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길
― 인류 최초의 목동과 사냥꾼들이 동물과 교감하던 순간들 ―
아주 먼 옛날, 인류가 아직 문자를 가지지 못했던 시대. 사람은 불 앞에 앉아, 눈빛으로 하늘을 읽고, 발자국으로 대지를 해석하며 살았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던 동물들은 단순한 사냥감이자 도구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생존의 동반자, 또 다른 영혼이었지요.
목동은 양떼를 몰며 알았습니다. 천천히 흘러나오는 휘파람 소리, 일정한 발걸음의 리듬이 무리를 안심시킨다는 것을. 사냥꾼은 깨달았습니다. 긴장된 몸을 풀고 숨을 가다듬을 때, 사냥개 또한 조용히 그의 어깨를 따라 호흡한다는 것을.
이 순간들은 원시적이지만 신비한 통로였습니다. 사람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의 언어’**로 동물과 교감했고, 동물은 본능으로 그 주파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는 과학 이전의 최면, 학문 이전의 교감이었으며, 두 종이 서로를 길들이기 전에 이미 마음으로 다가가던 장면이었습니다.
고대의 속삭임은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불빛 옆에서 가만히 노래를 흥얼거리던 인간의 목소리, 그 옆에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던 동물의 모습은, 오늘날까지도 우리의 무의식 속에 **“함께 있다”**는 원형적 경험으로 남아 있습니다.
― 주술적 의식 속에서 드러난 ‘트랜스’의 원형 ―
고대 마을의 심장에는 불이 타올랐습니다. 북소리가 둥둥 울리면, 사람들의 몸은 저절로 흔들렸고, 그 진동 속에서 샤먼은 동물과 인간 사이의 다리를 놓았습니다.
샤먼은 동물을 단순한 사냥감이나 가축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영혼을 지닌 존재,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메신저라 여겼지요. 그래서 그는 동물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긴 호흡, 흔들림 없는 시선, 그리고 천천히 내려앉는 손짓. 그 순간, 동물은 마치 의식을 이해한 듯 조용히 몸을 낮추었고, 인간 또한 깊은 몰입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때 드러나는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트랜스(Trans), 곧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문턱의 상태’. 북소리의 리듬은 인간을 변화시키고, 그 변화된 인간의 기운은 동물에게도 전해졌습니다. 이렇게 사람과 동물은 함께 진정되고, 함께 깨어나는 순환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샤먼의 눈빛은 강압이 아닌 **“내가 너를 보고 있다”**는 단순한 선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이야말로 가장 깊은 암시였습니다. 동물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진심 어린 시선과 몸짓의 일관성을 이해합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주술은 과학이 되지 못했으나, 최면적 현상의 원형을 이미 드러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대 부족들이 사용한 부드러운 손길과 노래의 힘 ―
옛날, 인류는 가축을 단순히 음식과 노동의 도구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소와 말, 염소와 양은 신에게 바치는 제물일 뿐 아니라, 공동체와 생존을 지탱하는 성스러운 동반자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다루는 방식은 강압이 아니라, 마치 의식을 치르듯 엄숙하고도 부드러웠습니다.
가축을 달래는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했습니다.
사람들은 손바닥을 펴서 천천히 동물의 목덜미와 등을 쓸어내렸습니다. 반복되는 리듬은 긴장된 근육을 풀어주었고, 동물의 호흡은 점점 느려졌습니다. 동시에 여성들은 자장가 같은 선율을 흥얼거렸습니다. 언어를 초월한 리듬과 울림은 동물의 귀를 파고들어 안정 신호가 되었지요.
그 순간, 동물은 눈꺼풀을 천천히 내리고, 무릎을 꿇듯 앉으며, 고요히 사람 곁에 머물렀습니다.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흐르는 것은 강요가 아닌 신뢰, 두려움이 아닌 평온의 리듬이었습니다.
고대의 부족은 이것을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신성한 의례로 여겼습니다. 동물이 평화로워야 인간도 평화로워진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곧 과학적으로 말하면 **‘환경적 최면’**이자, 감각과 리듬을 통해 무의식의 문을 여는 방식이었습니다.
― 성스러운 동물에게 전해진 인간의 기도와 최면적 시선 ―
고대 이집트인들에게 고양이는 단순한 반려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신의 사자를 모시듯 고양이를 대했고, 고양이가 지닌 고요한 눈빛 속에서 신비한 세계를 보았습니다. 바스테트 여신은 고양이의 형상으로 숭배되었으며, 그녀의 부드러운 힘은 가정과 생명을 지켜주는 수호의 기운으로 여겨졌습니다.
고양이와 마주한 순간, 이집트인은 종종 기도를 읊조리듯 속삭였습니다. 낮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말하는 최면 암시와 닮아 있었습니다. 인간의 목소리는 부드러운 진동으로 고양이의 귀를 자극했고, 그 진동은 곧 보호자의 감정을 전이시키는 안정 신호가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양이의 황금빛 눈동자를 바라보는 경험은 인간에게도 트랜스적 상태를 불러왔습니다. 고요히 흔들리는 꼬리, 느리게 깜박이는 눈빛, 깊이 잠긴 듯한 호흡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의식의 강물로 이끌었습니다. 인간과 고양이는 서로의 시선 속에서 의식과 무의식이 교차하는 춤을 추고 있었던 셈이지요.
이집트의 사제들은 이를 단순한 애정의 표현이 아닌, 영혼을 잇는 의례라 여겼습니다. 고양이의 존재는 신성 그 자체였고, 그 앞에서 인간은 자연스럽게 겸허해졌습니다. 과학적 언어로 다시 말하면, 이는 고양이의 행동과 인간의 의례적 암시가 함께 만들어낸 상호 최면 현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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