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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핫플 좋아해, 호텔 수선화

좋은 카페 수집록 (2)

by 포심리스

엄마는 3년 전 크게 교통사고를 당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큰 스타렉스 차량이 좌회전을 하며 키 작은 엄마를 보지 못했고 그래서 엄마는 나가 떨어졌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퇴근 후에야 아빠는 뒤늦게 전화가 와 너희 엄마가 병원에 있으니 응급실로 오라고 전화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며 운전을 했고 엄마는 00병원 응급실에 누워있었다. 아직은 수술하지 못해서 누워있다고 하는데 겉으로는 찰과상이 없이 멀쩡해 보였으나 속은 아주 단단히 아작이 난 상태였다.

나가 떨어지면서 어깨뼈가 산산조각이 났고 무릎 뼈역시 아작났다. 허리와 갈비뼈까지 엄마는 부러지지 않은 곳을 찾아야할 만큼 많은 뼈가 부러졌다. 의사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마르거나 날씬했다면 이보다 더 심각한 골절이나 뇌 손상까지 입었을 거라며 살이 쪄서 다행이라고 했다. 엄마는 동생의 대학병원으로 옮겨 입원했고 좋은 의사선생님께 응급 수술을 받았다. 엄마는 뒤로 근 1년을 그 조각난 몸을 회복하는 시간으로 보내야했다. 간병인 아주머니가 오셔서 엄마의 똥오줌을 치웠고 아예 거동할 수 없는 엄마를 휠체어로 산책시키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우리 자매와 아빠는 돌아가며 엄마를 간호했고 나는 교통사고 처리를 하러 경찰서를 오갔다. 경찰에 가서 돌아오는 대답은 가해자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였다. 좌회전을 하다보면 정말 안보이는 구역이 있다고 그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며 합의를 종용했다.


그 자리에 나는 아빠와 함께 했는데 그래서 더 답답했다. 아빠는 바보같이 착한데, 특히 우리 가족 밖의 타인에게 착했다. 그래서 결국은 가족들에게 나빴다. 아빠는 가족들이 부조리함을 당할 때 힘을 보태지 않았고 평생 엄마가 악역을 맡게 했다. 이제 엄마가 아프니 그 역할은 내가 맡게 되었다. 교통사고 조사를 받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아빠는 엄마가 아닌 교통사고 가해자 편을 들었다. 나는 아빠만큼 착하지 않아서 엄마가 당한 사고가 너무나 억울했고 그래서 가해자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 cctv를 백방으로 알아보고 나름 법도 알아보고 하며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손해사정사와 함께 사고의 가해자를 만났을 때 나는 마음이 약해졌다.


가해자는 다리를 절었는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도 여섯살 때인가 오토바이가 세게 달려와서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들어놨어요. 내가 이 다리로 평생을 이렇게 살았는데 …설마 일부러 사람을 쳤겠어요. 합의 부탁합니다.”


그 아저씨의 삶이 그려지며 마음이 슬펐지만 나는 ‘tv동화 행복한 세상’에 나오는 사람처럼 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거나, 좋은 마음으로 그 아저씨를 용서하지도 않았다. 그 아저씨와 별개로 엄마가 당한 사고에 대해 응당한 벌을 받고 벌금을 내는게 맞다는 냉정한 생각을 했다. 엄마는 이제 남은 몇 십년을 멀쩡하지 않은 허리와 어깨, 다리, 갈비뼈로 살아갈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 하에서 가족들과 힘을 합쳐 엄마 간호를 열심히 했다. 착한 아빠는 간호도 가장 열심히 우직하게 했다. 우리 네 자매는 각자 할 수 있는 안에서 엄마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씩 병원에 사 갔다. 어느 날은 빵을 사갔고 어느 날은 꽃을 사갔고 그러다 내가 생각을 해냈다.


우리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명동 교자 칼국수!!’ 엄마는 칼국수를 참 좋아했는데 특히 명동교자 칼국수를 제일 좋아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 나는 버스를 타고 몸져 누워있는 엄마가 행복해할 모습을 상상하며 명동 교자 칼국수를 포장하러 명동에 갔다. 사람이 북적한 명동 교자 칼국수집에 갔는데 이게 웬일인가.


저희는 포장 안해요, 드시고 가세요.”

“네? 저는 포장하러 왔는데요.”

“안 해요.”

유명한 맛집답게 파는 사람이 ‘갑’이었고 명동교자는 정말 포장주문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터덜터덜 엄마가 좋아하지도 않는 충무김밥을 사서 나는 병원으로 갔다.

그 후 6개월쯤 지났을까. 절대 붙지 않을 것만 같은 엄마의 뼈들이 붙기 시작했고, 제 자리를 찾아갔다. 좋은 의사 선생님이 신경써 수술을 해주셔서 아주 잘 아물었고 엄마의 상처는 붉은색 흉터가 연해지는 만큼 서서히 낫고 있었다. 엄마는 퇴원을 했고 조금씩 걸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 때 생각했다. 엄마에게 꼭 먹이고 싶었던 명동교자를 먹으러 가자!


“엄마, 이제 나랑 명동가서 명동교자 먹을래?”

엄마의 답은 당연 yes였고 나는 그래서 기쁘게 명동교자를 먹으러 갔다. 아픈 엄마가 그나마 멀쩡한 몸이 되어서, 더운 여름이었지만 우리는 명동 교자에 걸어가서 정말 칼국수를 때려마셨다. 그냥 먹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맛있게 칼국수를 입에 ‘때려’ 넣으며 ‘마셨다.’


“엄마 맛있었지?”

“00아, 너무너무 맛있다. 진짜 잘 먹었다.”

“엄마 내가 그때 진짜 이걸 사가려고 한 시간을 비오는 날 왔었는데, 포장을 못해갔잖아. 이제야 한이 풀리네.”

“그랬어 우리 딸? 엄마는 몰랐어.”

“그래도 이렇게 걸어서 엄마랑 이걸 먹게 돼서 너무 다행이야, 그치?”

“그래 엄마는 이제 못 걷는 줄 알았잖아. 진짜 너무너무 다행이다.”


일단 그렇게 칼국수는 때려마셨는데 그 다음 그냥 집으로 가기는 아쉬웠다.


“엄마 조금 더 걸을 수 있어? 요즘에 이 근처에 을지로라고 있는데 을지로가 힙지로라고 불린대.”

“힙지로? 그게 뭐야.”

“엄마, 핫플이란 말 알아? 요즘 핫플이야 그게.”

“아 그래? 핫플, 핫플은 또 뭐야?”

“핫플레이스야. 그만큼 요즘에 좋다고 유명한 곳이야, 거기 가려면 우리 조금 더 걸어야 하는데 괜찮아?”

“그래, 그런 곳을 가야 하는데 괜찮고 말고.”


엄마는 사실 걷는 게 많이 아팠을 거지만 잘 참았다. 의사 선생님이 최대한 걷는 게 중요하다고 했으므로 우리는 엄마의 건강을 위해서, 그리고 핫플을 위해서 걷기로 했다.


생각보다 힙지로 핫플을 찾는 길은 너무 어려웠다. 안 그래도 길눈이 어두운데 꼬불꼬불한 그 길 안에 간판도 제대로 붙어있는 힙한 카페를 찾는 것은 너무 힘들었다.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나올듯 나올듯 나오지 않아서 우리는 중간에 포기할까도 했다.


“엄마, 그냥 저기 스타벅스나 갈까?”

엄마는 고민하다가 말했다.

“음… 아니, 그 동안 찾은 게 아까워서 찾고야 말겠어.”

엄마는 웃기고 고맙게도 핫플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었고 근처 편의점까지 들어가 그 카페의 위치에 대해 아는지 물었다.


“엄마, 다리 괜찮아?”

“응, 조금 아프기 시작했는데 엄마는 괜찮아. 꼭 가자.”

“그래 엄마, 내가 길눈이 어두워서 미안.”


근처 편의점에 가서도 카페에 대해서 알기는 어려웠지만 결국 그 근처 허름한 식당 아저씨가 결정적 힌트를 줬고 그래서 우리는 카페를 찾아냈다. 허름한 골목에 부자재를 파는 공장이나 상가들 사이 허름한 카페 문을 여니 생각지도 못한 공간이 나왔다. 놀랍다.

호텔 수선화



“어머나, 이게 뭐야. 00아 이게 뭐야. 어머어머”

카운터마저 힙하다. 수선화

우리는 그 무더운 날 아픈 다리로 힘겹게 힘겹게 카페를 찾아냈기에 더 기뻤다.


엄마와 나는 오랜 시간 카페 이곳 저곳을 돌아 다니며 구경을 했다. 어둑한 조명과 여러 소품들이 빈티지한 매력을 뽐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낡은 듯 낡지 않은 듯 현대적인 듯, 고전적인 듯한 것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20대 초반 학생들과 예쁘게 꾸민 여자들. 그 사이에서 모녀가 함께한 테이블은 우리 뿐이여서 카페 주인장 역시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우리 역시 어울리는 듯 안 어울리는 듯 그 카페에 앉아 있어서 참 좋았다.

호텔 수선화의 소품들. 조화롭지 않은듯 조화롭고,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며 지저분한듯 깨끗하다.

우리는 커피를 시켰고 커피가 나온 잔 마저 특별하다며 또 호들갑을 떨었다. 카페에서 행복해하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엄마에게 물려받은 유전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는 아아, 나는 자몽에이드


“어머어머 00아 이 컵좀봐. 근데 가격은 비싼데 잔이 너무 작다, 얘”

“엄마 이건 원래 이런 거야. 요즘은 그렇게 엄~청 큰 컵으로 안 마셔, 딱 진짜 맛있는 걸 조금 먹는 거야. 먹어봐, 맛있지?”

“아, 그래? 그러고보니 맛있는 거 같아.”


그러더니 말을 덧붙였다.

“그거봐 00아, 그냥 힘들다고 스타벅스 갔어봐. 후회할 뻔 했지?”

“응, 엄마 고마워 정말. 그랬으면 이런 데 못 와봤잖아 나도.”


우리는 함께 고난을 이기고 무언가를 해 냈다는 생각에 뿌듯해졌다.

잠시 목을 적시고 우리는 사진을 찍었다.



엄마도 핫플을 좋아해


이 거울 너무 예쁘다~ 인증샷 찍자


“엄마, 사진 찍어줄까?”

엄마는 사진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해서 우리는 신이 났다. 멀리서, 그리고 가까이 이런 힙한 곳에 우리가 와 있다는 게 신이 나서 찍고 또 찍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이야기 했다.

“정말 다행이야.”

“뭐가?”

“엄마가 다 나은거. 엄마랑 같이 걸어가서 명동 교자 먹은 거.”

“그래, 엄마도 너무 감사해. 엄마를 여기 데려다줘서 고마워.”

“응 엄마 건강히 재활하고 치료 열심히 해서 엄마가 가고 싶은 곳들 많이 다니자. 와이키키 해변 가야지”

엄마는 어디를 제일 가보고 싶냐고 물었던 말에 뜬금없이 ‘와이키키 해변’을 대서 나를 놀래켰는데 그래서 그건 우리가 결국 가야만 할 숙명의 여행지가 되었다.

“아싸 신난다, 그래, 그러자.”


우리는 뿌듯해하며 또 앞날을 기약하고 밖으로 나섰다. 시원하고 힙한 공간을 나와 문을 여니 금세 후텁지근함과 낡은 상가의 분위기가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 중인 것을 알려주었지만 우리는 목표한 핫플에 다녀왔으므로 참 행복했다. 엄마를 붙잡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거의 다 내려왔을까? 상가 건물 밑에서 이곳이 맞는지 아닌지 혼란스러워하는 20대 여자 아이 두 명이 보였다.


엄마는 급하게 학생들을 부르며

“거기 핫플 찾지? 여기야 여기 위 4층이야 4층”

엄마는 그들이 묻지도 않았는데 이미 ‘나는 거기 다녀왔어~ 부럽지’하는 말투로 과도한 친절을 베풀어 나를 놀라게 했다.

“엄마,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꾸 말하면 어떡해~”

“아니야, 거기서 그 카페 찾는 건 100퍼센트야.”


“진짜 좋아 가봐 ~학생들 좋을거야~~ 아주 시원해.”

나는 학생들이 놀랐을까 만류했지만 정말 그 학생들은 호텔 수선화를 물어물어 찾는 중이었고 그래서 엄마에게 고맙다고 했다. 최근 유명해진 핫플레이스, ‘호텔 수선화’에 다녀온 50대 아주머니를 신기하게 쳐다보며. 묻지 않은 TMI를 신나게 방출하는 엄마를 보고 엄마도 정말 카페가 신기했고 행복했구나 싶었다.


엄마와 집에 돌아 오며 우리는 휴대폰 사진을 확인하며 또 깔깔 웃었다. 이건 잘 나왔고 이건 뚱뚱하게 나왔고 이 공간은 너무 신기하고 소품이 죽이지 않냐며, 근데 거긴 너무나 시원하고 신기했다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우리가 핫플 찾기를 중도 포기하지 않은 걸 자랑스러워하며 손을 꼭 잡았다.



오늘 하루 호텔 수선화에 다녀오며

엄마랑 같이 헤매고, 같이 서울 거리를 걷고. 아무 얘기나 수다 떨 수 있어서.

덥지만 땀이 나도 그 손 꼭 잡고 다닐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또 내 기억 속 진하게 행복한 카페가 하나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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