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쪼옴.”

하지만 회사에 깜빡이는 없다.

by jest

운전을 하다 보면 별의별 상황을 다 보게 되고 보는 단계를 넘어 험한 꼴 겪게 되는 경우도 간혹 발생한다. 나만의 공간이기에 부처님 가운데 토막 아닌 다음에는 욕도 저절로 나올 때도 있는데, 그 전 단계에 욕 없이 가장 많이 나도 모르게 뱉는 말 중 하나가 “깜빡이 좀 키고 들어와라, 쪼옴.”이다.


영화 <아저씨>에 등장하는 아주 나쁜 형제 중 아우(김성오 배우)의 이 짧은 대사는 오래도록 밈으로 살아남았다. 화를 내는 것 같진 않고 그렇다고 위협도 아닌 것으로 들리는데 이상하게 오래 기억에 남는다. 그 말 속에는 규칙을 어겼다는 항의보다도, 최소한의 예의와 예고조차 없이 밀고 들어오는 세계에 대한 피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일상의 장면(아주 극악한 일상이지만)을 운전에 빗대 한 말이지만, 이 대사는 회사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 적어도 내 마음은 정확히 건드린다.


직장에서는 종종 깜빡이 없는 차선 변경을 당한다. 회의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던져지는 말 한마디, 충분히 논의됐다고 착각한 채 이미 결정돼 버린 방향, 어제까지 없던 이슈가 오늘 아침 내 업무가 되어 있는 상황. 설명도, 맥락도, 사전 공감도 없이 내 책임으로 돼 있고 무턱대고 책임지겠다고 하기에는 너무 멀리 가버린 상황. 그저 “이건 네가 처리해”라는 신호만 남는다. 우리는 그 상황에 대해 준비할 시간도, 거부할 명분도 없이 급정거를 하거나, 억지로 핸들을 틀어 사고를 피해야 한다. 그 정도면 능숙한 건데 그렇지 못하면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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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깜빡이 순간이 반복되면 사람은 지친다. 일 자체가 아니라, 예고 없이 튀어나오는 변수들 때문에. 내 의지와 상관없이 말려드는 사건들 때문에. 문제는 이런 상황에서조차 우리는 늘 ‘프로답게’ 반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감정을 드러내면 미성숙해 보이고, 억울함을 말하면 책임 회피처럼 비친다. 그래서 대부분의 직장인은 속으로만 중얼거린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면 안됩니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회사라는 도로에서는 깜빡이가 없는 운전이 기본값에 가깝다. 조직은 늘 빠르게 움직여야 하고, 위에서 내려오는 결정은 종종 생략된 맥락을 포함한 채 전달된다. 이해와 공감이 충분히 확보된 이후에 일이 주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문제는 “왜 깜빡이를 안 켜느냐”를 따지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구조 안에서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다.


꼰대의 위치에서 더 어려운 건, 깜빡이 없이 들이미는 차량이 점점 많아진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위 깜빡이 상황에만 주의를 기울이면 됐는데 이제 아래 위가 없다. 심지어 아래에서 깜빡이 없이 들이미는 상황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그 상황은 90% 이상 위 깜빡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뭘 할 수 있을까? 한 동안은 체념을 선택했다. 그런데 나만 힘들어진다. 해결도 책임도 다 내 몫이다. 그래서 방향을 선회한다. 필요한 건 체념이 아니라 담대함이라고.


모든 차가 규칙을 지키길 기대하며 운전대를 잡는 사람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대신, 언제든 끼어들 차가 있을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속도를 조절하고, 간격을 확보하며, 필요하면 브레이크를 밟을 줄 아는 사람이 사고를 피한다. 회사 생활도 다르지 않다. 깜빡이 없는 이슈는 앞으로도 계속 튀어나올 것이다. 그럴 때마다 분노하거나 상처받기보다는, 아, 또 하나 들어오는구나 하고 한 걸음 물러서 상황을 보는 힘이 필요하다.


내게 선택한 담대함은 모든 걸 참자는 것이 아니다. 불합리함을 인식하되, 그 감정에 나를 맡기지 않는 태도다. 필요하다면 차분하게 맥락을 요구하고, 내 선을 설명하며, 감당할 수 없는 속도라면 속도를 낮추는 선택을 하는 것. 그렇게 한 번, 또 한 번 넘기다 보면 우리는 알게 된다. 깜빡이 없는 진입에도 휘청거리지 않는 자신을. 더불어 하나 더 챙긴다면 기분으로 행동하지 말자는 것.


어쩌면 이 시대의 직장인은 모두, 깜빡이 없는 도로를 달리는 운전자다. 중요한 건 상대가 깜빡이를 켜주길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고 나지 않는 운전법을 익히는 것이다. 오늘도 예고 없이 끼어드는 일이 있다면, 속으로 한 번쯤 말해도 좋겠다.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시죠.” 그리고 이내 핸들을 단단히 잡고, 담대하게 앞으로 나아가면 된다.


그런데 영화 <아저씨>에는 이 대사 말고 또 다른 명대사가 있다. 내게는.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난 오늘만 산다.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이건 깜빡이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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