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13장. 끝나지 않은 수사

by 토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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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장 – 끝나지 않은 수사

1. 편지가 많아진 날

봄비가 지나간 다음 날이었다. 흙은 촉촉했고, 마당엔 물방울이 아직 덜 마른 채 남아 있었다.

노무현은 평소처럼 텃밭 고랑 사이를 돌고, 이랑 하나를 새로 갈아엎었다.

손톱에 흙이 끼었고, 작은 돌멩이를 모아 한 쪽에 쌓았다. 예상 보다 조용한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았다.

오전 9시. 작업실로 들어서자 책상 위에 편지 뭉치가 놓여 있었다.

한두 통이 아니었다. 어제 보다 많았고, 봉투는 익숙하지 않은 문체로 채워져 있었다.

봉투 위엔 굵은 글씨로 적힌 단어들이 있었다.

“진실을 말해주세요.”“실망하고 싶지 않습니다.”“이제는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는 봉투를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오전 11시.마을회관 옆에 기자들이 서 있었다.

카메라가 있었다. 마이크가 있었다. 질문은 없었지만, 시선은 거기에 있었다.

그는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먼저 보았다. 서로 눈을 피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점심이 지나자 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통령님…오늘 아침부터 뉴스에 이름이 계속 나옵니다. 박연차 씨 관련 수사, 대통령님 ‘소환 가능성’…그런 말이 오가고 있습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창밖을 바라봤다.

“이름이 나오면, 사람들이 먼저 해석하겠죠.”

“그리고 말은 그 해석보다 늦게 따라옵니다.”

그날 저녁,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편지 한 통을 꺼내 읽었다.

익명의 보낸이. 흐트러진 글씨로 쓰인 문장.

“대통령님,저 는 아직도 당신을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너무 아픕니다.”

그는 손으로 편지를 접었다.

그 접힌 종이 위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믿음이 아픔이 되는 순간, 말은 더 조용히 해야 한다.”

그날 밤, 편지는 스물 한 통이었다. 그중 열 통은 열어보지 않았다.

그는 책상에 앉아, 그 종이들 위에 눈길만 두고 있었다.

말하지 않는다는 것과 말할 수 없다는 것 사이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 밤이었다.

2. 다시 불린 이름

텔레비전은 꺼져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이미 들어와 있었다.

이웃 아주머니는 말끝을 흐렸고, 마을 아이들은 더 이상 앞마당을 지나가지 않았고, 우체국 직원은 편지를 놓고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노무현은 모든 것을 보았지만,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오전 8시 30분. 비서진 중 하나가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

“대통령님…오늘 아침 조간 헤드라인입니다.”

그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신문을 받지 않았고, 화면을 켜지도 않았다.

“괜찮습니다.”

“그 이름이 다시 나올 때가 된 거죠.”

서울의 모 포털 사이트 메인. 가장 위쪽 기사 제목.

“노무현 전 대통령, 박연차 수수 의혹 핵심으로 부상” “소환조사 불가피, 검찰 ‘성역 없다’”

그 이름은 가장 많은 클릭을 얻었고, 가장 빠른 속도로 공유되었고, 가장 다른 표정으로 소비되었다.

‘노무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저, 해석을 견디고 있었다.

오후. 한 기자가 마을 초입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전 대통령의 입장을 듣고 싶습니다. 지금 많은 국민이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비서관은 잠시 망설이다 그를 바라보았다.

노무현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말을 덧붙이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그 말은 너무 늦은 말이 아니라, 너무 앞서는 말일까 두려운 말이었다.

저녁 무렵,그 는 논둑길을 걸었다. 작은 돌 위를 지나고, 물 빠진 고랑 옆을 따라 걸었다.

어느 마을 청년이 조심스레 인사했다. “어르신…”

그 말은 조심스러웠지만, 정확했다.

그 이름이 사라진 대신 새로운 말이 그를 불러주고 있었다.

그날 밤, 작업실로 돌아온 그는 노트를 펴고 한 문장을 썼다.

“다시 불린 이름은 내가 꺼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의 의미는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그는 펜을 놓고, 불을 끄고,침대에 누웠다.

창밖에 바람이 불었고, 그 바람 속에서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이 다른 뜻으로 불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날 밤, 그 이름은한 번도 침묵하지 않았다.

3. 검은 차가 오는 날

오전 10시 20분. 봉하마을 입구에서 엔진 소리가 들렸다.

처음 보는 번호판, 먼지 한 점 없는 검은 세단, 그리고 차에서 내리는 두 명의 남자.

검은 정장, 회색 넥타이, 한 손엔 봉투, 다른 손엔 녹음장치.

마을 아이들이 멀찍이서 그것을 보았다. “누구지?”“경찰 아냐?”“아니야… 서울에서 왔다잖아.”

그날, 노무현은 안채 마당에서 고추 말리는 채반을 들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먼지보다 먼저 시선이 도착했다.

비서관이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수사관들입니다. 공식 통지서 전달하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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