며, 밖에서 리프트를 기다리는 것 조차 위험하다는 사실을.
이런 곳에서 나는 살아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일본에서는 1년간 라면만 먹으면서 살기도 했으나, 그런 생활도 했고 한국의 풍족한 식생활을 다시 경험했기에, 그리고 장래에 아이를 낳을 지도 모른다면, 그런 식생활을 하면서 임신과 출산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안다. (1년간 라면만 먹으면 몸이 푸석푸석해지고 미래의 나의 자산을 지금 축내고 있다는 것을 뭔가 직감적으로 알수있을 만큼 몸이 이상해진다)
이건 선호의 문제다. 한동안 고민했던 선호란 무엇인가에 대해 굉장히 고민했는데, 일부의 답은 나의 몸과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조화가 있는 것 같다. 대학생 때까지의 나는 메뉴에 대한 선호가 존재했지만 그렇게 까지 높지 않았다. 중요했지만 그것이 나의 인생을 바꿀 정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몸이 달라졌고, 원하는 미래도 달라졌다. 내 몸을 축내서라도 경제적인 부분을 중시하거나, 다른 부분에 중점을 두는 것 보다, 맛있고 건강에 좋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먹으며 장래에는 그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만든 가족이 되었으면 하는 것은 내가 선호하는 중요한 것이 되었다.
대학생때 까지, 아니 회사에 다닐 때도 상당한 시간을 주부와 밥을 하는 것에 대한 경멸을 가지고 있었다. 인재가 자산인 한국에서 거머리 처럼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을 그당시에는 하고는 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다니, 상상할 수도 없는 모욕적인 치욕이었다. (모욕을 내가 주고 있는데 그 때는 그런 생각을 했다) 30대에 체질의 변화를 느끼고, 성인이 되어 엄마의 감사한 밥상을 함께하고, 몸이 지나친 절약으로 축나본 경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변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금은, 나는 사랑하는 사람과 잘 먹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고, 이 것은 타협하는 것이 나 개인에게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대학생 때의 나는 머리를 싸매고 들어누울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식생활을 위해서 밥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도 이제는 전혀 고민하지 않고 고려할 수 있을 지경이다.
오늘 아침에는 미국브랜드 우유에 시리얼을 먹었다. 유당을 먹지 못하는 나에게 유당분해 우유는 감사한 자원이었으나 맛이 없었으며, 당뇨인자를 가지고 있어 조심하는 상황에서 당함량이 낮은 시리얼이 있다는 것은 감사할 만한 일이었지만 맛이 없다.
큰일이다. 일단 오늘까지 미국의 맛있음 지수 흐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