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아기(6)
남들은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 눈물이 터지고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나고 너무나 벅차고 감격에 젖는다던데 신기하게. 나에게는 그런 느낌이 없었다.
인생에서 이렇게 아픈 적이 있었나? 싶게 아팠던
막판 진통을 견뎌 아이가 나오고 새빨간 핏덩이를 내게 안겨주었는데
그 때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내 표정은
“읭?” 이었다.
실제 내 감정도 그랬다.
“읭? 이게 뭐야?”
“읭? 이게 내 애라고?”
생명의 신비함이 너무나 강렬했는지 신비함을 넘어
나에게 아기는 ‘생경함’을 던져주었다.
너무나 새롭게 내 앞으로 뚝 떨어진 ‘외계생명체.’
출산과 동시에 남들이 느끼는 벅차고 깊은 감동.
엄마가 되었다는 신비함.
그런건 신기하게 나에게는 전혀 없었다.
그저 그냥
‘졸라게 아프다…’
‘와씨… 이렇게 아플수있는거구나…’
콧구멍에서 수박이 나오는 느낌이라더니
그건 너무 우아한 표현아닌가.
그래서 열심히 상상하고 시뮬레이션했는데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를 보고나서는
‘아 네가… 그렇게 날 아프게 했던… 이제 내 인생의 큰 과제를 주는 아이구나.’
정도였다.
임신과 출산에서, 책에서나 본 것, 친구들이 말해준 것과 너무도 다른 내 감정 때문에 나는 혼란에 빠졌다.
‘마더쇼크’라는 책을 찾아보며 내 모성에 대한 탐구를 했다.
대체 나는 왜 이런 걸까.
마더쇼크 안에서 다행히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나뿐만이 아니라는 말이 나왔다.
모성은 어찌보면 만들어진 것도 있다고, 사회적으로 교육되고 강요된 면도 있다고 나와있었고,
어린 시절의 어떤 상처나 슬픔 따위가 제대로된 모성을 방해한다는 걸 보기도 했다.
어릴적 트라우마가 있는 편이라
‘그래서 내가 이런가?’ 슬퍼하기도 하고
나는 왜 이런 엄마인가? 연구하며 신기해하기도 했다.
그런 내가 모유수유에 목표를 가진 건 참으로 잘한 일이었다. 산후조리원에서 뿐 아니라 먼저 아이를 낳았던 예쁜 이모가 모유수유를 강력 추천했고 그래서 나도 모유수유를 하면 그렇게 예쁜 엄마가 될까싶어
모유수유를 고집한 건 어쩌면 내겐 신의 한수.
젖을 처음 물리고 두번째 물리고.. 반복될수록
신기하게 아기가 귀여워보이기 시작했다.
내 아이라는 느낌이나 내 새끼라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예쁜 인형을 보고 귀여워하는 느낌이었다.
살아있는 똘똘이 인형놀이(?)라고 해야하나..
(스스로 참 돌아이같다고 느낀다ㅋ)
사진을 찍었을 때 귀엽고, 움직여서 귀엽고, 모자를 쓰고 와서 귀엽고, 인형을 옆에 뒀는데 귀엽고. 그냥 작고 귀여운 아기 자체로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어떤 책에서 보니 젖을 물리면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나오는데 그게 모성을 가질 수 있게 돕고 몸의 회복을 돕는다고 한다.
결국 모유수유를 하며 아이에 대한 사랑이 어느정도 싹텄으니 나는 모유수유를 통해 아이를 내 삶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게 된 것도 같다.
몸무게에 과도한 신경을 쓰는 편인 나는 임신 후 가장 좌절스러운게 뚱뚱한 몸이 된 거였다. 내 몸이 이제 뚱뚱해져버려서 다시는 처녀때의 몸으로 돌아갈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나는 과하게 좌절하고 슬퍼했다. 매일같이 조리원에서 체중을 재고 또 쟀다.
왜 아이가 나왔는데 몸무게는 3kg만빠지는 것인지.
반공기만 먹고 산책을 했는데 몸무게는 그대로.
대체 왜 이런 건지.
특히나 모유수유를 하는데 왜 살은 제자리인지 고민하고 자주가는 맘카페에도 ‘언제 몸무게가 빠지나요?’ 조급하게 물어보고 매일같이 이 뚱뚱한 몸으로 평생을 살아야하는건 아닌지 공포스러워하기도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 살이 빠진다고 해서 더 열심히 한 이유도 있는데 빠지지 않으니 내 노력이 헛된 건 아닌지 속이 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왕 목표삼고 시작한 걸 살 안빠진다고 멈출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게 모유수유는 계속 되어갔다
3개월쯤 모유와 분유를 혼합해 먹이며 가장 귀찮은 것은 ‘분유를 먹이고 난 젖병 씻기’였다.
나는 꼭 내가 하는 일과중 가장 하기 싫은 일을 귀신같이 찾아내는데 지금은 ‘아기 재우기’가 1위라면 그때는 먹고 남은 분유가 들어있는 ‘분유 젖병 씻기’가 단연코 1위였다.
씻기 싫어 설거지통에 쌓여있는 젖병 젖꼭지를 플라스틱과 분리해 닦고 열탕 소독을 하거나 소독기를 돌리고 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닌데 나는 그게 너무너무너무 싫었다.
분유가 담겨 있는 젖병에서 잠시 그걸 만질 때 나는 비린내도 싫었고 플라스틱과 실리콘 젖꼭지 사이 분유가 껴있는 것도 싫었다.
열탕 소독 때는 그 모든 게 씻겨나가 조금은 후련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걸 씻는 건 너무너무 귀찮았다.
아이를 혼자 배고, 임신하여 10달을 버티고, 밑이 너덜너덜하게 찢기며 애를 낳고, 조리원에서 홀로 그걸 견디고 나와서 아이의 잠을 재우고 먹이고 그런걸 내가 혼자 하고 있는데 멀쩡히 남편이 자신의 일상이 동일하게 흘러가는 걸 보는 건 억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렇게 힘이들고 몸 자체가 완전히 변해서 쩔쩔매는데 어째서 남편은 이렇게 변화없이 똑같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인지.
열달을 고생해서 내가 사람을 만들었으면 적어도 젖은 남자가 나와야되지않나 생각했다...
부유수유라도 하면 덜 억울할텐데...
아니면 남자의 fire egg가 임신처럼은 아니어도 개월 수가 지나며 조금씩 불어나서 걷기 불편해지며 임신을 조금이라도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상상하기도 했다.
그건 대학교 조모임에서 나 혼자 끙끙 밤을 새서 만든 피피티와 발표, 자료, 보고서 등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름을 올려 자기도 좋은 점수를 받은 얄미운 동기애를 보던 마음이랑 너무 비슷했다.
무임승차!
나는 인생의 이 중요한 사건에 무임승차할 수 있는 남자가 너무나도 부러워서 태어나 처음으로 남자들을 부러워했다. ‘내 딸 역시 남자였어야 이 모진 일을 안 겪는데’하며 땅을 치기도 했다.
그런 억울함을 안고 살아가니 젖병 씻는 일은 나의 분노를 폭발하게 하는 ‘마지막 한 방울’이 되었다.
내가 철인과 같이 다른 모든 걸 다 해내고 있는데 젖병 닦는 일 하나쯤은 완벽히 해줘야 내가 덜 억울한데.
젖병을 설거지 통에 쌓아놓고 분유가 말라 덕지 덕지 붙어 더러워질 때까지 두는 건 나의 인내심에 마지막 한방울의 기름을 붙이는 거였고.
그래서 그 젖병때문에 나는 무던히도 싸웠다.
완벽주의 성격에 싱크대에 젖병이 하나라도 쌓여있으면 그게 거슬렸기 때문에 보는 즉시 그걸 닦아줬으면 좋겠고, 남편은 어차피 씻는 거 모아서 씻어야 편하다는 주의라 나는 참으로 답답하게 되도 않는 젖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다.
알아서 젖병을 닦을 때까지 끝까지 진득히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지만, 남편 역시 매일 일을 하고 있고 시간이 있을 때는 똥치우고 닦는 일, 여러 가사일을 하고 있었다. 억울해하는 내 표정을 읽고 열심히 하려고 시늉은 했기 때문에 그렇게 닦달을 하는 내가 너무 악처가 된 것 같은 마음에 맘껏 화는 내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모유수유를 꼭 해야 했다.
모유수유는 젖병이 내 젖이라서 안 씻어도 되고,
(아니다, 샤워를 하면 젖병을 씻는건가? 젖통을 씻는 건가?ㅋ)
그래 그냥 샤워만 하면 젖도 씻어지고 먹고나서도 아주 깔끔하게 뒷처리가 가능했다.
먹이고 끝!
용기를 씻지 않아도 되고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으며 가지고 다니는데도 항상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
휴대하기에 정말 간편한 영양만점의 완전식품.
그게.
내 젖이었다.