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세계-모래>를 읽고
온라인으로 책을 주문하다 보면 유독 배송이 기다려지는 책이 있다. 최근 주문해 읽고 있는 <물질의 세계>가 그런 책이다.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라는 광고 문구 속, 6가지 물질- 모래, 소금, 철, 구리, 리튬-의 정체를 알고 나니 구매욕이 솟구쳤다. 철, 구리 그리고 최근 각광받는 리튬은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데 모래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독자 마음을 헤아리는 빠른 배송 덕에 600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물질의 세계> 첫 페이지를 빨리 영접했다.
대단한 이들의 추천사를 지나 본격적인 서사시는 작가 본인의 금반지로 시작된다. 작가는 금 채굴을 위한 발파 작업을 보며 본인이 끼고 있는 금반지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다. 제품인 금반지만 생각하다 그 이전 단계에서 몇 돈의 금을 채굴하기 위해 산 하나를 폭파해야 한다는 사실을 접하며 문명의 전환과 발전을 이루는 물질들을 새롭게 들여다본 것이다. 6개 물질의 첫 번째 주자는 ‘모래’다.
그전에 “모래는 내게 어떤 가치였을까?” 하고 생각해 봤다. 어린 시절 ‘두꺼비집’ 만들기에 쓰던 모래, 흔하디 흔한 해변의 모래, 사자성어 사상누각(沙上樓閣), 그리고 샌드아트, 학교에서는 규사나 석영 등으로 이루어진 자갈보다 작은 알갱이로 배웠고 유리나 반도체를 만드는 재료로도 사용된다 정도가 전부다. 그렇다면 공통점은? 지구상에서 가장 흔한 물질 중 하나로 내 삶에 영향을 미치지도 큰 가치를 담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내 삶에서는. 설마 모래가 없다고 죽고 못 사는 것은 아닐 테니.
하지만 <물질의 세계> 안, 모래의 위상과 가치는 “가장 오래된 것에서 탄생한 첨단의 기술”이라는 부제가 가늠할 수 있다. 무지로 인한 것도 있겠지만 너무 흔해서 그 존재의 중요성, 그리고 그 중요성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아예 인식도 못한 면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모래는 역사와 문명을 만들고 그 문명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모래’ 챕터를 읽으며 유리창을 보고 스마트폰을 만져 보고 다른 아파트를 바라본다. 문명과 발전의 측면에서 모래의 ‘기여도’와 ‘가치’를 느끼기에 그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막에서 강가에서 바닷가에서 봤던 모래들이 변화와 발전에 모두 적합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 시절 가장 완벽한 모래알을 찾아 가공해 천문학자의 망원경으로 쓰여 천체를 탐구했고, 2차 대전에서는 승패의 향방을 가르는 군사용 망원경으로 사용됐다. 과학을 발전시키고 인류의 향배를 가르는 역할을 한 것이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무엇으로 지어졌나? 콘크리트. 모래가 없었다면, 지금의 주택문화는 없는 것이다. 백 층이 넘은 건물이 어떻게 지어질 수 있었을까? 물론 이 세상 모든 물질이 명암을 갖고 있듯이 콘크리트도 긍부의 평가를 받지만 어쨌든 나는 지금 콘크리트 안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모래가 가장 빛을 발한 것은 지금도 매일 전 세계적으로 수십 억 명의 삶을 의존하고 있는 반도체다. 아침에 눈 떠 잠들 때까지 반도체가 없는 제품을 마주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책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현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놀라운 여정”. 그 주인공인 반도체의 핵심이 모래로부터 비롯된다. 중 구이 왜 대만으로의 모래 수출을 금지할까? 전 세계 시장 지배력이 높은 대만제 반도체 생산을 제어하기 위해서 아닌가? 반도체를 만드는 모래는 귀하다. 모래알 속에 반짝이는 ‘석영’이 주원료이고 일반 모래와 달리 “실리카 샌드”라고 부르며 미국의 한 주에서만 한정적으로 생산된다고 한다. 반도체 전쟁이기도 하면서 결국 21세기 “모래전쟁”인 것이다.
해변의 모래알이라고 절대로 평가절하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가 모래인 것을 알게 됐다.
최근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모래의 무분별한 채취와 사용으로 인해 환경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모래는 물질로서 역사를 만들어 왔으며 생태계와 기후에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그런 점에서는 미래를 책임지는 중차대한 역할을 한다.
모래 대하기를 황금같이 해야 할 것 같다.
책을 보며 공부한 사실 한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모래에서 발전한 한 형태가 ‘실리콘’인데 영어로 사용할 때는 꼭 기억해야 한다. 반도체 재료는 silicon(규소)이고 성형수술 재료는 silicone(규소 + 산소)이다. 알파벳 ‘e’ 하나의 차이가 정말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