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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Apr 19. 2024

시대와 삶을 담아내는 목판화가 – 이철수

농사짓는 화가의 생각하게 만드는 그림

중독은 아니지만 업무 상으로, 개인적 취향으로 SNS를 자주 들락거린다. 그러다 느닷없이, -어떤 알고리즘으로 내게 노출이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반가운 혹은 눈에 익은 콘텐츠가 보일 때가 있다. 어제 아침 작은 조명등에 걸린 노란 리본을 담은 사진과 그 옆에 가지런히 잘 쓰인 캘리그래피가 눈길을 잡았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맞아 생명을 대하는 태도를 짧은 글 안에 담담하게 적은 편지였다. 그리고 주인장이 누구인가 살펴보니 낯익은 이름이 보인다. <목판화가 이철수의 나뭇잎편지>. 

이철수 - <거리에서>

이철수는 내게 1987년 대학 신입생을 소환해 주었다. 대학에서 운동권 언저리를 기웃거리던 중, 아주 거친 질감으로 저항과 투쟁을 담아낸 민중미술, 민중판화를 만났다. 특히 3월을 지나 4월, 5월이면 교내 벽에, 최루탄 날리는 길 위해 검붉은 대형 판화그림이 여기저기서 펄럭이며 80년대 운동권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었다. 그런 판화를 그린 대표적인 이가 이철수 작가였다. 그 시절 그의 판화는 분노와 좌절로 막걸리를 들이켰던 민중들의 대변자이며 그들의 의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다. 

그런 그의 그림을 기억하는 내게 어제 받아 본 그의 편지는 다소간의 낯섦으로 다가왔다. 세월이 흐르면 젊은 시절의 소신과 패기가 수그러듦이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고 심지어 아예 ‘변절’이라는 비난을 받는 이들이 부지기수인 시절에 큰 그리 놀랄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의 그림의 변화가 궁금해져 SNS 내에 있는 <이철수의 집>을 방문했다. 농사짓는 화가의 눈에 비친, 마음에 있는 사람들 이야기, 세상 이야기, 간혹 가다 정치 이야기가 차분하게 사진과 단정한 캘리그래피와 함께 조용히 펼쳐내고 있었다. 스크롤을 내려가며 하나하나 정독해봤다. 선거 날 전후에 쓴 듯한 글이 보인다. “얘들아! 투표했니? 오더라도 투표는 하고 오너라.” 투표일 저녁에 쓴 글도 작은 공감을 주며 슬며시 같은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나는 가서 자야겠다. 이만해도 다행이다. 아침에는 더 마무리되어 있겠지. 정치가 조금 합리적이 되겠네. 나는 잔다.” 글 옆에 잠자러 가는 화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날 나도 그랬다. 그런 생각을 했고 그렇게 잠자리에 들었었다. 

화가의 생각의 변화가 더 알고 싶어 검색을 해 보다 ‘아’ 하고 탄식,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80년데 이후에도 나는 그를 여러 번 접하면서 그의 변화를 알고 있었다. 판화집, 달력, 다른 작가의 책에서 이미 그를 눈에, 마음에 담고 있었는데 내 감이 무뎌지고 회상력이 떨어져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는 변한 게 없었다. 80년대 끝자락에도 2024년 지금도 그는 시대를 담아내고 사람을 담아내려 무던히 애쓰는 중이었다. 나만 몰랐다.  

 

그의 변화, 하지만 심지 굳은 생각을 담은 인터뷰 글이 있었다. 


"1980년대 죽창 들고 있는 것은 격렬한 그림이고, 2010년대 마음 심(心) 자 모양은 웃고 있는 그림입니다. 달라 보이지만 제 의도는 다르지 않습니다. 그림 두 개를 나란히 붙여놓고 보면 같은 세상에서 같은 사람 상대로 같은 이야기를 제안하는 거죠. 격렬함과 나긋나긋함의 차이일 뿐이지요. 어찌 이리 변했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과거나 지금의 저는 다르지 않습니다. 표현이 거칠지 않을 뿐이지, 지금 제 그림도 여전히 현실에 대한 발언입니다." 


이철수는 과거, 시대의 아픔을 깍는 화가에서 지금은 마음을 다듬어 표현하는 화가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가 던지는 한 마디에 그의 생각이 담겨 있다. 


“내 방식대로 시대를 같이 책임지려고 했다”

아침마다 SNS를 열면서 그의 사진과 글을 정독한다. 세월호도 있고, 선거도 있고, 민들레도 있고 숲도 있다. 그와 함께 나도 작지만 이것들에 ‘책임’을 지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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