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건너온 물건들

제4편: 결혼반지

by 위시웍스 김작가

난 2008년에 결혼했다.


독신으로 독일 함부르크에서 주재원 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 요청을 하게 된다. '결혼을 해야 해서 더 이상 주재원 생활을 할 수 없으니 본사로 돌아가고 싶다’는 요지로 말이다.


다들 난감해했던 것 같다.


우선 회사로선, 한 직원의 개인적인 이유로 주재원 기간을 채우기도 전에 귀국시킨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사실 본사로 돌아갔을 때 나한테 마땅한 자리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돌아가서 앉게 될 자리를 가지고 몇몇 본부장이 의논을 거듭한 것으로 안다. 물론 결국엔 어느 본부장님의 훌륭한 (나에게 이로운) 결정으로 무사히 본사에 안착할 수 있었지만.


'결혼을 해야 한다고 돌아왔으니, 결혼을 해야지'라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상대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별로 없었다. 왜 돈은 늘 없는지 모르겠지만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일단 상대를 구하자는 일념이었다. 소개팅도 몇 번 하고 그랬는데, 소득은 없었고.


그런데, 내가 고등학생 때인가, 어머니가 가끔 앞날을 내다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찾아가는 어느 사찰의 스님이 이런 말을 하셨다고 전해진다.


“댁의 아드님은 부모가 정해준 배우자와 결혼할 것”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아니, 요즘 세상에 누가 부모가 정해준 대로 결혼을 합니까? 네?’라고 하고 가볍게 넘겨버렸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그대로 됐다.


나의 외할아버지는 6•25 때 학도병으로 전쟁터에 나가 전사하셨는데, 당시 수많은 여성들이 같은 이유로 남편을, 아버지를 잃었다. 그 후, 유가족들은 국가보훈처의 탄탄한 서포트 아래 막강한 단체로 존재하고 있다. 아버지의, 남편의 핏값으로 나라를 지켜냈다는 자부심과,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 사이의 유대감은 그 무엇보다도 강한 것이리라.


이 단체에서 우리 엄마는 내 배우자감으로 누군가를 소개받았는데, 지금 내 아내의 외삼촌이 나와 내 아내의 맞선을 주선하게 된 것이다. 그게 아마도 2006년 6월 28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나서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 되는 이야기는 지리멸렬할 것이므로, 그중 일부만 말하자면, 결혼반지이야기다.


결혼 준비가 한창이었던 2007년 전체를 돌이켜 보면, 우린 단 한마디의 싸움이나 의견 충돌이 없었다. 당시 결혼 준비를 위해 돌아다니던 서울의 곳곳에서, 추운 겨울에 길 한복판에서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커플들은 십중팔구 결혼 준비하다 싸우는 상황이 맞다. 어쩌면 싸우는 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데, 우리는 그런 게 없었다. 사실 지금도 여전하다.


혼수든, 예물이든 난 관심이 크게 없었다.


나보다 몇 달 먼저 결혼하는 회사 후배는 처가에서 해 주는 예물시계 때문에 양가 사이에서 큰 싸움이 있었다고 하는데, 난 그런 예물시계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저 난 형식적이고 남 보여주기식의 결혼 준비를 어서어서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0251123_114829.jpg 어렵지 않게 찾았다. 찾고 보니 아내도 이걸 안 낀지 오래된 듯 하다.


결혼반지도 마찬가지였다.


누군가가 봤을 때, 내가 결혼한 사람이란 것만 표시해 주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어서, 얼마짜리를 어떤 모양으로 하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내 아내가 될 사람이 원하는 대로 했다. 그 아내 될 사람도 무리한 수준을 절대 넘지 않는 매우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큰 문제가 일어날 이유가 없었다.


내 결혼 생활은 풍족함, 풍요로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서로가 상대방이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내 아내의 의견도 들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정말 오래전부터인 것 같지만, 그 결혼반지는 끼지 않는다.


불편하다, 손 씻을 때 자꾸 걸린다 등등의 핑계로 안 낀 지 오래다. 하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다. 만일 값이 나가는 반지였다면, 어쩌면 애초에 팔아서 다른 곳에 썼을 수도 있지만, 그럴 가치조차도 없어서 아직 있나 보다. 집에 남아나는 금이 없는 걸 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결혼반지를 끼지 않는 것이 부부간의 애정과 관련이 있을까? 그렇다면, 내가 내일부터라도 이 반지를 다시 끼고 다닌다면, 우린 다시 예전의 애틋한 사이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게 반지는 그저 쇳조각일 뿐이다.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가 쌓아온 것들—서로를 배려하려는 노력,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진짜 우리를 이어주는 것이다. 비록 지금은 조금 냉담해 보일지라도.


어쩌면 이 반지는 시간을 건너온 물건이라기보다, 시간 속에 머물러 있는 물건인지도 모른다. 2008년의 어느 순간에 멈춰 서서, 그때의 설렘과 기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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