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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나와 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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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심리스 Jul 07. 2021

나는 이기적인 모유수유부입니다(3)

나와 아기


새벽에 잠을 자는 것도 힘들었는데 분유는 트림을 시키느라 계속 잠이 깨고, 분유를 타러 부엌까지 가서 잠이 더 깨고, 다 먹인 뒤에 먹인 젖병을 물로 부셔 놓아야해서 잠이 깨버렸다. 다시 잠드는 것도 모유 쪽이 훨씬 수월했다.



모유는 그냥 아이를 눕혀서 젖을 물린채 잠들면 되는 거였다. 물린 채 잠이 들어서 젖물잠으로 고통(?)의 나날을 보내기도 했지만 모유수유 덕에 나는 그나마 새벽시간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찾아보니 새벽에 모유를 물리면 아이도 잠이 잘 오게 하고, 내 몸에도 잠을 오게 하는 호르몬 물질이 나온다고 한다. 젖을 물리고 나와 아이 모두 꿀잠을 잘 수도 있었다.



모유는 소화가 잘 돼서 트림을 안 시켜도 그만이라 그냥 물리고 잠을 자기만 하면 끝!



아이를 사랑하고 사랑해서 아이를 위해서 나의 좋은 모유를 주는 게 아니라, 그래서 내가 편하게 살기위해. 나는 모유수유를 했다.



3개월쯤 되어가니 젖양이 맞아졌다. 100일의 기적은 젖으로 왔는지 아이가 먹는 양과 내 젖에 차는 젖 양이 딱 맞아지며 나는 젖병 닦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아이가 울면 젖만 물리면 끝!

외출을 할 때도 젖만 물리면 끝!

짐도 훨씬 줄어서 참 편안했다.


단점이라면 먹이고 재우는 일을 온전히 내가 하게 된 것이었는데 내가 혼자 괴로워지는 게 젖병을 씻는 일보다는 덜 싫어서 얄미운 무임승차 조원을 그냥 용서하기로 했다.


육퇴 후 맥주가 가끔 고팠지만 알콜모유테스트기를 사서 가끔 즐기며 먹었고 아니면 논알콜로 마셨다. 커피는 디카페인으로 마셨다. 디카페인 원두를 좋은 걸 골라 마시니 밤에 잠을 잘잘 수 있었다. 많은 시간이 지나고보니 출산 후 좋지 않은 몸에 맥주와 커피 카페인을 들이붓지 않은 것만으로 몸 회복이 많이 된 것 같았다.

알콜모유테스트기와 모유저장팩, 유축깔때기 등등 든든한 수유 조력품들


젖을 물리며 옥시토신이 죽죽나오고

‘야, 이제 출산을 끝냈으니 제자리로 돌아가!’하는 신호를 몸 전체에 제대로 보냈는지

11개월쯤부터는 몸도 제자리로 돌아왔다.


흉통이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이었는데 흉통도 돌아왔고 뱃살은 조금 남았지만 처녀때도 있었으니 그정도는 봐줄만 하다고 여겨졌다. 난 그게 제일 기뻐서 내 모유에게 감사한 마음이 든다.


또 하나 좋은 점은 갑상선 저하증을 앓아 몸의 순환이 더디고 더딘 내가 모유수유로 인해 순환이 잘되고 소화가 잘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거였다.


위가 좋지 않아 항상 더부룩하고 위통에 시달리고 많은 시간 괴로워하던 나는 과식한 후 젖을 먹이면 소화가 꺽. 되는 느낌을 받게 되어 너무나 좋았다. 소화가 잘되는 사람은 이렇게 살겠구나 싶어 부럽기도 하고 소화가 잘된 만큼 살은 덜 쪄서 참 이리저리 좋은 점이 많았다.



마지막 장점이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성이 없어 끝없이 고민하던 내가 젖을 먹인 호르몬 덕인지 키우는 정인지는 모르겠으나 점차 아이와 사랑에 빠지고 있다. (이건 모유수유를 하지 않아도 그런 것인지 아닌지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젖먹이는 동안 아이와 내가 끈끈한 무언가 = 즉 젖이라는 음료?로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뱃속에서의 탯줄이 젖으로 옮겨가 아이와 나의 연결 고리가 되어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가끔은 젖먹는 아이의 모습이 참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좋은 수유자세를 만들기위한 추억의 수유쿠션.                                       이젠 이런거 없이도 알아서 까 먹는다.

처음엔 그렇게 자세를 비스듬히 눕히고 팔로 머리를 받치고 편안하게 만들어줘야 그나마 먹었는데 이제는 스스로 다가와 내 젖을 알아서 깐다.


어떤 자세를 취하든 젖을 까고 입을 내밀어 달달한 음료를  먹고야 만다.  


슈렉 고양이같은 딸랑구

슈렉 영화에 나오는 고양이처럼 나의 얼굴 가까이 다가와 나의 음료를 먹고, 먹은 뒤 맛있다며

‘쩝~, 하~~’를 하는 아이가 귀엽지 않을 수 없다.






점차 시간이 지나며 단유를 해야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어떤 엄마는 단유하는 날 울었다고 하는데 나 또한 울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이제 젖을 물릴 수 없어서 아이와의 끈끈한 연대나 사랑이 끊어져서라기보다는 이젠 소화가 안될까봐 울 수도 있지만.

 

모유수유는 어찌됐든 나에게 출산후 여러 힘든 것들을 다잡아 주어 고마운 존재다.


내 부족했던 모성을 회복할 수 있게 도움을 주었고 목적없이 주어진 시간의 헛헛함에 새 목표를 던져주었으며, 너무나도 끔찍한 젖병씻기로부터의 자유를 주었다. 몸의 회복, 소화 및 순환 촉진을 도와주어 내 몸을 이전의 몸과 비슷하게 만들어주었다.


또 딸의 귀여움을 아주 가까이서 만끽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 혼자만 아는 딸아이의 젖먹는 모습. 먹은 뒤 흡족하게 ‘쩝~하~~’하는 모습은 내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예쁜 장면들일 것이다.



모유가 좋은 점에 대한 조리원 강의… 반발심에 그만두고싶었음.


모유가 좋은 점 몇백가지가 모유수유 사이트에 나온다. ‘면역력과 지능… 어쩌구 저쩌구 완벽한 성분의 지상최고 모유’라며 끝없이 모유수유에 대한 예찬이 이어진다. 나는 오히려 그를 보고 반감이 들어 모유를 놓아버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좋은 거라 ‘먹여야만’ 하고 먹기를 ‘강요’하게 되는 거라면 그건 너무 별로였다.



그냥 심플하게 나한테 좋으면 하고 나한테 안 좋으면 안 하는 거.


내 몸이고 내 젖이니 내 마음대로하면 되는거 아닌가.


 

 태어나고 며칠 되지 않은 아이와 대면한지 며칠만에 대단하고 엄청난 사랑에 빠지는 일이 가능하긴 한 것인지 모르겠다.


사랑도 첫눈에 반하는 걸 믿지 않는 나는 아이와의 사랑도 마찬가지였고 며칠만에 엄청난 희생과 사랑을 베푸는 엄마가 되는 일은 나에겐 너무도 부자연스럽고 힘든 일이었다.



나처럼 이런 이기적인 엄마가, 누군가와 사랑에 천천히 빠지는 엄마가 혹시나 모유수유를 고민하고 있다면 조심스레 추천하고 싶다.


단유와 젖몸살의 고통을 느껴보지 않아 시덥지 않은 추천을 남기기 두렵지만 지금의 마음은 이러하다.

그걸 느낀 후에는 모유 극혐론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ㅋㅋ


아이를 떼놓고 외출이 어렵고 (그래도 나는 참 많이 했다.)  남편이 먹이는 일을 할 수 없고 잠도 내가 재워야 하고 (이건 아직 억울하다.) 등등 많은 단점도 있지만 이런 불량한이유로 모유를 선택한 엄마가 있으니

나보다 나은 상황의 엄마라면 모유의 편의성을 한번쯤은 생각해보길 빌며!


가슴을 젖히고 수유브라를 들어 젖을 달라고 품에 파고드는 아이와 씨름하는 오늘 하루도 나는 모유 덕분에 행복했다.


단유하는 날까지 프리하게 젖을 물려주리라.  

스스로 젖을 까는 아이에게 앞섶을 마음껏 내어주리라 다짐한다.


이렇게 젖에 대해 오랜시간 쓰며 여자로서의 ‘가슴’이 주는 에로틱한 느낌이 많이 없어져 다소 속이 상하지만, 이미 출산 후 내 몸은 신비한 여자라기보다 포유류 중 하나의 몸으로 여겨지므로 부끄러움도 별로 없어진지 오래다^^


아무튼 오늘도 젖며든 나의 일상을 돌아봐서 행복했다.


젖며든 내 삶을 가능하게 해준 내 딸에게

영광을 돌리며(?)

끝을 맺는다.


이 땅의 모든 이기적인 엄마들 파이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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