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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촉발할 승자독식 사회

AI를 활용한 생산성 향상에 가려진 '진짜' AI 시대란

by Simply Explained

지난 20년간 우리의 정보 탐색 행태는 급격히 변화해왔다. 2000년대 초 오프라인 매장을 직접 돌아다니며 상품을 비교하던 시절에서, 2010년대 온라인 쇼핑몰을 일일이 검색하며 최적의 선택을 찾던 시대를 거쳐, 이제는 AI가 요약해준 정보를 빠르게 확인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편의성 증대를 넘어 기존 경제 구조를 뿌리째 흔드는 파괴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과거 탐색 패턴의 변화가 어떻게 경제 생태계를 재편했는지 살펴보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탐색 패턴의 3단계 진화

첫 번째 단계는 '오프라인 탐색의 시대'였다. 소비자들은 발품을 팔아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보며 구매 결정을 내렸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신중하고 만족도 높은 구매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단계는 '온라인 능동 탐색의 시대'다. 아마존, 쿠팡 등의 플랫폼에서 소비자들이 직접 검색어를 입력하고 수많은 상품 정보를 비교 검토하며 구매했다. 편리함은 늘었지만 여전히 상당한 시간과 인지적 노력이 필요했다.

이제 우리는 세 번째 단계인 'AI 큐레이션의 시대'로 진입하고 있다. 실제로 마이크로소프트의 조사에 따르면 생성형 AI 사용자의 74%가 정보 검색 시간이 단축되었다고 응답했다. ChatGPT 같은 생성형 AI에게 "30만원 이하 노트북 추천해줘"라고 물으면 즉시 맞춤형 답변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은밀해지는 광고, 사라지는 투명성

이러한 변화는 광고 산업에 근본적인 위기를 가져오고 있다. 기존의 배너 광고나 검색 광고는 명확히 '광고'라고 표시되어 있어 소비자들이 구분할 수 있었다. 하지만 AI가 제공하는 추천 과정에서는 이런 구분이 훨씬 더 어려워지고 있다.

오픈AI는 2024년 ChatGPT에 광고 도입을 발표했고, 구글도 최근 AI 모드를 통해 검색 광고와 연계하는 방안을 본격화하고 있다. 소비자가 "운동화 추천해줘"라고 물었을 때, AI가 추천하는 브랜드 순서에 광고비가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소비자가 이것이 객관적인 추천인지 유료 광고인지 구분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유럽연합이 AI법을 통해 투명성을 높이려 하지만, AI 알고리즘의 복잡성 때문에 완전한 투명성 확보는 어렵다. 결국 소비자들은 광고와 정보가 혼재된 내용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편되는 기존 수익 모델들

기존 디지털 경제의 구조가 재편되고 있다. 구글의 2023년 4분기 검색 광고 매출 증가율은 7.7%로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둔화됐다. AI 검색이 본격화되면 포털 사이트나 블로그를 거치지 않고 AI에서 바로 답을 얻기 때문에, 기존 광고 지면의 가치는 급격히 하락할 수밖에 없다.

더 우려되는 것은 인플루언서 경제의 위축이다. 멀티모달 AI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가상 인플루언서들이 실제 인간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해지고 있다. 이미 해외에서는 AI로 생성된 가상 모델들이 패션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들은 24시간 촬영이 가능하고 스캔들 위험도 없어 기업들에게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고 있다. 여기에 소비자들이 AI에게 직접 추천을 받는 경향이 늘어나면서, 기존 인플루언서의 중개 역할 자체가 축소될 수 있다. 결국 실제 인플루언서들은 가상 경쟁자들과 AI 추천 시스템이라는 이중 위협에 직면하게 된 셈이다.

이는 1950년대 TV 등장 이후 라디오가 겪은 몰락과 유사한 패턴이다. 라디오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전체 광고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4%로 급락했듯이, 기존 디지털 광고 생태계도 비슷한 운명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


승자독식 구조의 심화

이런 정보 권력의 집중은 곧 경제적 가치 창출의 집중으로 이어진다. AI가 대부분의 정보 처리와 추천을 담당하게 되면, 기존에 이런 역할을 하던 중간 계층 일자리들이 불필요해진다. 마케터, 리서처, 컨설턴트, 중개업자 등의 역할이 AI로 대체되면서 AI 시대의 가장 큰 문제인 승자독식 구조가 극대화된다는 점이 드러난다.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 교수는 AI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지만, 그 효과가 불평등하게 분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생산성 증가로 인해 경제 전체의 '파이'는 커질 수 있지만,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고르게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AI와 같은 첨단 기술이 소수의 기업이나 개인에게 더 큰 이익을 집중시키고, 나머지 대다수는 AI에 대체되는 상황에 직면할 것이다.

특히 AI 발전 속도가 과거 기술 변화보다 훨씬 빨라서, 사람들이 새로운 기술에 적응할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 자동화로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를 서비스업이 흡수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화이트칼라 업무까지 대거 대체되면서 대안적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상황이다.


정보 권력의 집중화

AI 추천이 일반화되면서 정보 전달 과정에서 새로운 권력 구조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다양한 매체와 인플루언서들이 정보 전달 역할을 분산해서 담당했다면, 이제는 소수의 AI 플랫폼이 이 역할을 독점하게 된다.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등 AI 기술을 보유한 빅테크 기업들이 사실상 정보 게이트키퍼 역할을 하게 되면서, 이들이 무엇을 어떻게 추천하느냐에 따라 시장의 승패가 결정될 수 있다.


다가올 경제적 재편의 현실

세계경제포럼(WEF)는 낙관적으로 "AI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현실은 다를 가능성이 높다. 새로 생기는 일자리는 대부분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소수의 직종이거나, 반대로 극도로 저임금인 단순 서비스직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결국 중간 계층의 일자리가 대거 사라지면서 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 AI 컨설턴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같은 소수의 전문직은 고수익을 올리겠지만, 대다수는 불안정한 긱 이코노미 일자리나 저임금 서비스직으로 내몰릴 것이다.


준비해야 할 혹독한 미래

AI가 가져다주는 편리함과 효율성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 혜택은 극소수에게만 돌아갈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AI는 일자리를 빼앗고 경제적 지위를 위협하는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중요한 것은 이런 변화를 직시하고 현실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AI와의 협력을 통한 상생보다는, AI에 대체되지 않을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을 찾거나, 아니면 AI 기술 자체를 소유하고 통제할 수 있는 위치로 올라서는 것이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기술 발전이 모든 인간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낙관은 이제 버려야 할 때다. 앞으로 펼쳐질 AI 시대는 소수의 승자와 다수의 패자로 나뉠 가능성이 높으며, 이런 현실을 인정하고 치열하게 준비하는 사람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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