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이해, 차이를 받아들이는 방법
반다이남코의 유명한 RPG IP, 테일즈 오브 시리즈는 무려 20주년 기념작이던 <테일즈 오브 제스티리아>가 스토리, 연출, 캐릭터, 전투 시스템 등 전체적으로 문제점을 보여 기념작이 시리즈의 자칫 마지막이 될 뻔 했다.
그 이후에 간신히 <테일즈 오브 베르세리아>로 반등에 성공하여 (이 베르세리아의 단점이 엔딩이 어쨌든 제스티리아로 이어진다는게 단점으로 꼽힐 정도), 9세대 콘솔에 이르러 절치부심이라도 한 듯한 게임을 드디어 내놓게 되었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처음에 공개된 영상이나, 이미지 스틸 컷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여주인공'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남주인공'
사이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라고 지레짐작하고 오랜만에 슬픈 이야기의 게임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기다렸다.
오해였지만.
게임을 끝내니 주인공 간의 러브스토리는 사실 곁가지일 뿐이었고, 어라이즈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소제목 처럼 서로 간의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용서와 이해의 이야기였다.
태생이 다른 두 종족은 한 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피해를 강요했다. 단순한 자원 수탈을 넘어서 게임적인 허용으로 피지배 종족의 생명력까지 뽑아대는 수준으로 300년간 유지된 일방적인 계급 사회는 피지배 종족의 정신까지 영향을 줘 이런 지배체계에 반기를 드는 생각을 감히 하지도 못할 정도의 핍박이 이어졌다.
이런 상황에 주인공이 "운명적으로" 균열을 내고 피지배 종족이 지배 종족에게 벗어나기 위한 이야기가 초반부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인물간의 갈등이 고조되고,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해서 점점 게임의 주제로 가까이 다가간다.
300년간 받은 피해에 대해 분노하는 사람, 당장 어제 부모가 죽은 사람, 무고하게 끌려가 잔인하게 고문 받은 사람, 고문 끝에 죽은 사람, 당장 내가 살기 위해 이웃을 밀고한 사람, 심한 노동 끝에 다치고 병든 사람..등등
이런 상처들은 분노가 되어 지배종족 전체에게, 더 나아가 레나족(지배) 개인에게 분노가 집중되어 사적제재를 가하기까지에 이른다.
결론적으로는 완전히 지배 종족과 피지배 종족은 완전히 동일한 같은 사람이었다는게 밝혀지며, 지배 종족은 가해자가 된 피해자였던 것으로 완전히 다른 악(惡)이 존재하여 그 악을 물리침으로 갈등이 해소되고 왕도적인 마무리에 다다르지만, 그 것은 하나의 게임으로 이야기가 완료될 수 있도록 갈등을 빠르게 봉합하기 위한 장치일 만큼 이야기의 목적은 지배 종족인 레나인과 피지배 종족인 다나인의 갈등에 집중되어 있다.
이때 주인공 일행은 본인들이 겪어온 상처와 고통을 솔직하게 고백함으로써 모두가 한발자국 나아가기 위한 그 첫 걸음으로 서로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 이해가 가능하기 위해 용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야기가 이런 시기에 더욱 큰 울림을 준다고 느꼈다.
지금 현재 얼마나 갈등이 많은지. 세대간의 갈등, 노동자와 고용주와의 갈등, 성별간의 갈등, 지역간의 갈등, 그리고 같은 그룹 안에서의 갈등.. 일부러 노린 건가? 싶을 정도로 실제로 일어나는 많은 갈등을 게임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극 중 캐릭터인 린웰은 피지배 종족인 다나인이지만 같은 다나인에게도 본인의 출신이 마법사라는 이유로 배척 당해왔는데, 이후 이 사실을 알게 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처럼 갈등을 그룹으로 정확히 묶지 않고, 정말 단순한 이유로도 발생하는 배척, 차별 등을 묘사하고 있는 점이 게임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참 극명하게 보여주는 요소라고 생각이 들었다.
서사가 강조된 게임 보다 깊이도 낮고, 신선한 전개도 아니지만 이런 시기에 용서와 이해를 주제로 스토리를 풀어 나가는게 매우 인상이 깊었는지, 후반부 던전의 부조리함도 견디고 게임을 끝까지 플레이 했다.
(이 게임의 단점은 후반부 던전에 그동안 상대했던 보스 몬스터들을 일반 몬스터처럼 깔아놓은 안일한 레벨 디자인이 단단히 한몫한다. 마치 모바일 게임에서 느끼는 구매를 유도하기 위해 강제로 만들어놓은 벽 같은 느낌.)
오히려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제시한 것이 마치 오컴의 면도날처럼 지나친 논리 비약이나 불필요한 전제가 아니라 차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용서, 이해 두개의 낱말 카드만 필요할 뿐이라고 알려주는 것 같아 기대한 러브스토리는 아니지만 오히려 보기 좋게 당한 느낌으로 신선한 기분마저 받게 됐다.
추가로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가 해낸 훌륭한 점은 이런 주제와 교훈을 마치 플레이어에게 가르치듯 훈계나 설교하듯 대하지 않고 그저 주인공 일행이 선택한 방법을 담담히 보여주는 방식으로 플레이어를 엔딩까지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제 의식을 완전히 드러내고 있지만 그걸 강요하지 않는 점에서 훌륭하게 마무리된 게임이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끝냈고, 이제 남은건 현실에서 내가 다른 누군가를 대할 때 과연 차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시간이 남았다.
모든 다나인들이 편견으로 모든 레나인을 미워한 것.
모든 레나인들이 예전에도 그래 왔으니 의심 없이 다나인을 차별한 것.
그러지 않기 위해 게임의 마지막을 보면서 느낀 점을 글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