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살면서 가지 않았으면 혹은 가지 말아야 할 곳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곳 중 하나가 치과다. 어릴 적 치과에 얽힌 자잘한 트라우마에 기인할 수도 있고 특유의 냄새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치과 특유의 소음에 질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사는 동안 자주 갈 수밖에 없는 곳도 치과다.
어릴 적 관리를 제대로 못한 탓에 이미 임플란트 2개에 몇 개의 크라운을 보유하고 있어 가능하다면 놓치지 않고 정기검진을 꼭 받는 편이지만 그 중간에 느닷없는 치통이 생기면 예정에 없던 치과 예약을 하게 된다. 물론 구력이 있다 보니 웬만한 통증은 경험으로 판단해 치과를 패스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번엔 그 경험론이 먹히지 않았다.
몇 주 전, 저녁 갑작스레 치통이 찾아왔다. 간혹 그러다 말겠지 하고 버티는데 느낌이 영 안 좋았다. 다음날부터 턱 통증이 시작되고 몸에 열감이 있고 좀 지나니 얼굴 반이 욱신거리고 급기야 두통까지 동반하는 총체적 난국으로 접어들었다. 15년 가까이 다닌 치과가 회사와 정반대 방향에 있어 점심시간에 다녀올 수도 없어서 일단 보유하고 있는 강한 진통제로 땜빵을 하고 집에 와 얼음찜질을 시작했다.
통증을 부여잡고 팔자에 없는 불면의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유튜브 검색을 해봤다. 유사한 증상이 과연 치통에서 연유되는 건지 아님 다른 병인이 있는 건지. 내 케이스와 흡사한 증상을 호소한 환자들 이야기가 나오고 의사의 오진인지 환자의 무지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불필요한 발치 이야기도 나왔다. ‘삼차신경통’을 치통으로 오인해 벌어진 의료 사고란다. 그럼 나는 ‘삼차신경통’인가?
네이버에 따르면 “삼차신경(trigeminal nerve)은 얼굴과 머리에서 오는 통각과 온도감각을 뇌에 전달하는 뇌신경이다. 삼차신경에 병적인 변화가 생겨 얼굴의 감각이상과 함께 씹기 근육의 근력 약화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를 삼차신경병증이라고 한다. 중년 이후의 여성에서 비교적 흔하다.”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결정을 해야 했다. 결론은 그래도 15년 동안, 내 부실한 치아를 이 정도라도 유지해 준 치과.
증상을 얘기하고 엑스레이를 찍고, 상담실로 이동. 발치를 할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아 임플란트를 해야 할 수도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물론 대안도 제시했다. “아무리 좋은 임플란트나 기술도 본인 치아만큼은 안되니 일단 신경치료하고 쓸 수 있을 때까지 써 보자”. 선택은 내 몫. 몇 차례의 신경치료를 마치고 본을 떠 크라운을 씌우는 단계로 왔다.
50줄이 넘으면 몸 곳곳에서 AS 요청을 한다. 빠르게 대응하는 편이었고 특히 치과는 더 신경을 기울이는 데도 불구하고 큰 개선이 안 보이고 늘 이 모양이다. 15년 간 들어온 따끔한 충고를 원장님이 다시 건넨다. “잇몸이 무너지면 끝입니다. 간호사한테 칫솔질 다시 들으시고 치간 칫솔 쓰시고 가능하다면 워터픽까지 쓰세요.” 원장님 레퍼토리라서 나도 외울 정도이고 따른다고 따르는데 여전히 미숙한가 보다. 누굴 탓하랴, 제대로 못한 나를 탓해야지.
인생 터닝포인트를 지났는데도 일상생활 곳곳에서 여전히 미숙함 투성이다. 몸에서 안 좋은 시그널을 보내면 무시하지 말고 바로 응답해줘야 하는데 진통제에 의존하고 검색이나 한 나 자신이 참 한심스럽다.
세면대에 놓인 나의 치아 친구들아, 더 친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