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영어사전과 옥편
이전 글에서 말했듯, 난 중학교 2학년이 시작되기 직전, 난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근처의 학교로 전학을 갔다.
원래는 집 근처 공립 중학교로 갈 예정이었지만, 마침 그 시점에 종로구 혜화동에 있던 그 학교가 송파구로 이사를 오면서 학생수가 모자랐던지, 버스로 다섯 정거장이 떨어진 우리 집까지 배정 범위에 포함됐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지금의 대림동과는 또 다르다)
일단 애들이 귀티가 났다. 지금은 흔하디 흔한 나이키, 아디다스, 아식스를 입고 신고 다녔다. 당시의 나에겐 꿈도 꾸지 못한 브랜드들이었다. 그리고 다들 어딘가 진중해 보였다. 물론 남자 중학생이 젊잖아 봤자 거기서 거기지만. 이른바 '날라리' 같은 친구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조금 보태자면 대림동 살 때와는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게 다 '학군의 차이'였고, 그 동네 사는 사람들의 수준 차이였다.
전학을 가니 교과서도 다르고, 학교 정책도 달라서 2학년 초반에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선생님들은 거리낌 없이 부교재나 학습 자료를 사서 준비해 오라고 했다. 나에겐 큰 부담이었다. 뭘 시작하려고 하면 난 걱정부터 하곤 했다.
사실 난 그때까지만 해도 영어를 못했다. 영어만 못한 게 아니라, 중학교 2학년 첫 월 정기고사 (당시에는 시험도 자주 봤다)에서 반에서 53등을 했다. 56명 중 꼴찌에서 세 번째였다.
"아니 넌 아직 사전도 없이 영어 공부를 하니?"라는 말을 영어 선생님께 들었다. 그러곤 당장 사서 학교에 가지고 오란다. 한문 시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다. 사춘기 중학생에게는 참으로 부끄러운 사건들이 하루 만에 두 번이나 일어났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한숨을 쉬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며칠이 지났다. 난 선생님께 아직 사전을 못 샀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빨리 사 오라"고만하셨다.
일주일쯤 지나서였을까. 어머니가 비닐봉지에 든 두툼한 뭔가를 내밀었다. 영어사전이었다. 며칠 뒤엔 옥편도 생겼다. 부모님이 어떻게 그 돈을 마련하셨는지 난 묻지 않았다. 아니, 묻고 싶지 않았다.
사전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갔다. 무거웠다. 사전의 무게만큼이나 내 마음도 무겁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같은 반, 어떤 친구는 전자사전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전자사전은 수십만 원이었다. 난 그 친구가 전자사전으로 게임하는 걸 부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아, 우리 집은 진짜 가난하구나. 그리고 이 가난이 나 때문이구나'라는 생각이 든 건. 정확히는 '내가 공부를 못해서 부모님께 부담을 드리는구나'였다.
그리고 또 하나. '그냥 안 해버리면 식구들 모두 편한 것 아닌가'라는 생각도 처음 했다. 가난에서 벗어나 '평범한' 삶을 살려면 공부를 잘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이 시기다.
그들은 수십만 원짜리 일제 워크맨을 학교에 가져왔다. 쉬는 시간이면 헤드폰을 나눠 끼고 미국이나 유럽의 헤비메탈 밴드 음악을 들었다. 메탈리카, 아이언 메이든, 건즈 앤 로지스. 그들은 그 밴드들에 대해 열띤 토론을 했다.
난 그 옆에서 무한한 소외를 느꼈다. 물질의 풍요로움이 문화의 향유로 이어지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말이다.
난 어릴 적에 뭔가를 돈을 주고 배운 게 없다. 그래서 수영도 할 줄 모르고, 그림도 그릴 줄 모른다. 차라리 시골에서 나고 자랐으면 개헤엄이라도 칠 텐데 그것도 아니다.
하지만 난 지금도 부모님께 감사하고 있다. 내가 졸라서 산 사전들을 사게 해 줄 돈을 마련하기 위해, 그리고 그걸 사주지 못하는 본인들의 무능함과 빈곤함을 어떻게 해서든 이겨낸 것에 감사한다.
먼지를 한가득 뒤집어쓰고 있었다. 사전에 손을 가져간 순간, 난 중학교 2학년의 결기에 찬 어린 남자애가 되었다. 그 시절엔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만 했던 나를 거울 보듯 봤다.
만약 우리 집이 부유했다면 내가 부모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며 살았을까?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의 그 친구들은 그들의 부모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지냈을까 궁금하다.
아마 나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치 지금의 내 아이들이 나에게 그 말을 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고 부모가 된 나도 자식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표현만큼은 그 어느 관계에서보다 빈곤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부모님의 여생 동안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해야겠다. 아마도 다음에 부모님을 찾아뵐 때엔, 그 먼지 쌓인 사전을 다시 펼쳐 들고 부모님께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