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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st May 03. 2024

내 이마에 맥도날드

M자 이마의 서글픔

외모에 대해 큰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주 억울할 정도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20살이 넘으며 내 키가 더 클 거라는 희망도 버렸고 잘생겨짐에 대한 욕심도 결혼을 하며 버렸다. 이 키에, 이 외모를 가진 나를 선택해 준 아내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하지만 콤플렉스까지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며 점점 더 신경 쓰이는 게 하나 있다. 머리, 정확히는 머리카락이다. 


40대 초반까지는 나름 숱도 있어서 야구모자를 쓰면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정수리에 바람 들어오는 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모자를 쓰면 빈 공간이 보이는 게 점점 신경이 쓰여 거울 들고 정수리를 비춰보는 횟수가 점점 늘어갔다. 


눈길 한 번 안 주었던 ‘모발모발’ 광고가 귀에 걸리고 눈에 밟히고 마트에 가면 탈모샴푸 한 번 들어 보고 탈모 방지 관련 검색도 자주 하게 됐다. 그놈의 알고리즘이 가만둘 리 있겠는가? SNS에, 검색 페이지에 탈모방지 제품 광고가 빗발친다. 몇 번 클릭한 적도 있다. 아주 가는 침으로 머리를 자극하고 바르는 약을 포함해 가발 말고 나머지 제품들은 이미 세면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정성 들여 바르고 감고, 매만지고 해 봤지만 정수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국내 탈모 케어 시장이 2020년 3072억 원 규모에서 2025년 4990억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또 샴푸 시장에서 탈모 케어 샴푸의 비중은 2015년 31.2%에서 2020년 42.7%로 증가했다. 내가 이 시장에서 한몫을 하고 있다니. 돈을 쓰는 것도 답답한 상황이지만 점점 탈모가 가장 큰 스트레스로 올라선다. 

스트레스의 정점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를 만났을 때다. “야, 머리가 왜 그래? 무슨 역변인겨? 고등학교 때는 빽빽했는데, 야 이 정도면 심어야 되는 거 아냐? 아는 데 있는데 소개해 줄까?”

AdobeStock_New-Africa

심는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라니.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집안이 대머리 유전자가 있었던가? 아버지 얼굴을 떠 올려 보고 한 번 뵌 적도 없는 할아버지 영정 사진도 떠오르고. 내가 대머리가 되는 건가? 그런데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사실 대머리는 아니다. 앞이마가 시원해 보이긴 하지만 옆머리로 머리 전체를 덮거나 뒷머리를 당겨 머리를 덮을 정도의 대머리는 아니시다.    


거울을 들어 앞뒤를 비춰보니 여전히 여기저기가 허옇다. 특히 이마 주변이 훤하다. 그 넓은 빈터에 건물을 지어도 몇 채는 들어갈 것 같다. 어디까지가 이마고 어디부터가 머리인지 경계선이 무너졌다. 우울한 기분에 이마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모양새가 낯익다. 어디서 봤지?


아, 맥도널드. 햄버거 프랜차이즈의 노란색 로고가 내 이마에 있다. 그것도 아주 선명하게.  황당하게도 웃음이 난다. 

탈모로 스트레스 만빵이었는데 탈모 덕에 웃음이 나오다니, 아이러니다. 

현대 과학, 의학이 해결하지 못한 몇 안 되는 과제 중, 하나가 탈모다. 물론 70-80%를 회복시켜 준다는 신약 발표가 이어지며 1000만 명에 이르는 탈모 인구를 웃게 하지만 여전히 부작용 등의 이슈는 상존하고 있어 일희일비의 연속이다. 


어차피 이번 생에 대머리만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가야겠다. 힘들면 내 이마의 맥도날드를 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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