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인들 작당하다, 제이히든하우스

좋은 카페 수집록(1)

by 포심리스

나는 카페를 좋아한다. 각기 다른 모습의 다양한 카페들은 변화 없는 내 일상에서 공간에 대한 신비함이자 새로움이다. 그리고 인식 확대의 기회이다. 새로운 경험을 함께하면 그 사람과 더 사랑에 빠지기 쉽다는 어느 연구 결과를 읽은 적이 있는데 나에게 카페는 그런 곳이었다. 단지 그냥 ‘커피 한 잔 마시는 곳’이 아닌 새로운 저변을 넓혀서 새로운 사람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그런 마법의 공간. 연애 초기, 눈 돌아가는 좋은 카페를 용케도 잘 찾아내는 그와 나는 인식의 저변을 넓히며 사랑에 빠졌다. 이 뿐 아니라 여행에 갔을 때, 우울할 때, 친구를 만날 때, 기쁠 때, 심심할 때 나는 습관적으로 좋은 카페를 찾아낸다. 그래서 기어코 행복해지고야 만다.



언제나 누가 내게 “넌 언제 행복해?” 물으면 나는 “좋은 카페에 가서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라고 대답한다. 돌아보면 냉소적이기도 차갑기도 한 내가 어린 아이나 소녀같이 “우와, 이건 너무 예쁘잖아.” “이건 정말 대박이야.” “어떻게 이런 곳에 이런 게 있지?”하고 호들갑을 떨 때는 항상 좋은 카페를 발견했을 때였다. 내게 카페는 행복의 공간이며, 내 메마른 마음을 말랑하고 유연하게 만들어주는 삶의 윤활유다. 공간의 새로운 활용과 생각지 못한 인테리어의 조합. 그리고 맛있는 맛의 아아, 따아. 거기에 빵도 맛있으면 눈이 돌지.


나는 디자인에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커피 맛에 조예가 깊은 편도 아니지만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하나로 여러 카페에 얽힌 이야기와 카페 공간에 대한 소개를 하고 싶어졌다. 시시콜콜하지만 어찌나 좋았던 곳인지 기록해두고.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카페를 기록한다면 그것이 곧 나의 행복 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그 공간이 누군가의 일상에 다른 행복을 전해주길 바라며 그 때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울림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은 친한 친구들과 새로운 모임을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친구들은 직장인이자 엄마이며 그래서 아주 바쁜 나날들을 성실히 살아내고 있다. 얼마 전 모임을 했는데 한 친구가 참여하지 못해서 너무나 아쉬웠고 그 아쉬움의 한풀이로 우리는 각자 자유부인이 되어 완벽한 하루를 만들어보자고 작정했다. 우리는 애 딸리지 않은 만남에 ‘자유부인’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그건 곧 그 때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구속부인’이라는 뜻이다. 모든 일상에 아이는 구속이고 직장도 구속이며 자유는 쉽게 주어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설렜고 좋아했다. 휴직을 한 나 이외 친구들은 휴가를 썼고 아침부터 모이기로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오전 9시부터 6시. '나인 투 식스' 그 지루하고 따분한 직장인의 시간을 우리는 새롭게 바꿔보기로 결정했다. 일하는 시간이 끝나면 신데렐라처럼 우리는 돌아가야했기에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놀지 일주일 전부터 궁리하느라 행복한 상상을 했다. 뭐 큰 돈을 쓸 것도, 거창하고 특별한 것을 할 것도 아닌데 우리는 완벽하게 멋진 하루를 만들기 위해 이것 저것 뭘할지 상상했고 상상하며 행복해했다.



나처럼 애 하나씩 딸린 친구 하나, 일찍이 아이를 낳아 벌써 두 명의 아이를 둔 친구 하나, 얼마 전 결혼해 달달한 신혼을 즐기는 친구 하나 이렇게 넷이 모였다.


비어있는 J의 집에서 우리는 일단 영화 한편을 봤다. ‘새콤달콤’이라는 넷플릭스 영화였는데 남친이 바람을 피는 내용이었고 그래서 우리는 분개했다. 마치 우리 남편이 바람을 피운 듯이. 오래된 조강지‘애인’을 버리고 회사에서 만난 뉴페이스와 사랑을 하는 남자. 그 남자를 바라보는 조강지’애인’. 우리는 불륜의 공포에 대해 이야기했고 내게 주어지는 유혹들 앞에서 자신있는지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지난한 연애의 끝, 헌신한 여자의 최후를 보며 우리는 엉뚱하게 ‘그래서 여자는 착하면 안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J의 남편은 이 영화를 쓰레기영화라 평했는데 결국 작품성보다는 정말 ‘쓰레기’에 관한 영화였구나 생각하며 참 평을 잘했다고. 우리는 공감했다. 거기서 나온 배우 장기용이 키크고 멋지다며 그리고 채수빈은 너무 예쁜데 자기를 닮았다며 각기 자기의 할말을 하며 영화를 끝까지 봤고. 마지막에 등장한 반전 내용에는 모두가 너무 재밌다고 박수도 치고 그렇게 우리는 다음 일정을 정했다.



비가 조금 부슬부슬히 내리는 날이라 회기역 파전 골목에 가기로 했다. 20대의 상징인 회기역 파전 골목에 간다면 우리의 하루는 조금 특별하고 멋지지 않을까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고 우리는 그렇게 20대의 향기를 느끼러 파전을 먹으러 갔다. 모두 이곳에서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며 토를 한 바가지 해보지 않았냐며 웃음지었고 그래서 그곳은 추억의 장소가 됐다. 각기 가진 즐거운 추억의 향기를 맡으러 우리는 이모네 파전으로 갔다.


대낮에 점심겸 막걸리와 파전을 먹으러 모인 애엄마들과 기혼 친구 1명이라니.

너무도 우스운 조합들에 우리는 쓸데 없는 웃음을 자주 터뜨렸고 자주 웃었다. 이 시간에 이런 곳에서 시간을 내서 파전을 먹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하며 부러워하며 주위를 두리번댔고 분석 결과 생각보다 다양한 연령층에 놀랐다. 우리는 알밤 막걸리를 먹었고 나는 젖을 생각하면서도 300Ml 맥주를 먹으면 3시간 젖을 안 주면 된다며 나름 합리화를 끝냈다.


그렇게 파전세트에 막걸리와 맥주를 우리는 대낮 ‘12시에’ 함께 먹었다. 술을 잘 먹지는 못해 많이 마시지는 못했지만 알딸딸함이 올라왔고 그러나 그 일정만으로 끝내기에는 우리의 하루는 너무 소중했으므로 우리는 또 뜬금없이 아이쇼핑을 하러 동대문에 갔다.


술을 마셔서 걷는 게 너무 힘들다고 모래주머니를 발에 끼고 걷는 것 같다며 누가 내 발 잡아당기냐고 말하며 지하철을 타러 가며 또 웃어제꼈다.


동대문에 가서 친구는 옷을 잘 사지 않는 엄마에게 사줄 옷을 골랐고 우리는 각자 필요한 옷을 샀다. 동대문 상가를 구경하며 외국인이 오지 않아 큰일이라며 주인들을 걱정했고 한산해진 동대문 거리에 놀라움과 헛헛함이 조금씩 밀려왔다. 밀리오레 앞에 있는 가설 무대를 보며 예전에 이 곳에서 춤 콘테스트가 열리고 그걸 열심히 구경했었다는 추억을 또 하나 꺼냈다. 사람이 가득하고 사회자가 사람을 불러 미친 듯 춤을 춰 재끼던 그런 열정의 공간. 지금은 너무나 초라해진 그 무대가 쓸쓸한 역사의 한편인 것 같아 슬펐지만 이내 바쁘게 움직여야했으므로 우리는 다음일정을 정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제이히든하우스’ 카페였다.

그곳은 정말 복잡한 동대문 한복판 주택가에 있었다. 급작스럽게 ‘여기 이런게 있었단 말야?’를 외치게 만드는 위치에 생각지 못한 광경으로 있었고 아주 잘 숨어있었다. 이름이 그래서 ‘히든하우스’였구나 싶게 그 카페는 그곳에 갑자기 있었다.



카페는 한옥을 개조한 곳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깔끔하고 모던한 카페의 광경이 펼쳐졌다. 카페가 자리한 동네는 모-던과는 조금 거리가 멀었기에 그래서 더 휘둥그레해졌다.


제이히든하우스

정리되지 않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 많은 상가의 복잡함과 사람들을 벗어나 갑작스레 등장하는 한옥 카페에 마음이 트이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정신 없는 곳에. 이런 정적인 분위기의 한옥 카페가 있다니 너무나 놀라운.

한옥의 정경은 뻔하다면 뻔할 수 있었지만 그곳에 숨겨져 있어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파전과 닭도리탕을 먹었고 맥주를 마시고 오랜 시간 걸었기에 아아를 먹기로 결정했다. 네 개의 아아를 시키고 크로플을 주문했다.


그 전까지 배가 부르고 부르다며 노래를 부르던 우리였는데 크로플은 나오자마자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조각 나 우리의 뱃속으로 사라졌다.


'디저트배는 따로 있다.'는 현대 속담(?)이 정확하다는 것을 입증한 순간이었다.


배가 부르다는 습관성 멘트가 무안할 정도로 우걱우걱 빠르게 크로플을 없애고 우리는 많이 남은 아아를 들이키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난도질을 하기 전 찍을수는 없었나요 크로플.



이 카페어서 내가 가장 예뻤던 건 저 처마 밑에 걸린 제이히든하우스 팻말 종이(?)였다. (아주 자세히 봐야 보인다)


선선하게 비가 부슬부슬 내리다가 그것이 그치고 햇살이 들면서 바람이 딱 알맞게 불었고 저 옆의 대나무는 그 바람에 사락사락 소리를 냈다. 그 가운데 제이히든하우스가 적힌 작은 종이가 처마 밑에서 이리 흔들 저리 흔들대며 ‘나 여기 있다.’며 귀엽게 존재감을 뽐냈다.


‘어찌 저기에 저런 걸 달 생각을 했을까.’ 잘 보이지 않는 곳에도 뻗친 디테일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며 나는 행복했다.



내가 저걸 찍고 좋아한 이후에도 우리는 얘기를 했다.

시시콜콜하지만 인생 전반을 보면 중요한 그런 이야기들. 중요하지 않지만 결국은 중요한 그런 이야기들.


우리는 이 힘들고 고단한 육아가운데 첫째가 외롭지 않게 둘째를 낳아야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열띤 토의를 벌였다. 내가 몇월부터 시작할테니 넌 언제 낳는게 어떠냐며 서로의 출산 사업 설계도 했고 진짜 사업하는 이야기도 했다. 부자가 되고싶은 이야기와 남편과 싸운얘기 화해한 얘기 등등.

그리고 지금 여기 있는 그 순간 너무 행복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근데 얘들아 나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정말 하루만 아이 없이 여행가고 싶어.”

육아 전쟁터에서 매일 살아남으려 애쓰는 우리는 사무치게 공감했다. 여행의 이유는 하나. ‘하루만 원없이 푹 자 보는 것.’

하루도 깊이 자지 못하는 평소의 구속 부인들은 그렇게 자유를 생각하면 무한히 행복해질수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우리의 행복한 자유 시간은 제이히든하우스를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각자 아이들과 남편이 기다리는 곳으로 지하철을 타고 떠나며 잠깐의 자유가 주었던 진한 여운을 마음에 품고서.



쉽지는 않겠지만 곧 또 자유를 만끽하자고. 나인 투 식스를 이렇게 보낼 수 있어 행복했다고 이야기하며 흩어졌다. 돌아오는 길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터라 힘들고 지쳤지만 마음만은 쌩쌩했다. 육아 스트레스로 얼룩졌던 마음이 한결 가벼워 내 가정에 이 채워진 마음으로 사랑을 듬뿍 줄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솟았다.


그래서 결국,

오늘도 나는 카페에서 지나치게 웃었고 그래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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