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제의 생각이
아직 방 안에 남아 있는 채로,
오늘의 빛이
조용히 커튼을 밀어 엽니다.
세상은 늘 먼저 말을 걸지 않지만,
우리는 매일
대답해야 하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오늘은
그 대답이 조금 느려도
괜찮은 날입니다.
1521년 1월 3일 — 파문이라는 이름의 침묵
이날, 교황 **레오 10세**는
신학자 **마르틴 루터**를 공식적으로 파문했습니다.
하나의 문서가,
한 사람을 공동체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그러나 이 침묵의 선언은
역설적으로
더 많은 목소리를 세상에 불러냈습니다.
배제는 끝이 아니었고,
질문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역사는 말합니다.
진실을 향한 언어는
막힐수록
더 멀리 퍼진다는 것을.
회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말이
가볍게 지나쳐집니다.
그는 더 말하지 않습니다.
고개만 끄덕인 채
노트를 덮습니다.
잠시 후,
휴식 시간에
그가 건네는 짧은 문장 하나.
“아까 그 말은
아직 유효해요.”
큰 소리는 아니었지만,
그 문장은
내 하루의 방향을
조금 바꾸어 놓습니다.
말해지지 않았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배웁니다.
오늘,
말해지지 않은 진실이
내 안에서
썩지 않게 하소서.
잠시
숨을 쉽니다.
나는 종종
침묵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아무도 다치지 않게,
아무도 불편하지 않게
말을 삼키는 것이
성숙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삼켜진 말들은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서
무게가 되었습니다.
두려움이 되고,
후회가 되고,
나를 나답지 않게 만드는
작은 벽이 되었습니다.
가라앉은 마음은
분노를 가라앉히되,
맑아진 마음은
진실을 흐리지 않게 하소서.
말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지혜롭게 분별하게 하시고,
외면당할 가능성 앞에서도
정직을 포기하지 않게 하소서.
나는 여전히
완벽한 언어를 갖지 못했고,
때로는
틀린 말로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침묵보다
사랑을 선택할 용기를
오늘은 조금 더
내게 허락해 주소서.
이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작았지만
숨지 않았다고.
가라앉아
두려움이 잠잠해지고,
맑아져
내 진심이 길을 찾도록,
오늘을
침묵을 건너는
한 문장을 품은 하루로
조용히 살아가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