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될 것인가, 진화할 것인가”
《AI 시대, 의사는 정말 AI한테 밀릴까요?》
– 혹은, "나는 아직 청진기를 들고 있다"
어느 날 아침, AI가 뉴스를 읽어줬다.
“오늘은 2030년 3월 14일, 당신의 대체 확률은 78.5%입니다. 조심하세요. 그리고 커피는 진하게 마시시길 추천합니다. 오늘도 무사히.”
나는 커피는 진하게 탔지만, 마음은 씁쓸하게 타들어갔다.
78.5%라니. 이건 거의 ‘대체 확률’이 아니라 ‘퇴출 예고’ 수준 아닌가?
의사라는 직업은 원래 철밥통이라 들었다.
‘철’이라기보다는 거의 티타늄 밥통쯤 되는 줄 알았는데, 요즘은 AI에게 국자 뺏길까봐 긴장하는 중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이미 심전도는 AI가 읽고, 영상은 AI가 판독하고,
심지어 환자의 심정까지 챗GPT가 먼저 알아주는 시대니까.
그럼 의사는 뭘 하지?
“제가 AI가 말씀드린 내용을 좀 더 인간적으로 요약해드릴게요.”
…라는 식의 ‘AI 통역사’가 되어가는 건 아닐까?
의사란 단순히 정보를 분석하는 직업이 아니다.
눈빛 한 줄기, 침묵 속의 위로,
어디가 아픈지 설명조차 못하는 환자에게서 위험을 직감하는 본능.
AI는 그런 걸 아직 배우지 못했다.
(배우려는 시도는 하고 있지만, 배우면 그게 더 무서운 거긴 하다.)
이 책은 단지
“AI가 의사를 대체할까?”라는 질문에만 대답하려는 게 아니다.
대신, 이렇게 묻고 싶다:
“AI 시대에도 의사라는 존재는 왜 여전히 중요한가?
그리고 어떤 의사가 살아남고, 어떤 의사는 AI보다 더 빛날 수 있을까?”
이 책은 AI 시대에 의사의 영향력, 중요성, 수입이
어떻게 흔들리고, 어떻게 재정의되고, 또 어떻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약간 웃기게, 그러나 항상 정확하게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러니, 혹시 이 책을 들고 있는 당신이
의사라면, 혹은 의사가 되려는 학생이라면,
혹은 ‘의사 말고 AI가 더 믿음직하다’고 생각하는 환자라면…
잠깐만 내려놓지 말고, 한 장만 더 넘겨보시라.
AI도 아직은 책을 넘기진 못하니까.
의사와 AI, 그리고 당신.
이 이야기는 그 셋 모두에게 중요하다.
아침 5시 30분.
병원의 불빛은 여전히 깨어 있었다.
이제 막 2년 차 전공의가 된 나는,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떴다.
그리고 첫 번째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손목에 찬 AI 어시스턴트를 켰다.
밤새 환자의 심박수와 혈압, 산소포화도를 실시간 분석해 이상 징후가 있으면 미리 경고해주는 장치.
AI는 조용히 보고했다.
“302호 환자, 새벽 3시 14분에 일시적 부정맥 발생. 지금은 안정적입니다.”
10년 전이라면 내가 이 사실을 알아채기 위해
직접 새벽 회진을 돌거나 모니터 앞에서 몇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하지만 오늘, 그 시간에 나는 옆 병동에서 갑자기 의식이 떨어진 환자를 살렸다.
AI 덕분이었다.
아침 회진은 더 짧고 정확해졌다.
AI가 환자의 영상, 검사 결과, 과거 진료 기록을 정리해 보여주면
나는 화면을 훑으며, 그 옆에 앉은 환자의 눈빛을 본다.
그리고 꼭 묻는다.
“어제 밤은 좀 주무셨어요?”
데이터에는 없는, 그러나 치료에는 반드시 필요한 질문이다.
점심 무렵, 병리과에서 연락이 왔다.
AI 판독 결과가 애매한 조직검사가 하나 있다고 했다.
나는 현미경을 들여다봤다.
AI는 97% 확률로 양성이라고 했지만,
세포의 가장자리에 미묘하게 번진 음영이 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스승이 말하던 한 마디가 떠올랐다.
“AI가 놓치는 건 데이터가 아니라, 맥락이야.”
다시 검사했고, 예측과 달리 악성이었다.
환자는 조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퇴근길, 나는 병원 옆 카페에 들렀다.
의무기록은 자동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처방 오류 검증도 AI가 끝내주었다.
몸은 여전히 피곤했지만, 마음속에는 묵직한 보람이 자리했다.
AI가 나를 대체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를 더 ‘의사답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여전히 환자의 손을 잡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지막 결정은 내 목소리로 내린다.
10년이 지나도, 의사의 하루는 그렇게 끝난다.
데이터와 인간, 두 심장이 함께 뛰는 병원에서.
"AI가 의사에게 와이파이를 묻는 날"
“기계는 게으른 인간의 위대한 변명”
인류가 처음 바퀴를 발명했을 때, 아마 동네 짐꾼 조합은 회의했을 것이다.
“이거 우리 밥줄 끊기겠는데?”
그러나 바퀴는 단순히 짐꾼을 줄인 게 아니라, 여행업, 상업, 심지어 ‘관광지 기념품 장사’까지 만들어냈다.
인쇄술이 나오자 필사본을 쓰던 수도사들은 한숨을 쉬었다.
“이제 누가 내 글씨를 감상하겠나…”
하지만 그 덕분에 책값은 폭락했고, 지식은 길거리에 풀렸고, 결국 ‘책에 밑줄 치고 커피 마시는 인간’이라는 새로운 직종(?)이 탄생했다.
산업혁명 때 직물공은 기계 앞에서 분노했다.
그리고 결국 ‘기계 부수기 운동(러다이트)’이 나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기계 덕분에 섬유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누군가는 ‘옷에 단추를 다는’ 전문직이 되었다.
기술은 이렇게 하나의 일을 빼앗으면서도, 전혀 새로운 일을 몰래 만들어내는 습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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