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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e Nov 14. 2024

산책하는 발걸음의 무게

띠링-

당근에 글이 올라왔다.


같은 동네 아파트에서

고양이를 잃어버렸다는 글이었다.


같은 고양이 집사로서

그 마음이 얼마나 애가탈지 공감되는 마음에,

또 상담 선생님께서 내주신 과제인

하루 1회 산책하기 이슈로

고양이를 찾을 겸 동네 산책을 하게 되었다.


찾았으면 하는 애타고 간절한 마음과

동네 산책이라는 가벼운 마음.


두 가지 상반되는 마음이 공존하는 순간이었다.


의미는 깊지만, 시작은 가볍게,

부담되지 않는 나의 스타트이다.


아쉽게도 고양이는 찾지 못했다.

글을 올린 주인 분에게 연락을 해봤으나

찾았는지 못 찾았는지 여부조차 모르게

연락두절이다.


길게 이어질 것 같은 나의 고양이 찾기 산책은

그렇게 끝나게 될 것 같다.


그러나, 상반된 마음으로 함께한 스타트는

하루 1번 산책하기에 부담을 가지고 있던 나를

조금은 움직이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적어도 내일은 ‘인형 뽑기를 해보러 나가봐야지’

라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고양이를 찾아 나섰지만,

비록 고양이를 만나진 못했지만,


산책하는 와중 발견한 귀한 순간이 있다.






으슬으슬 추운 몸에, 어질어질한 머리.

알바가 마치면 빨리 집에 가 쉬고 싶었지만,

아른거리는 잃어버린 고양이에

결국 한밤중 동네 한 바퀴라도 돌아봐야지 다짐하고

천천히 걷게 되었다.


이리저리 주위를 둘러보다 보니

하늘에 시선이 닿았다.



오리온자리였다.


특이한 모양 때문인지,

고등학교 수업 속 유난히 기억에 남은 이 별자리는

나에게 있어 겨울을 알리는 별자리다.


그 담긴 의미 때문일까.

오리온자리를 발견한 순간부터


겨울바람의 찬 기운이,

겨울공기의 건조함이,

차가운 날씨에 조용해진 밤거리,

벌레 우는 소리조차 없는 고요함,


계속 존재해 왔지만

무신경하게 넘겨왔던 내 주위의 것들이

와닿았다. 나에게 닿았다.


차갑고 건조하며, 그렇기에 고요하고 청명한

겨울의 밤하늘에서 조용히 빛나는 별자리이다.


그 조용한 찬란함을 난 좋아했지.


비록 고양이는 못 찾았지만,

나는 다른 무언가를 찾아 마음에 담았다.






다음 날이다.

너무 어두워 고양이 찾기가 힘들어

이번에는 낮에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겸사겸사 잡혀있던 약속 덕분에

한 몸같이 붙어있는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비록 세수, 양치도 못한 꾀죄죄한 몰골이지만

약속을 지켰다는 보람찬 마음에

어제 다짐했던 낮 산책을 실행할 수 있었다.


목적지가 있는 게 아닌, 찾는 것이 있기 때문에

걸음은 느릿하다.


풀 숲을 한번, 어두운 구덩이를 한번,

쓰레기 더미를 슬쩍, 아파트 구석 틈새를 슬쩍,


하나하나 살피며 걷는 걸음 속,

평소 걸을 때보다 낮은 시야가 느껴졌다.


그 낮은 시야에서 발견한 또 다른 순간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는 오래된 아파트라

유난히 어르신들이 많이 산다.


어르신들의 흔한 취미 생활로

아파트 입구에는

사람구경하기 위해 자리 잡은 의자나

그들만의 질서가 있는 화단 따위가 많다.


그중 나를 사로잡은 작은 것.



돌맹이다.


유난히 뽀얗고 반들반들한 것이

어르신께서 발견하고 따로 모아둔 듯싶다.


화분 위 조경에 쓰시려고 모아두신 걸까.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예뻐 보여서 저리 두셨을까.


누군가에겐 그저 평범한,

뻥 차고 지나칠 돌맹이들이었을 텐데.


어떤 용도였든, 마음이었든,

그 의미는 모르겠지만

따로 모여있는 모양새에서

작지만 그 가치가 생겨났다.


반들반들한 돌맹이.

그 모양을 닮은 부드러운 가치.


산책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사소한 풍경.


그 걸음이 무겁기도, 가볍기도 하지만,

적어도 내 마음에 무언가 차오른 것은 확실하고

그 사실은 걸음의 무게 따위 상관없게 만든다.


비록 돌맹이일지언정

소중히 여기면 가치가 생긴다.


비록 흔한 동네 풍경일지언정

마음에 담으면 나를 따스히 채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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