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3일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아직 해가 완전히 오르기 전,
세상은 잠에서 덜 깬 얼굴로 조용히 숨을 쉽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새벽빛은
크게 말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만히,
“오늘도 와 있다”고 알려줍니다.
어제의 피로가 아직 몸에 남아 있어도,
마음 한구석이 조금 흐려도,
하루는 우리를 밀어내지 않고
다시 품어 줍니다.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합니다.
어제와 이어져 있으나
분명히 새로운 하루.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쩌면
완벽한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다시 손을 뻗을 수 있는 시간을
매일 조금씩 허락받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1945년 2월 23일 — 이오지마 성조기 게양, 한 장의 사진이 된 ‘버티는 힘’
태평양 전쟁 중 이오지마 전투에서,
미군 병사들이 수리바치산 정상에 깃발을 세운 날입니다.
그 장면은 사진으로 기록되어
오랫동안 전쟁의 상징처럼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사진 속 ‘순간’만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순간 뒤에는
수많은 두려움과 소음과 상처,
그리고 끝내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버팀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종종
한 장면으로 기억되지만,
삶은 늘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의
떨리는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렇습니다.
남들이 보는 것은 결과일지 몰라도,
하늘만 아는 것은
오늘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당신의 마음입니다.
오래된 시장 골목 끝,
아주 작은 국밥집이 있습니다.
문을 열면 늘 같은 자리에서
할머니가 천천히 파를 썹니다.
손은 느려졌지만,
칼끝에는 아직도 생활의 리듬이 남아 있습니다.
그날 아침,
가게 문 앞에서 한 중년 남자가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들어올 듯 말 듯,
주머니를 몇 번이고 만지작거렸습니다.
할머니가 먼저 말합니다.
“추운데 왜 거기 서 있어. 들어와요.”
남자는 머뭇거리다 앉습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말합니다.
“사실… 오늘 면접이 있어요.
몇 달 만입니다.
괜히 떨려서… 밥이 안 넘어갈 것 같아서요.”
할머니는 대답 대신
국밥에 국물을 한 숟갈 더 얹어 줍니다.
“안 넘어가도 괜찮아.
뜨거운 거 조금만 먹고 가.
사람은 빈속이면 더 무서워져.”
남자는 몇 숟갈 뜨다 말고,
갑자기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누가 위로한 것도 아닌데,
누군가 자기 긴장을 알아봐 준 것만으로
마음이 풀어진 것입니다.
밥을 다 먹고 일어서는 남자에게
할머니가 말합니다.
“잘하고 와요.
떨리는 건, 포기 안 했다는 뜻이야.”
그는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그날 면접 결과가 어땠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입니다.
그는 그 아침,
도망치지 않고
자기 하루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어떤 날의 승리는
바로 거기서 시작됩니다.
오늘,
흔들리더라도 멈추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들이마십니다.
차가운 공기와 함께
내 안의 불안도.
잠시 머뭅니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도
내가 무너지지 않는 자리에.
내쉽니다.
조급함을.
남과 비교하느라 거칠어진 숨을.
나는 자주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스스로를 먼저 판정했습니다.
아직 멀었다고,
늦었다고,
이제는 어려울 거라고.
그러나 오늘,
새벽빛 앞에서 조용히 배웁니다.
삶은 단번에 증명하는 자리가 아니라
끝내 포기하지 않는 연습의 자리임을.
누군가의 박수보다
내 안의 작은 떨림을 귀하게 여기게 하소서.
그 떨림이
아직 살아 있는 마음의 증거임을 알게 하소서.
오늘 내가 붙들어야 할 것은
거대한 확신이 아니라
작은 지속임을 알게 하소서.
한 번 더 전화하는 용기,
한 번 더 연습하는 성실,
한 번 더 일어나는 조용한 결심.
가라앉게 하소서.
미리 겁먹는 마음을.
맑아지게 하소서.
내가 가야 할 한 걸음의 방향을.
내가 오늘 마주할 사람들에게
성과보다 온기를 먼저 건네게 하시고,
내가 오늘 만날 나 자신에게도
비난보다 격려를 먼저 건네게 하소서.
저녁이 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게 하소서.
“나는 오늘도 도망치지 않았다.”
비록 완벽하지 않았어도,
비록 크게 빛나지 않았어도,
내 삶의 자리에서
나는 분명
내 몫의 깃발을 붙들고 있었음을.
우리는 또 하루를 맞이했습니다.
그러니 오늘도,
무너지지 않으려 애쓴 시간까지 사랑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