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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막무침 Jul 07. 2021

#2. 최초의 술

#2. 최초의 술 


"그런 생각 해봤지 않아? 인간이 처음 술을 어떻게 찾아냈는지 말이야."


애가 또 이상한 소리를 시작한다. 술만 마시면 별 해괴한 이야기를 하는 술 버릇. 저번에는 사후세계가 진짜 있으면 살인 같은 범죄가 줄어들 거라고 별 이상한 이야기를 했었더랬지. 술도 달큼하게 들어갔겠다 이런 헛소리만큼 또 재미있는 게 없지. 그냥 듣고 있어야겠다.


"아니 그게 그렇잖아. 인간이 어떻게 술을 마시게 되었냐 이 말이야. 하늘에서 뚝 떨어졌을 리도 없고, 하나님인지 악마인지가 하사해 준 것도 아니고. 아니 분명히 그랬을 거란 말이지. 잘익은 과일이 나무에서 떨어져가지고 상처도 나고 까져서 어디 바위 틈이나 나무 사이에 우연히 굴러 들어갔는데, 그게 또 우연히 공기 중에 효모? 효모 맞나 그거랑 만나서 발효가 되는 거지. 그렇게 발효되어서 있는 거를 또또 우연히 지나가던 원시인이 발견해서 먹는다고. 그걸 먹으니까 기분이 알딸딸한게 이상한데 또 그게 기분이 좋아서 그런 과일만 찾아다닌다고. 그게 그렇게 진화한게 지금의 술이라고."


그럴듯하다. 


"아니 그게 진짜로 이상한 게 나무 위에 맛있는 과일이 널려 있을 건데 왜 굳이 그 발효돼서(돼가지고) 바닥에 징그럽게 뭉그러진 과일을 먹냐고. 그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한참 말을 쏟아내더니 목이 말랐는지 한잔 마신다. 이가 약해서 그랬겠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어 드립칠 타이밍을 찾는데 이놈이 또 말을 이어간다.


"아니 그게 지금 내 여자친구 같다는 말이지"


무슨 말인가 싶다.


"분명히 딱 처음 봤을 때는 얼굴도 그렇고 성격도 그냥 그랬다고. 애가 좀 뭐라 해야 하지 사람도 잘 안 믿을 것 같고 말도 없고. 뭔가 좀 상처 많은 그런 느낌? 근데 한번 진지하게 얘기해보니까 이상하게 매력 있더라고. 어렸을 때 상처가 좀 있긴 했는데. 그... 그 상처 나서 뭉그러진 과일 같았는데 이상하게 한입 먹고 보니까 취하더라고. 이 사람 저 사람 막 취하게 만드는 그 최초의 술 같은 그런 거."


아주 재수가 없다. 돌고 돌아 여자친구 자랑이라니.


"너도 눈 좀 낮추고 밑에 좀 봐봐. 술이 널려있다니까. 아. 여자친구 보러 가야겠다. 막잔하고 가자"


연애 자랑 들을 바에 집에 가는 게 낫겠다 싶어 나도 마지막 잔을 마시고 일어났다. 계산하면서 보니 생각보다 많이 마셨다.


"전화 안 받네. 자나? 아아. 연락할게 들어가라."


나에게는 인사도 대충 하고 이어폰을 귀에 넣으며 비틀비틀 여자친구 집으로 향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고주망태의 모습이다. 술에 취하고 사랑에 취하면 사람이 저렇게 흥겹게 걷는가 싶다.


어떻게 집에 들어왔는지 기억도 안 나는 아침. 친구는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연락을 전했다. 한참 진동을 내던 전화를 받아보니 경찰서다. 여자친구의 외도를 목격하고 발생한 치정 살인사건인데, 피의자와 마지막으로 같이 있었던 사람이 나라고 진술을 하러 경찰서로 오란다. 과한 음주가 이렇게나 위험한가 보다.


아마 최초의 술은 하나님인지 악마인지가 하사해 준 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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