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6장. 계속되는 낙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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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 계속되는 낙선

1. 계속 떨어졌지만, 멈추지 않은 사람

비는 하루 종일 내렸다. 운동화는 오전에 이미 젖었고, 그의 발등은 오래 전부터 무거운 진창을 디디는 감각에 무디어져 있었다. 유세차는 오전부터 고장 나 있었고, 남은 전단지도 젖어 찢겨 있었다. 오후 세 시, 길가 슈퍼 앞에서 잠시 비를 피하던 노무현은 허리를 펴고 다시 천천히 걸었다. 이 골목을 벌써 세 번째 도는 길이었다.

명함을 내밀면 사람들이 피했다. 시선은 벽이나 바닥으로 떨어졌고, 누군가는 아예 손을 흔들며 "됐어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웃으며 명함을 받는 척하다가 손끝으로 밀어내듯 되돌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그는 한 치의 변화 없는 얼굴로 다시 명함을 정리하고, 다음 사람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통일민주당 노무현입니다."

당선의 기억은 오래전 일이었다. 처음 국회에 들어갔을 때의 어색하고도 조심스러운 손끝,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마주한 냉랭한 침묵, 청문회장의 마이크 앞에서 터뜨린 첫 문장까지. 모든 장면은 지금의 이 고요한 거리와는 너무 멀리 있었다. 명성을 얻었던 순간도 있었고, 기자들이 그의 말을 받아 적던 시간도 있었지만, 지금 이곳에선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않았다.

사람들은 묻지 않았다. 왜 다시 나왔는지, 무엇을 하려는지, 얼마나 떨어졌는지를. 그들의 침묵은, 무관심은, 때론 비난보다 더 선명하게 마음을 짓눌렀다. 네 번의 낙선은 숫자보다 무거운 어떤 체념처럼 그의 어깨에 내려앉아 있었고, 그는 그것을 털어내려 하지 않았다. 그저 감당했다. 감정 없이, 그러나 단념하지 않고.

그날 저녁, 유세팀은 모두 해산되었다. 누군가는 돌아가고, 누군가는 서울로 향했다. 그는 혼자 남았다. 전단 몇 장과 젖은 운동화, 그리고 찢긴 명함들이 남은 유산이었다. 간이 의자에 앉아 그는 물을 한 컵 마셨고, 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짧게 적었다.

“나는 오늘도 말했습니다. 아무도 듣지 않아도. 내가 그 말을 믿기 때문에.”

어두워지는 골목에, 그는 다시 일어섰다. 가로등 아래, 다시 한 번 벽에 포스터를 붙였다. 물기가 스며든 벽돌 위에 종이가 금세 들뜨기 시작했다. 손바닥으로 꾹 눌렀다. 아주 오래.

그리고 천천히 돌아섰다. 그 눈빛에는 슬픔도, 기대도 없었다. 다만, 다음 날도 이 길을 다시 걸을 사람의 눈이었다.

2. 명함 한 장

비는 그쳤지만, 공기는 여전히 축축했다. 이른 아침이었고, 시장통은 아직 가게 셔터들이 절반쯤 내려간 채로 조용히 숨을 쉬고 있었다. 그는 검은 바람막이를 입고, 오른손에 얇게 남은 명함 몇 장을 쥐고 있었다. 포켓 속엔 하루를 시작하는 의지가 아니라, 전날 저녁부터 버티고 있는 문장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통일민주당 노무현입니다."

말은 잊히지 않았지만, 받아들여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첫 사람은 고개를 돌렸고, 두 번째는 못 들은 척 지나쳤다. 세 번째 사람은 그를 한 번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명함을 받지 않은 채 미소만 짓고 발걸음을 옮겼다. 네 번째는 잠깐 멈추었다. 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 손은 중간쯤에서 멈췄다.

“아, 죄송합니다. 전 여당 지지자라…”

그는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말했다. “네, 알겠습니다.”

바람이 불었고, 손끝에서 명함 한 장이 날아갔다. 그것은 땅바닥에 떨어지지도 않고, 어정쩡하게 골목 벽 사이 틈에 걸렸다. 그는 주우러 가지 않았다. 줍는다고 해서 다시 건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흙이 묻은 명함을 들이밀고 싶지도 않았다.

그날 오전, 그는 다섯 명의 손을 지나쳤고, 명함 열다섯 장을 접었다 폈다. 명함은 한 번 뻗을 때마다 무게를 더했다. 말은 공기 속에서 사라졌지만, 명함은 종이로 남았다. 바람이 멈추고, 벽에서 한 장이 천천히 떨어졌다. 그것이 땅바닥에 닿는 순간, 그는 눈을 감았다.

그날 밤, 숙소로 돌아와 그는 젖은 바지를 갈아입고, 침대 끝에 앉아 가만히 가방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명함 한 장. 그는 그것을 손바닥에 올려 두고 오래 바라보았다.

“이 종이 한 장에 내 말이 있다. 그 말은 아직 누군가에게 닿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그 명함을 책갈피처럼 노트 한 장에 끼워 넣었다. 닫히는 페이지는 느렸고, 소리는 없었지만, 그 안에 남은 마음은 분명히 있었다.

3. 권양숙의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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