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아이들을 씻기고, 아픈 아이의 투정을 받아내고, 겨우 잠든 숨소리를 확인하고 나서야 온전히 '나'로 돌아오는 시간.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낮 동안 애써 외면했던 마음의 파편들이 물결 위에 하나둘 떠오른다.
그냥 드라마 요약본이나 보며 뇌를 잠재우고 싶은 유혹이 간절하지만, 굳이 이 피곤한 성찰의 시간을 갖는 이유는 하나다.
생각 없이 잠드는 밤이 반복될수록, 내가 누구인지 잊어버릴 것 같은 불안감 때문이다. 오늘 내가 느낀 세 가지 주제에 대해 기록해 본다.
1. 전문성의 실체
오늘도 생소한 개념을 하나 익혔다. 국제협약에 따른 환경 제도 평가와 관련한 내용이다.
일로서 찾아보게 되었지만,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내 지식을 쌓는다고 생각하니 평소와 달리 즐겁게 파고들게 된다.
30대가 저물어가는 나이, 석사 학위와 몇 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고 13년간 이 업계에서 커리어를 쌓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이 기관의 부속품 중 하나일 뿐이다. 그것도 없어져도 전혀 문제 없는 소모품이랄까?
이 분야에서 스스로를 훌륭한 마케팅 자산으로 활용해서 자기 이름을 내걸고 종횡무진 활동하는 그들을 보며,
나는 과연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잡는다.
하지만 이런 고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본다면 역설적으로 내가 '성장'하고 싶어 한다는 증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
지금 쌓는 이 건조한 실무 지식과 데이터는 훗날 내 이름 석 자를 건 '사무실'을 세울 때 단단한 벽돌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나는 정체된 것이 아니라, 독립을 위한 기초 공사 중이다.
2. 혐오하는 모습이 내게 보일 때
직장에서 누군가의 험담을 하거나, 상사의 태도를 비난하는 동료들의 대화에 섞여 들 때가 있다.
그러고 나서 찾아오는 지독한 현타.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소란스러운 사람'의 모습이 내게서 느껴질 때, 마음은 한없이 무거워진다.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내 할 일만 하자"고 다짐하면서도 왜 감정의 찌꺼기는 남을까.
아마도 조직이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내 평온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몸부림일 것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침묵하고, 그 에너지를 나 자신을 돌보는 데 쓰기로 다짐한다.
완벽한 성인이 될 순 없어도, 부끄러움을 아는 어른으로 남고 싶다.
3. 결국, 유일한 안식처는 내 가족
업무 성과니, 커리어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을 때가 있다.
아이들이 아파서 엄마를 찾고, 작은 손으로 내 옷자락을 쥐고 잠들 때 깨닫는다.
세상이 나를 계약직으로 보든, 전문가라 부르든, 이 아이들의 지금 이 순간 세상의 전부는 ‘엄마'라는 사실을.
아이들이 부모 손길을 귀찮아하는 시기가 오기 전까지는, 나에게 1순위는 언제나 아이들이고 싶고, 그래야만 한다.
밖에서 아무리 치열하게 부딪히고 깎여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것.
내가 왜 이토록 독하게 버티고 공부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결국 이 작고 따뜻한 집 안에 있었다.
가족은 내가 흔들릴 때마다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게 붙잡아주는 가장 무겁고도 소중한 존재이다.
욕조의 물이 식어갈 때쯤, 비로소 마음의 소란도 가라앉는다.
부정적인 감정들에 매몰되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것.
이런 습관이 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든다고 믿는다.
내일도 열심히 업무를 통해 내 전문지식을 쌓고,
응시해둔 자격증 시험준비도 하며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시간도 남겨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