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장. 진영의 소년

by 토사님

제2장 – 진영의 소년

2.png

1. 흙집

새벽이었다. 아직 어둠이 마당을 다 덮고 있었고, 굴뚝엔 연기가 오르지 않았다. 바람은 없었고, 집 안은 차가운 흙냄새로 가득했다.

집은 작았다. 진한 갈색 벽지와 갈라진 진흙 벽, 빗물에 얼룩진 천장이 얇은 숨을 쉬었다. 비가 많이 오면 천장 한쪽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여름이면 진드기가 벽지 안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누구도 그 집을 ‘더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 집 안에서 태어나, 자라며, 고요하게 늙어갔다.

노무현은 다섯 식구가 누운 방 안 구석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다. 담요 끝은 그의 발목에 닿지 않았고, 밤새 그곳은 차가웠다. 어머니는 가장 바깥쪽에 누워 있었고, 그 옆으로 아버지, 형, 그리고 동생이 줄지어 누워 있었다.

그는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장 너머의 어둠을, 그리고 어둠 너머의 무언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쥐가 천장을 지나가는 소리가 났다. 발톱이 마른 나무를 긁는 소리.

그는 그것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익숙했고, 자연스러웠다. 마치 자명종처럼, 쥐의 발소리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것 같았다.

문득, 몸 옆에서 이불이 들썩였다. 어머니가 일어난 것이었다.

그녀는 말없이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부엌은 방보다 더 어두웠고, 더 추웠다.

부뚜막의 냉기를 손으로 더듬고, 물을 붓고, 성냥을 켰다. 찰칵—불이 붙는 그 짧은 소리 속에, 하루가 불타기 시작했다.

노무현은 눈을 감지 않았다.

어머니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일상의 진동을 가만히 느끼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선 늘 말을 걸고 있었다.

‘잘 살아야 해. 너는 꼭, 이 마을을 벗어나야 해.’

그런 말들을.

이불 밖으로 팔을 내밀자, 공기가 닿은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그는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세상은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는 그 어둠이 언젠가는 물러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어둠이 물러날 때,

자신도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부엌 쪽에서 다시 불이 튀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조그마한 불빛 하나가 흙 집의 구석을 깨우고 있었다.

2. 땔감을 줍는 아이

산은 말이 없었다.

아직 새벽빛이 닿지 않은 산은 커다란 동물처럼 웅크리고 있었고, 그는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손에 작은 자루 하나. 허리에 끈으로 맨 포대자루는 빈 채로 출발했지만, 돌아올 때는 어깨가 기울 정도로 무겁게 채워졌다.

그 속엔 땔감이 있었다. 마른 나뭇가지, 꺾인 줄기, 쓰러진 잎들.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는 것들.

그러나 그 조각들이 하루하루를 데웠고, 밥을 지었고, 겨울을 건넜다.

발이 차가운 흙을 밟을 때마다, 몸이 조금씩 깨어났다.손끝은 저렸고, 콧속이 얼얼했다. 그러나 그는 걷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땔감을 줍는 일은 서두르지 않아야 했다.

서두르면 놓치고, 무리하면 부러졌다.

그는 땅을, 나무를, 냄새와 소리로 읽었다.

어느 나뭇가지는 썩어 있었고, 어느 풀밭은 멧돼지가 밟고 간 흔적이 있었다.

그는 그런 걸 잘 알아봤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지만, 매일 걷다 보니 알게 된 것들이었다.

어느 순간, 멈춰 섰다.

햇빛이 산등성이 너머로 스치고 있었다. 아직 어두운 숲속에서, 그 한 줄기 빛만이 유일한 온기였다.

그는 빛이 닿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무토막 하나를 발견했다.

적당한 크기, 적당한 무게,

그날 하루를 불태우기에 충분한 나무.

그는 그것을 들어 포대자루에 넣었다. 나무가 부딪히는 소리가 작게 울렸다.

그는 문득 고개를 들었다. 새 한 마리가 나뭇가지에서 날아올랐다.

날개짓 한 번에 바람이 흔들리고, 낙엽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조용하고, 아무도 보지 않지만 아름다운 움직임.

그 새는 어딘가로 날아갔고, 그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포대는 조금씩 무거워졌고, 몸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어릴 적부터 계속해온 일.

그런데도 가끔,

이 일이 내 인생 전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아주 가늘게, 아주 미세하게 떠오르곤 했다.

산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알았다.

지금 이 순간, 아무도 없는 이 산속에서

그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혼자서도 느끼고 있다는 것을.

3. 책을 훔치다

책은 얇고, 오래돼 있었다.

표지는 해졌고, 모서리는 말려 있었으며, 낙서와 얼룩이 군데군데 묻어 있었다. 제목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 속에는 그가 아직 보지 못한 세계가 들어 있었다.

그것은 읍내 이발소의 기다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아이들이 머리를 깎기 위해 기다리며 읽다 마는 책들. 만화책이 아니었다.

활자가 빽빽했고, 문장은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그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책을 들고 나온 건, 충동이었다.

아무도 그를 보지 않았고,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그 책을 조심스럽게 옷 안에 넣었다.

그 순간, 심장이 뛴다기보단, 속이 조용히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짧았지만 길었다.

그의 귀에는 누구의 발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뒤에서 누군가가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집에 도착해 문을 닫았을 때, 그는 한동안 숨을 내쉬지 못했다.

방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책을 꺼냈다.

종이 냄새. 오래된 먼지. 낯선 단어들.

그는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세계의 냄새 같다고 생각했다.

책은 처음부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고 읽었다. 모르는 단어는 모른 채로 넘기고, 이해되지 않는 문장은 다시 읽었다.

그리고 몇 줄이 지나자, 마음속 어딘가가 서서히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은, 내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넓구나.’

그 밤, 그는 책을 끌어안고 잠들었다.

다음 날,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났다.

이발소 주인이 마을 어귀까지 찾아왔다. 얼굴은 붉었고, 손에는 익숙한 그 책이 들려 있었다.

“네가 가져갔다며?”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그 어떤 꾸중보다 무서웠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책은, 조용히 손에서 미끄러져 이발소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날 밤, 어머니는 말이 없었다.

부엌에서 김치를 썰며, 쌀뜨물을 쏟으며, 그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조용히 마루에 앉아, 식어가는 발을 품고 있었다.

수치심이라는 감정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화가 나는 것도, 억울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이 작아진 느낌이었다.

작고, 좁고,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그날 밤 그는 또 다른 감정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책을 읽고 싶었을까.’

그는 자책하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켠이 이상하게 단단해지는 걸 느꼈다.

무언가를 향한 욕망이 부끄럽지 않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나중에야 알았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토사님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토사님의 브런치스토리입니다.

173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최근 30일간 14개의 멤버십 콘텐츠 발행
  • 총 728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
이전 01화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