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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면만 가진 사건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법은 있다

by Funny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글을 쓰는 것을 해오지 못했다. 뭔가 미래에 할 일이고 지금의 나라는 사람이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나 따위가 글을 쓰다니 가당치도 않는 일이라는, 일종의 가면 신드롬이었던 것 같다. 글을 쓰고 나면 누군가에게 오픈을 해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그 자체 혹은 모든 것이 내키지 않았다.


지금은 왜 내키는 걸까? 뭐가 괜찮다며 발행버튼 까지 누르는 걸까?


딱히 지금도 내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너무 즐거워서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며,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서 흥분되는 재밌는 일이 있었던 것도,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싶은 깨달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한가지 다른 것이 있다면, 새벽 0시 23분부터 나는 잠을 자지 못하고 있으며, 현재 시간 6시 17분까지 코딩도 해보고, 침대에 누워있어보기도, 명상을 해보기도, 따뜻한 물을 마셔보기도 했으나 아무 것도 효과는 없었고 5시 즈음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는 것이다.


손가락 수술을 한 날 3일 뒤에 일어났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금새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수술에서 1주일간 회복하지 못했고 1주일동안 정신적으로 우울해져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대가를 치렀던 것 처럼 또 나를 과신했다. 런던에서 처럼 1일만 잘 보내면 순조롭게 시차적응을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번 시차적응은 망한 것 같다.


시차적응은 망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고 있던 일들을 하고 있고, 그 일을 하는 것이 별로 힘이 들지 않는다. 잠을 못자는 것 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15분이라도 고통스러운데 2시간 3시간, 5시간이되면 모든 것이 다 괜찮아 보인다. 이게 미라클 모닝일까? 0시면 미라클 나이트 일 것 같기는 하지만 시차적응이 되지 않는 상황이 코딩을 하는 것도 글을 쓰는 것도 더 괜찮아 보이게 하고 심지어 실천까지 하게 한다면, 나쁘지 않을 지도.


재미난 점은 이렇게 나쁜 것이 나쁘지 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면 나쁜 점 자체가 제거된다는 것이다. 이번 시차적응도 그렇다. 잠이 오면 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오지 않는 대로 시간을 보낼 계획과 방법을 생각해서 별로 문제가 되지 않게 되면 꼭 자야겠다, 시차적응을 해야겠다는 집착도 사라진다. 아직 오늘 밤이 되지 않아 오늘은 잘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잠이 와도 오지 않아도 이제는 상관이 없다. 나에게는 아직 하지 못한 코딩이 산더미처럼 있다.


이미 제거되지 않아도 상관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제거되는 점은 참 흥미롭다. 마치 일이 있는 사람에게 일이 집중되고, 돈도 있는 사람이 더 잘 버는 것처럼 문제도 그런가보다. 문제라도 느끼는 사람에게 문제도 들러 붙게 된다. 문제가 아닌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닭과 병아리의 순서에도 결국은 닭이 있어야 달걀이 생기는 것 처럼, 문제 해결에는 문제가 아닌, 나에게 집중해야 문제가 사라진다. 그런데 문제가 있을 때는 그 사실을 눈치채기가 쉽지 않다. 문제로 인한 피해가 막심해서 자신의 여러가지가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와 지침과 힘듬으로 고통에 매몰되게 되고, 더욱더 근시적인 목표에 집착하게 되고, 애초에 왜 그 목표를 가지고 있는 지도 잊어버린다. 고통이 영원할 것만 같고, 더이상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하는 말, 혹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은, 객관적으로 그렇다, 어쩔 수 없다, 할 수 있는 것은 다해봤다, 이런 류의 말인 것 같다. 이런 말이 들려온다면 문제에 매몰되어있다는 시그널에 눈치 채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그만두자. 그냥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해야한다. 그러다 보면 최악이라고 생각했던 그 상황이 생각보다 최악은 아니고, 최악일지라고 해도 그렇게 까지 나쁘고 아에 못살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똑같은 사람인데, 방금 까지만 해도 객관적으로, 어쩔 수 없다, 최악이다라며 투덜거리던 사람인데 겨우 조금 다른 무언가를 해본 것 만으로도 뭔가 다른 내가 되어있다. 이런 순간은 늘 즐겁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기쁜 것도 있지만, 내가 또 이런 나쁜 상황에 빠지더라도 다시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고 그 상황에서도 즐거울 수 있는 더 많은 상황에서 기능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다 라는게 굉장히 자랑스러워진다.


다른 사람들의 뭔가 알 수 없는 기대를 짊어지고 명문 대학을 가려하고 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객관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했을 때는 그 어떤 결과도 자랑스럽고 기쁘지 않았지만 내가 해결해낸 문제들은 하나하나가 사소하고 작은 일이지만 가슴벅찬 만족감과 기쁨을 준다.


나는 시차적응을 극복한 사람이다.

나는 좀 멋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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