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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05. 2021

#1. 잠수부

#1. 잠수부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속에 들어가면 사랑스럽던 내 아이가 생각난다. 태어날 때부터 물이랑 함께였던 아이. 아이의 정서발달에 좋고, 산후 회복이 빠르다는 이유로 커다란 욕조에서의 수중분만을 택했던 우리 부부의 소중한 보물. 그렇게 태어난 우리 아이는 많이 아팠다.


 일곱 살 무렵부터 갑작스레 시작된 발작에 병원에서는 뻔하디 뻔한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밖에 해주지 않았다. 심장 기능이 너무 약해져서 혈액순환이 안되니 폐에 물이 차오르고 그로 인해 찾아오는 발작과 위기들. 병원에서는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그저 지금 상태를 유지하는게 최선이던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어느날 잠시 원무과에 갔다 병실로 돌아가니 아이가 혼자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들어가 있었다. 혼자 위험하게 뭐하는 거냐 화를 내려다 말았다. 두 평 남짓의 욕실을 채우는 전구보가 환하게 빛나는 아이의 미소 앞에서 나는 그보다 덜 빛나는 미소를 지으며 ‘물놀이 하고 싶었구나’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찰박찰박 물장구를 치던 아이가 나도 욕조에 들어오란다. 옷을 벗고 비좁은 욕조에 들어갔다. 아이는 내게 등을 기댄 채 장난감 하나 없는 욕조에서 뭐가 그리 즐거운지 꺄르르 웃으며 잘도 논다. 그러다 물속에서 누가 더 숨을 오래 참는지 내기를 하자고 했다. 욕조가 좁아서 둘이 같이 머리를 넣을 수 없으니 서로가 초를 세주기로 하고 내기를 시작했다. 아이는 자기가 먼저 하겠다며 작은 머리를 물속에 폭 집어 넣었다. 하나...둘...셋...넷.......서른...서른 하나... 아이는 서른 하나 반에서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숨을 내뱉으며 밖으로 나왔다. 더 참을 수 있었는데 아쉽다며 칭얼댄다. 다음은 내 차례다. 눈을 감고 머리를 물속에 푹 집어넣으니 온세상이 고요하다. 그 위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하나...둘...셋...넷...스물 아홉...서른... 나는 서른에 맞춰 물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자기가 이겼다고 꺄르르 좋아하다가 또 하자고 한다. 두 번째도 아이가 아슬아슬하게 나를 이겨줬다. 한 번 더 하잔다. 다시 아이가 이겼다. 또 하자고 한다. 나는 이제 물도 차가워졌으니까 나가자고 했다. 아이는 또 하자고 한다. 이제 나가야 한다니까 떼를 쓰기 시작한다. 아빠 힘들다고 나가자고 하는 나에게 자기는 숨참기 연습을 해야하니까 계속하자고 떼를 쓴다. 왜 연습을 해야 하냐는 내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자기는 나중에 숨이 막히게 되는 날이 올거니까, 그때 더 아프기 싫으니까 숨 참기 연습을 해놔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이의 그 말을 들은 나는 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도 숨이 막혔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했다.


 그럼 아빠 먼저할게라고 말하며 얼른 물속에 머리를 집어 넣었다. 이번에는 물속 세상이 너무나 시끄러웠다. 그 위로 들리는 아이의 목소리. 하나...둘...셋...넷... 나는 소리 내지 않고 울었다. 마흔...마흔 하나...신기록이었다. 물의 양이 조금 불어난 욕조에서 우린 몇 번의 숨 참기 놀이를 더 하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


 그때부터 아이의 취미는 숨 참기 놀이가 됐다. 세수를 시켜줄때도, 밥을 먹다가도, 잠들기 전에도 숨 참기 놀이를 했다. 처음에 서른 하나였던 기록은 마흔, 쉰, 점점 늘어났다.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숨을 오래 참을 수 있으니까, 아빠보다 대단하니까 얼른 건강해질 거라는 말밖에 해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렇게 늘어나는 숨 참기 기록과는 반대로 우리에게 남은 날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것을 나도 알고 아이도 알고 있었다.


 어느날 밤인가. 아이에게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건강해져서 어른이 되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자기는 숨 참기를 잘하니까 잠수부가 되고 싶댄다. 잠수부가 되어서 바다속 물고기들이랑 수영하면서 놀고 싶다는 아이의 꿈과 이유를 듣자마자 또다시 내 목구멍에 깊은 바닷물이 차오르는게 느껴졌다. 그 터무니 없이 슬픈 꿈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목소리가 나를 깊은 바다속에 빠뜨린다. 울컥울컥 목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을 삼키며 그럼 아빠가 예쁘게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말했다. 다음날 인터넷에서 물고기들과 헤엄치는 멋진 잠수부의 사진을 프린트해서 아이의 머리맡에 붙여주었다. 아이는 사진에 화살표를 그려 자신의 이름을 써두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아이의 숨 참기 기록이 예순을 찍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 나의 조그마한 잠수부는 다시는 올라올 수 없는 잠수를 시작했다. 산소통을 떼고도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멋진 잠수부가 되어 깊고 깊은 바다로 떠나버린 나의 사랑스런 아이. 분명 숨참기 연습이 떠나는 길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좁은 욕실을 환하게 밝히던 그 미소가 생각날 때마다 나는 욕조에 얼굴을 쳐박고 숨을 참는다. 고요해진 세상 위로 사랑스런 목소리가 들려온다. 하나...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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