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심리·대응·회복, 우리에게 필요한 한 권.25장
사기꾼은 기술을 믿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이다.
시니어를 노리는 사기는 대부분 화려하지 않다.
앱도, 링크도, 복잡한 장치도 없다.
그저 전화 한 통, 익숙한 존칭, 그리고 약간의 떨리는 숨소리면 충분하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시니어는 세상을 오래 살아오며 사람을 믿는 법을 배운 세대이기 때문이다.
“엄마, 나 사고 났어.”
“아버지, 지금 통화 길게 못 해요.”
이 문장은 정보가 아니라 정서다.
사기꾼은 사실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부모의 뇌가 생각을 시작하기 전에
가슴이 먼저 반응하도록 설계한다.
시니어에게 자녀는
독립한 성인이기 이전에,
여전히 지켜야 할 존재다.
그래서 이 사기에는 항상 세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
둘째,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고 한다.
셋째, 부모의 판단을 시험하지 않고, 감정을 먼저 끌어낸다.
이 구조 앞에서 많은 시니어는 속아서가 아니라,
부모로서 정상적으로 반응했을 뿐이다.
“병원입니다.”
“보험사 조사팀입니다.”
이 한 문장은 시니어에게
‘확인해야 할 말’이 아니라
‘따라야 할 말’로 들린다.
왜냐하면 시니어 세대는
의사·보험·공무원 같은 전문 직역을 신뢰하도록 교육받은 세대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의료·보험 사기는 항상
전문 용어를 섞고
빠른 결정을 요구하며
“지금 안 하면 불이익”을 강조한다.
이 순간 시니어의 머릿속에서는
의심이 아니라 책임감이 작동한다.
“괜히 내가 늦게 처리해서
아이나 가족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떡하지…”
이 생각이 드는 순간,
사기꾼은 이미 절반을 성공한 것이다.
시니어가 취약한 이유는
디지털을 몰라서가 아니다.
판단력이 떨어져서도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이것이다.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
자녀를 바쁘게 만들고 싶지 않고
괜히 걱정시키고 싶지 않고
‘이 나이에 이런 걸로’ 싶어서 혼자 해결하려 한다.
이 침묵의 책임감이
사기꾼에게는 완벽한 은신처가 된다.
사기꾼은 알고 있다.
시니어가 의심해도
바로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가능성을.
그래서 그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라는 문장을
가장 먼저 꺼낸다.
한국 사회는
시니어에게 유독 불리한 환경을 만들었다.
전화 중심 소통 문화
복잡한 의료·보험 제도
빠른 처리와 즉시 결정을 미덕으로 여기는 분위기
가족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는 암묵적 압박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시니어를 **‘혼자 결정하게 만드는 구조’**를 만든다.
그리고 사기는
항상 혼자 있는 판단을 노린다.
시니어는 약해서 속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사기는 그 미덕을
가장 비열한 방식으로 이용할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은 말한다.
시니어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주의가 아니라,
혼자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등대 문구
“급한 전화일수록, 가족은 더 천천히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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