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직관·예술로 엮은 인류-견류 간 대화의 대전. 12장
눈빛이 말을 건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개는 이미 알고 있다.
“지금 괜찮아.”
“조금 슬퍼.”
“기다려줘.”
그 눈과 눈이 맞닿는 짧은 순간,
우리의 뇌는 전혀 다른 언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그것은 빛의 언어, 리듬의 언어, 그리고 신뢰의 언어다.
응시는 단순한 시각적 사건이 아니다.
그건, 두 개의 뇌가 서로를 조율하기 시작하는 신호다.
사람이 개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시상하부가 작동하며 옥시토신, 이른바 ‘유대 호르몬’이 분비된다.
그와 동시에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며
“상대의 감정 상태를 예측하는 회로”가 켜진다.
이때 개의 뇌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들의 미러뉴런이 우리의 표정을 따라 반응하고,
작은 근육의 떨림 하나, 눈가의 긴장 하나까지 해석한다.
이것은 **두 개의 종(種)**이
서로의 정서를 실시간으로 읽는,
거의 텔레파시적 수준의 생리적 대화다.
그래서 그 짧은 응시 속에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
당신의 눈동자에 담긴 미묘한 슬픔이,
개의 뇌에서는 **‘돌봐야 할 신호’**로 번역된다.
그리하여 개는 다가오고, 당신은 미소 짓는다.
그리고 그 미소가 다시 개의 심박을 낮춘다.
눈빛 하나가 두 생명의 리듬을 맞추는 지휘자가 되는 순간이다.
수천 년 전, 인간이 불을 피워 밤을 지키던 시절,
불빛 가장자리에는 늑대가 있었다.
그중 일부는 두려움 대신 호기심을 가졌다.
그들은 인간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오래 지속된 개체만이 살아남았다.
그때부터 눈빛은 공포의 경계선이 아니라 신뢰의 문이 되었다.
진화는 냉정했다.
‘응시를 해석할 수 있는 늑대’만이 개가 될 수 있었다.
인간의 얼굴 근육 변화, 눈동자의 움직임,
그 미세한 신호를 감지하는 능력이 곧 생존이었다.
그리고 수만 년이 흐른 지금,
그 유전자는 여전히 그들의 눈 안에서 반짝인다.
우리가 개를 볼 때 느끼는 ‘이상한 따뜻함’ —
그건 DNA 깊은 곳에서 기억하는,
“너와 나는 함께 살아남았다”는 생존의 시선이다.
한 번의 응시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작지만 깊다.
사람의 심박은 약간 느려지고,
교감신경이 진정되며,
호흡이 자연스럽게 길어진다.
개의 몸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꼬리의 흔들림이 일정해지고,
근육의 미세한 긴장이 풀리며,
심박의 진동수가 낮아진다.
그 순간, 둘의 생리 리듬이 서로를 향해 미세하게 조정된다.
이것이 ‘신경적 공조(neural attunement)’,
즉 ‘마음의 파동이 동조되는 상태’다.
언어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지만,
이미 신뢰는 피처럼 흐르고 있다.
결국 시선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를 본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를 본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