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기, 파리 아니야?, 파크 프리베

좋은 카페 수집록(3)

by 포심리스

내겐 정많은 ‘센캐’ 둘째 동생이 있다. 7년넘게 한 직장에서 ‘존버’를 실천하고 있는 동생은 강한 성격, 대장부같은 마음, 엄마아빠를 끔찍이 위하는 마음 등등이 나보다 훨씬 언니같다. 항상 일희일비하고, 위기 상황에 물 밖으로 내쳐진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대는, 자기 화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한다는 개복치와 같은 성격인 나와 비교되는, 동생이지만 언니인 그런 동생이다. 어떤 위기가 와도 묵묵히 참고 우직하게 할일을 하는 내 동생이 참으로 고마울 때가 많다.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나보다 한 번 더 생각하고 두 번 더 늦게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항상 “네가 언니해. 난 큰 언니랑 너무 안 어울려.” 라고 농담을 해대고, 그러면 동생은 “죽고 싶냐”라며 주먹을 치켜들고 가볍게 그 말을 무시한다.


아무튼 그 동생이 말했다.

“언니, 이번 주 목요일에 뭐해?”

“나야, 뭐가 있냐. 왜?”

“엄마 아빠랑 맛있는 거 먹고 카페나 다녀올래?”

휴직한 내가 시간은 더 많은데 엄마 아빠를 생각하는 마음은 바쁜 내 동생이 더 많다.


언젠가 내게

“내가 병원에 있어보니, 엄마 아빠랑 함께 하는 그 시간들은 무한히 주어지는 게 아니야. 언니, 어제까지. 아니 저녁때까지 같이 밥 먹고 웃던 사람이 심장마비로 응급실에 실려와. 그럼 그 옆 가족들이 어떤 모습인지 알아? 나는 그걸 자주 봐. 건강하고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영원하지 않아.”

병원에서 일하며 오고 가는 아픈 사람들을 돌보는 동생에게 시간과 건강이라는 건 무한정 주어지는 화수분이 아니었고, 그래서 동생은 엄마아빠의 지금이 더 소중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내가 가시돋힌 말로 부모님께 잔소리를 하거나 하면

“언니 나중에 진짜 후회하면 어떡하려고 해. 진짜 후회해. 그러지 마.”라고 한다.

어쩌면 동생이 병원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은 우리 가족의 모습을 한 사람들일까. 비슷한 나이의 아저씨, 아주머니를 보고 우리 엄마 아빠를 무한히 떠올리는 동생은 그래서 더 부모님에게 정성을 들인다.


동생의 제안에 내가 계획을 보탰다.

“우리 집 근처에 맛있는 칼국수 맛집이 있는데 내가 너무 뒤늦게 안 거 있지?, 그거 먹고 우리 좋은 카페 가 보자.”

“그래, 언니 애기랑 함께 있으니까 우리가 그 쪽으로 가는 게 편하겠지. 나 오프니까 그 때 갈게.”


우리는 엄마, 아빠, 나, 둘째 이렇게 모여 또 엄마의 최애 음식 칼국수를 먹으러 나섰다. 뒤늦게 발견한 칼국수 맛집에서 우리는 이걸 몰라서 너무 억울하다는 듯 칼국수를 땀흘리며 열심히 먹고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나, 친구들이랑 가본 곳이 있는데 진짜 좋아. 가 볼래? 오늘을 완벽하게 만들어주는 카페야.”

내 동생의 평일 오프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그 소중한 오프를 가족들과 함께 보내준 게 고마워서 나는 어떻게든 오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고 싶었다.


아빠가 말했다.

“아니 무슨 카페가 거기서 거기지. 거기까지 기어가. 그냥 가까운 데서 먹어. 아무거나. 그냥 니네 집 이 앞이니 들어가서 공짜로 마시자.”


엄마, 동생, 나 … 우리가 동시에 야유했다.

“아우~ 아빠!!!!”

“안돼, 오늘은 완벽한 날이어야 하니까 좋은 데 가서 먹어야지!”

“내가 얼~마나 어렵게 받은 오프인데 그냥 아무데나 가!! 좋은 데 가자!!”

“그래, 멀어도 좋대니까 못 이긴척 가보자 여보.”


카페를 좋아하고 특별하고 소소한 일상을 사랑하는 여자들 사이에서 아무거나 먹어도 그만인 유일한 청일점 아빠의 의견은 간단히 묵살되었다. 반강제이자 반애교이자 반설득으로 아빠는 결국 우리를 태우고 우리의 하루를 완벽하게 만들어 줄 카페로 향했다.


“아빠, 진짜 가보면 너무 좋아서 놀랄거야. 오늘 평일이라 그나마 갈 수 있는 거지. 주말엔 사람 너무 많아서 못 가는 곳이라구!”

나는 그 곳이 얼마나 대단한지 조급하면서도 설레는 마음으로 가는 내내 종알거렸고 아빠는 미동이 없었다.


“카페가 거기서 거기지. 참 ~나.”

가는 데 20분 돌아오는 데 20분이 걸린다며 투덜대던 아빠가 나와 내 동생, 엄마, 우리 딸을 싣고 20분 정도 달렸을까. 드디어 내가 오버하며 극찬해 마지않던 그 공간, 파크 프리베에 우리는 도착했다.


일반적인 수도권 외곽의 시골 상가들. 낡은 길을 달려 구 시가지에 위치한 파크 프리베는 들어가기 전까지 그 안에 그리 드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으리라곤 상상이 안 되는 구조다. 찻길에서 파크프리베 간판이 있는 곳으로 조금 들어가면 어느 순간 갑작스레 잔디밭이 끝없이 드넓게 펼쳐지는 곳. 정말 큰 나무와 작은 나무, 예쁜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곳곳에 신기하게 생긴 편안한 의자, 탁자, 파라솔이 놓여있는 곳. 잔디와 숲, 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자연 체험장이 따로 없다. 탁 트인 공간이 주는 해방감에 답답한 마음이 펑~하니 뚫린다.


파리 공원같은 파크프리베, 큰 나무가 예쁨


“우와, 다슬아 이런 데가 다 있냐. 햐~, 엄청 넓네 아주그냥”

제일 오기 싫어하던 아빠가 먼저 탄식을 질렀다.

“그거봐 아빠, 내가 좋댔지.” 나는 훗 자만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엄마 아빠, 동생들은 신기하고 행복하게 카페를 구경했고 나는 흡족한 표정으로 그런 엄마, 아빠, 동생의 모습을 구경했다.


엄마와 아빠는 말하자면 식물 매니아 중 매니아였다. 나이가 들어가며 둘이 함께 가지게 된 취미가 ‘식물 가꾸기’ 였는데 손 잡고 다니며 예쁜 화분을 찾고, 좋은 모종을 찾고 당근 마켓으로 싸게 나온 식물을 받으러 가는게 두 분 인생의 큰 즐거움이었다. 져가는 자신들의 인생과 생명력을 식물을 통해 다시 확인하고 싶은 것일까. 다 장성한 자식들을 이제 키우지 못해 헛헛한 마음을 식물을 키우며 달래는 것일까. 그래서인지 내 결혼식 즈음 엄마아빠는 식물을 더 사모았다. 내가 집 좁아지게 이 놈의 화분은 왜이렇게 들이냐고 잔소리를 하면

펭하-가 생각나는, 하이하는 신난 엄빠와 잔디밭과 벤치


“여기 꽃이 폈는데 그런 소리가 나오냐며” 너무 큰 만족감에 잔소리도 한 귀로 즐겁게 흘려보냈다. 그런 엄마 아빠였기에 카페의 드넓은 공간에 놓인 다양한 식물들, 숲이 주는 좋은 공기와 초록초록함, 그릿빛 향기는 행복함 그 자체였으리라.


나는 아빠의 탄식에 “아빠, 그것봐. 진짜 좋지? 이런 거 처음 봤지?” 다시 말했다. 항상 무슨 일을 하든 하지 말라고 먼저 하는 아빠지만 그 일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면 제일 먼저 좋아하고 행복해하는 것도 아빠다. “내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요.” 다른 데선 생색을 덜 내는 편인데 괜시리 좋아하는 아빠에게만은 더 생색을 떨고 싶은 나의 마음에 나도 ‘이 말을 안하면 더 멋있지 않을까?’싶게 오버를 했다.


쫄래쫄래 좋아하며 걸어가는 아빠

나는 파크프리베의 잔디밭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맞아, 파리였지. 파리의 에펠탑 앞 광장이었나. 뛸레르 공원이었나. 아무튼 파리의 한 장소와 의정부 낯선 외곽의 카페가 주는 느낌이 같다니. 놀라울 뿐이었다. 국내에서 이렇게 드넓게 트인 시야를, 드넓은 잔디를 보는 일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파크프리베에 그게 있어서 나는 생뚱맞게 의정부에서 파리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곳에선 혼자였다면 지금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니 지금이 더 행복하겠구나.


엄마와 아빠는 딸과 함께 자리를 잡았고 나와 동생은 커피를 주문하러 갔다. 커피 주문을 하는 동안 아이가 없어 잠깐의 해방감에 기뻤다. 좀 더 주문을 길게 하고 싶었지만 생각보다 금세 주문을 했고 우리는 잔디밭 밖으로 나왔다. 코로나라 거리두기가 필요했는데 야외인 데다 의자마다 사이가 널찍하게 넓어서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드넒은 잔디 뷰를 보고 편안한 의자에 눕듯이 앉았다. 햇살이 많이 비추어서 가장 좋은 자리를 벗어나 잔디밭 한켠의 다른 자리로 옮겨 앉았다.

초록뷰를 보며 커피 마시기


초록잔디와 + 아기 사진은 진리, 사랑해요 하는 딸 관람하기


걸음마 연습

아이가 있어서 많은 여유는 주어지지 않았지만 행복했다. 잔디를 배경으로 자연을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가와 그런 손녀를 바라보는 엄마, 아빠의 모습. 아가를 돌봐주는 마음 착한 이모. 오늘 일정은 정말 성공이라는 생각에 나는 혼자 기뻐했다.


작년 파리, 스위스로 혼자 여행을 떠나며 좋은 것들을 많이 보며 생각했다. ‘이거 안 보고 죽었으면 어떡할 뻔 했어. 너무 억울해.’ 그와 동시에 나는 생각했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이런 거 보여주고 싶다.’ 평생 열심히 일하고 무언가를 했지만 아직 본 것보다 안 본 것이 더 많고 즐긴 것보다 안 즐겨본 것이 너무 많은 우리 엄마 아빠에 대해 나는 갑자기 효심이라는 게 솟구쳤고 열심히 벌어 이런 걸 꼭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으로 그걸 실천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어찌어찌 파리에서 봤던 그 잔디밭의 느낌을 엄마아빠에게 선물할 수 있어 나는 기뻤다.


평일이었지만 유명한 곳답게 사람이 꽤 많았다. 아이를 동반한 경우가 많아서 괜시리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 저사람도 고생하고 있구나.. 반갑다.’ 아이가 신이 나 주변을 탐색하고 다칠까 뒤를 밟으며 사진을 찍는 보호자들의 모습. 아이+잔디의 조합은 항상 성공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찍는 사진마다 초록초록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웠다. 비누방울을 가져온 육아 선배들의 모습에 감탄을 하며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기도 하고.

언니같은 동생


우리는 잔디를 보았고 나무를 보았고 거기서 뛰노는 우리 딸을 같이 관람했다. 내동생은 나보다 내 딸에게 친절하고 사랑이 담긴 눈길로 걸음마를 도와주었고 엄마 아빠는 딸이 걸어다니는 그 자리마다 눈길을 주며 사랑을 보내주었다.


다슬아, 엄마랑 아빠 00이랑 사진 찍어주라. 손녀랑 사진. 이거 처음 아니야?”

웃는 모습이 예뻐서 울컥

평생 사진을 업으로 삼은 아빠는 남들의 행복한 시간은 평생 찍었으면서 아빠가 행복한 시간은 정작 몇 컷 사진 속에 담지 못했다. 그런 아빠가 제안했다.


그래 아빠 사진 찍어, 잠깐만. 하는데 어떤 사람들이 우리를 지나갔다.


“우리 손녀예요, 이렇게 사진 처음 찍어요.”

아빠는 신난듯이 모르는 사람에게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것은 곧 아주 신난다는 표시였으므로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아빠는 잘 웃지 않지만 사진을 위해선지, 딸을 위해선지 웃어보였고 나는 지금 이 순간이 행복의 한 장면을 찍고 있는 것 같아 조금은 울컥했다.


멍하니 햇빛을 받으며 초록초록한 평원을 바라보는 일, 나무를 바라보고 숲을 느끼는 일. 그 모두를 내가 좋아하는 카페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니

사진을 많이 건진 만큼 마음도 풍족한 하루였다.


소중한 오프를 이렇게 보내게 해준, 항상 먼저 손 내밀어 엄빠를 좋은 곳 데려가자고 해주는 동생이 있어 참으로 고맙다.


또 안테나를 켜고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줄 카페는 어디인지 물색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은 어렵지 않으므로,

나는 또 카페에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엄마도 핫플 좋아해, 호텔 수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