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9년 2월 12일
1809년 2월 12일 출생 / 1882년 4월 19일 영면
찰스 다윈은 인간을 특별한 자리에서 끌어내려 모욕하려 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그리고 무엇과 함께 살아왔는지—그 오래된 이웃들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주었다.
그가 제안한 자연선택의 생각은, 생명이 한 번에 완성된 조각품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조정되고, 실패하고, 다시 살아남는 과정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과정에는 영웅적인 비약보다, 아주 작고 느린 차이가 있다. 조금 더 견디는 몸, 조금 더 숨 쉬는 방식, 조금 더 번져가는 적응.
다윈의 업적은 “정답”을 외친 것이 아니라, 관찰이라는 태도를 남긴 데 있다.
섬의 새들, 바다의 흔들림, 오래된 화석과 흙의 냄새—그 작은 것들을 끝까지 바라보며, 세계가 얼마나 복잡하고 섬세하게 이어져 있는지 말해주었다.
우리는 서로를
모른 채로 살았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당신은
낮은 풀잎의 떨림에서도
우리의 혈연을 읽었습니다.
한 종의 밤이 지나
아침이 오면,
나는 더 이상
홀로 서 있지 않습니다.
그는 먼 바다로 나간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배가 아니라, 자기 안의 의심을 싣고 떠난 것처럼 보인다.
그 의심은 위험했다. 당시의 세계는,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쉽게 신의 자리에 올려놓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윈은 싸우는 대신 적어 내려갔다.
맞서기보다는, 조용히 축적했다.
한 번 본 것을 두 번 보고, 두 번 본 것을 다시 확인했다.
그의 글은 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급하지 않은 문장들은 자주 진실을 데려오니까.
사람들은 그가 “인간을 동물로 만들었다”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엔 그는 오히려 인간을 생명의 가족 안으로 돌려보냈다.
이름 모를 존재들과 함께 숨 쉬는 자리로.
그는 마지막까지, 세계를 쉽게 설명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세계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견딜 수 있게 했다.
그리고 그 견딤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낯선 것들조차, 아주 오래된 친척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