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선 2,900만 원, 한국선 5천만 원…가격 차별 논란에 브랜드 신뢰
기아의 전기 SUV EV5가 9월 국내 계약을 시작하자마자 거센 논란에 휩싸였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중국에선 반값인데 왜 한국만 비싸냐”는 글이 잇따르며 불신 여론이 빠르게 퍼졌다. 단순 가격 차이를 넘어, 브랜드에 대한 감정적 반발까지 드러나는 상황이다.
중국형 EV5는 2,900만 원대부터 시작한다. LFP 배터리에 최소 사양 중심으로 구성돼 가성비를 내세웠다. 반면 한국형은 NCM 배터리, 9개의 에어백, V2L 기능, 주행 보조 시스템 등 안전과 편의성을 크게 강화했다. 사실상 ‘이름만 같은 다른 차’라는 평가가 나올 만하다.
국내 소비자들은 그러나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보조금을 더하면 실구매가가 4천만 원 초반대로 내려가지만, 중국 대비 두 배라는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보조금으로 가려진 비싼 출고가”라는 지적이 이어지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EV5에는 ccNC 인포테인먼트가 탑재되지만, 불과 1년 반 뒤 현대차그룹의 차세대 OS가 적용될 예정이다. 출고 시점부터 구형 시스템을 쓰게 된다는 불안감이 생기고, 이는 중고차 시장에서 감가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차를 받자마자 중고 가치가 떨어진다”는 위기감이 현실적인 문제로 다가온다.
이러한 상황은 브랜드 신뢰에도 적신호를 켠다. 같은 차명을 붙였지만 국가별로 전혀 다른 구성을 내놓는 전략은 소비자에게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강화한다. 특히 한국에서만 유독 가격이 높다는 점은 ‘자국 시장 역차별’이라는 불만으로 번지고 있다.
산업적 파장도 예고된다. EV5에 중국산 NCM 배터리가 탑재되면서 국내 배터리 3사의 내수 공급 비중 축소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는 단순히 한 모델에 그치지 않고, 향후 다른 전기차에도 같은 전략이 확산될 경우 산업 생태계 전반에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
궁극적으로 이번 논란은 단순한 가격 다툼이 아니다. 가격 책정의 합리성,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전략, 글로벌 브랜드의 균형 감각까지 모두 얽힌 문제다. 한국 소비자는 단순히 ‘싼 차’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신뢰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 차를 원한다는 사실이 이번 사태로 더욱 뚜렷해졌다.
짧게 말해, EV5는 지금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전기차”라기보다 “믿음의 시험대”로 다가오고 있다. 이 시험에 어떻게 답할지가 기아 브랜드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