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퇴임 그리고 봉하
1. 퇴임식의 마지막 문장
2008년 2월 25일.청와대 대정원, 차가운 바람.
하늘은 흐리지 않았고, 햇빛은 아주 약하게 내리쬐었다.
단상 위, 노무현은 검은 양복 차림으로 서 있었다. 비서관들도, 경호원들도, 가족도 그의 바로 옆엔 없었다.
연단 마이크엔 종이 두 장 분량의 퇴임사가 올려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들지 않았다.
눈을 들고, 사람들을 바라봤다.
“오늘로, 저는 대통령 직에서 물러납니다.”
침묵이 흘렀고, 청중의 손에는 준비된 박수가 머뭇거렸다.
“저는,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문장은 지난 오 년의 어느 말보다 가장 단정하고 가벼웠다. 그러나 그 가벼움 속에 말할 수 없는 무게가 담겨 있었다.
“제가 남긴 일이 얼마나 의미 있었는지는, 앞으로의 시간이 말해줄 것입니다.”
그는 고개를 낮게 숙였다.
“이제 저는, 한 사람으로 돌아갑니다. 시민의 한 사람으로, 농부의 한 사람으로.”
그 말에는 정치인이 쓰는 단어가 없었다. 국민, 국정, 국가…그는 그 단어들을 남기지 않고 떠나기로 했다.
잠시 후, 그는 마지막 문장을 말했다.
“제가 살아온 방식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 비록 그 방식이 어리석어 보일지라도.”
그 문장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박수를 쳤다.
그러나 그는 그 박수 속으로 걷지 않았다.
단상에서 내려올 때, 그는 마이크를 꺼둔 줄도 몰랐다. 스피커엔 아무 소리도 없었고, 하늘엔 아무 색도 없었다.
계단을 하나씩 밟으며 내려오는 그의 모습은 더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처럼 보였다.
단상 뒤, 그를 기다리던 경호원이 조용히 인사했다. “이제 가시죠, 대통령님.”
그는 멈춰 섰다. 작게 웃으며 말했다.
“그 말, 오늘까지만 듣겠습니다.”
그리고 걸음을 옮겼다. 말없이, 청와대를 등지고, 사람 쪽으로 걸어갔다.
2. 손 흔드는 사람들
서울역, 낮 12시 40분.기차 출발 10분 전. 플랫폼은 조용했고,누군가가 꽃다발을 들고 있었지만, 그 꽃은 내밀어지지 않았다.
노무현은 검정 코트를 입고 간이 계단을 밟아 기차에 올랐다.뒤따르는 권양숙 여사는 고개를 숙였고, 안쪽 좌석엔 보좌진 두 명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기차가 출발하자, 창밖의 사람들 사이로 조용한 손짓이 보였다.
누군가는 가만히 손을 올렸고, 누군가는 주먹을 가슴 위에 올렸다. 그리고 어떤 이는 고개만 끄덕였다.
기차는 남쪽으로 향했고, 창밖엔 겨울 나무들이 줄지어 흘렀다.
그는 조용히 창문을 바라봤다. 거기엔 아무 글자도, 아무 구호도 없었다.
그저 사람의 얼굴들이 한 장면씩 지나갔다.
대전역을 지날 무렵, 기차가 잠시 멈췄다. 그는 창밖에서 초등학생 몇 명을 보았다.
아이들은 고개를 들고 말없이 서 있었고, 어른 하나가 작은 종이 현수막을 들고 있었다.
흘러간 문장이었다. 희미한 붓글씨.
“고맙습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었다. 그 손은 이전보다 낮았고, 움직임은 아주 느렸다.
마치자신의 말이 그 속에 담겨 있는 것처럼.
기차가 밀양을 지나 봉하 쪽으로 방향을 틀었을 때,그는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아무 말없이, 손을 무릎 위에 얹고, 눈을 감았다.
누가 보지 않아도, 그 작별은 끝까지 진심이었다.
봉하에 도착하자, 논두렁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간판도 없었고, 노란색도 없었고, 음악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의 말없는 얼굴과 흙길 위에 선 그림자들.
그는 기차에서 내리며 손을 한 번 더 흔들었다. 그 손짓은 아무도 울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들었다.
그날 하루,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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