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가 열흘 전에 돌아가셨다. 두 달 반 전 새벽에 가슴이 몹시 쓰리고 아프다고 하셔서 대학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는데, 담낭암과 간 전이가 의심된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다.
담도 폐쇄로 긴급하게 담관에 스탠트를 박는 시술을 받고 1주일 입원 후 퇴원했는데, 엄마도 나도 의사의 소견을 믿을 수 없었다.
최근 들어 소화가 잘 안 되신 건 맞지만 연세가 90이 가까우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그 연세에 식사도 잘하시고 평생 다이어트를 고민할 정도로 비만(154센티 키에 70킬로그램)이어서 무슨 암일까 했고 이제와 생각하면 오진이기를 바랐던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 반을 집에서 계시다가 26년 1월 말 한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셔서 고관절 골절 인가 하고 정형외과에 갔는데 이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정형외과에서 갑자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어 119 구급차를 불러 타고 다시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40도가 넘는 고열로 몸을 떨었던 것이고 암이 자라서 담관이 다시 막혔고 염증 수치가 올라갔다는 진단을 받았다.
대학병원에 1주일 입원해서 항생제 치료를 받고 더 이상 해줄 게 없다며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로 옮기라는 권유를 받았다. 우왕좌왕 고민 끝에 호스피스에 입원해서 18일, 짧게 투병하시다 엄마가 내 곁을 떠나셨다.
장례를 치르고 엄마가 물리적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없어서 핸드폰에 자동 저장된 엄마 음성을 계속 들었다.
엄마 집에 주인 잃은 물건들을 망연하게 바라본다. 시간이 지나면 이 집도 물건도 사라질 것이고 작은 단지에 담긴 엄마의 유해와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만 남을 것이다.
끝없이 슬프고 허무하다.
그 대차고 유아독존의 자세로 인생을 살았던 정순옥 여사가, 천 년을 살 것처럼 살았던 엄마가 90도 못 채우고 가시다니...
나는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자식으로서 최선을 다했지만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해 한 없이 무력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2년 반 전 치매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신 아버지도 짧게 고통스러워하시고 평온하게 가시는 것을 보았고, 엄마도 호스피스에서 고통 없이 지내시다 마지막 날 처음으로 " 아이고 꽁무니가 아파 죽겠다"라고 하셔서 모르핀 주사를 3시간 간격으로 5번 맞고 가셔서 그나마 큰 위안이 된다.
119 구조대, 호스피스 병동의 근무자들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 감사하다. 사회의 보호망을 따뜻하게 느꼈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